11월 19일은 UN이 정한 ‘세계 아동학대 예방의 날’입니다. 그리고 이번 주는 아동학대 예방 주간입니다.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11월 19일 아동학대 예방의 날’을 국가 기념일로 공식 지정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의 슬픈 자화상’
지난 주, 상담치료를 받고 있는 학대 피해 아동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의 한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찾았습니다. 아이를 기다리던 중 그 아이가 치료 중 그린 그림을 우연히 볼 수 있었습니다. 거울 앞에 서 있는 한 소녀의 자화상이었습니다. 그림 한 구석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더군요. “너는 무얼 바라보고 있는 거니? 넌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거니?” 초등학교 5학년 여자 아이가 적은 글이라고 하기엔 범상치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이 소녀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살았습니다. 어머닌 몸이 좋지 않았지만, 딸을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만큼 집을 비워야 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 사이 같이 살던 외삼촌은 술에 취해 아이를 상습적으로 폭행했습니다. 아이는 아픈 엄마 걱정에 주변에 이 사실을 이야길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웃들은 아이의 고통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남의 집안 일이니..'라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 사이 아이의 고통만 깊어졌습니다.
‘한국 0.65’ vs '미국 13'의 진실
지난 해 접수된 아동학대 상담신고는 만 건이 넘었고, 이 가운데 6천 건이 아동학대로 판정됐습니다. 외국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의 수치일까? 인구 천 명 당 학대 아동 수를 비교해 보면 우리는 0.65명, 미국은 13명입니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비해 20배 가량 높습니다. 이 수치를 단순 비교해 우리 아이들은 미국 아이들보다 훨씬 좋은 여건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까요?
자화상 소녀의 사례처럼 우리나라에선 “남의 가정사인데...”라며 남의 집안일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 문화는 아동 학대를 안에서 곪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미국 등 아동 인권에 대한 인식이 잘 발달된 나라에선 주변의 신고가 아동학대를 예방하는 가장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 0.65명’, ‘미국 13명’은 부끄러운 우리 문화를 돌아보게 만드는 수치입니다.
‘방임과 폭언도 아동 학대…"
폭행, 성추행 등 물리적 폭력만을 아동 학대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방임, 폭언 등도 정서적 아동 학대에 속합니다. 지난 해 접수된 아동학대 가운데 30%는 방임으로 접수 건수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습니다. 아이에 대해 심한 말을 쏟아 부으며 '아이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생각도 착각일 뿐입니다. 또한 상습적인 부부싸움도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아동학대에 포함된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합니다.
'가해자 친부모인 경우 80%’
아동학대 가해자의 80% 가량은 친부모인 만큼 부모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입니다. 친부모에 의한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와 아이를 격리, 치료한 뒤 다시 부모에게 인계할 경우 부모 교육이 같이 이뤄지지 않으면 아동학대의 악순환은 끊기지 않습니다. 실제로 아동보호센터로 찾아와 상담사 등을 상태로 행패를 부리는 경우도 자주 있는 일입니다.
지난 해 경남 진주의 한 아동센터에선 아버지가 "내 새끼를 왜 너희들이 데려가냐"며 행패를 부리다 사무실에 불을 질러 자신이 불에 타 숨지고, 상담사들이 화상을 입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행 아동복지법에는 행위자에 대한 치료를 요하는 조항은 없습니다.
최근처럼 경제가 어려울수록 학대 건수는 늘어난다는 게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분석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학대받고 방치되는 아이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복지 시스템 뿐만 아니라 아동을 학대하는 부모에 대한 교육을 의무화하는 법안 마련이 시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