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기업에 대해 외부감사를 하는 회계법인이 각종 컨설팅 등 비감사용역도 맡는 경우가 적지 않아 회계감사의 독립성 훼손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회계법인이 외부감사와 컨설팅을 동시에 하면 `봐주기식' 감사를 할 수 있다고 지적된다.
거액의 컨설팅비가 달린 탓이다.
일부 회계법인은 컨설팅 업무를 수주하려고 외부감사 수수료를 덤핑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 컨설팅 시장 급증…감사 독립성 훼손 우려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에 따르면 작년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중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에 재무ㆍ경영 자문 등의 비감사용역을 의뢰한 곳이 23%에 달했다.
상장사들이 외부감사법인에 지급한 비감사용역 비용은 2007년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평균 2천687만 원에서 작년 5천677만 원으로 늘어나는 등 규모가 커지고 있다.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전자의 비감사용역비도 상장사 중 가장 많은 금액을 지급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삼성전자가 외부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에 지급한 비감사용역비는 88억3천400만 원으로 감사용역비(37억9천800만 원)의 두 배 이상이었다.
비감사용역은 법인설립 및 인수관련 자문업무, 관세 등 관련 자문업무 등에 대한 계약이 포함됐다.
삼성전자 측은 "작년 비감사용역비가 많은 것은 매출이 최대로 나오면서 경영활동이 늘었기 때문"이라며 "각종 컨설팅이 모두 포함된 비용이라 외부감사 용역비보다 액수가 클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신한금융지주는 작년 감사용역비로 4억8천700만 원을 지급했고 비감사용역비로는 이보다 9배나 되는 42억8천800만 원을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금융지주 측은 "비감사용역비 중 대부분이 미국 상장법인 관련 감사 비용이어서 비감사용역비라고 보기 어렵다"라며 "감사용역 외에 자문 업무 등으로 들어간 비용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그 외 대원제약, 유화증권, 대양금속, 아이마켓코리아, 케이피케미칼, 삼양홀딩스, CJ제일제당 등의 기업도 작년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과 계약한 비감사용역 비용이 감사용역 비용보다 많았다.
◇ 컨설팅 용역 따내려 외부감사비 `덤핑'도 국내 컨설팅 시장이 커지면서 회계·정보기술(IT) 시스템 구축, 인수합병(M&A), 세무 등에 대한 각종 컨설팅 업무를 수주하려는 회계법인들이 독립적 외무감사인 역할에 소홀할 개연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계법인들의 컨설팅 용역 수주 경쟁은 업계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일부 회계법인은 회계감사 수수료를 `덤핑'해주고 컨설팅 계약을 따내기도 한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기업은 각종 용역을 발주하는 `갑'이고 회계법인은 `을'"이라며 "다음 회계감사나 컨설팅을 맡기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회계감사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회계법인 관계자도 "외부감사 업무가 컨설팅 업무와 연계되다 보니 감사 강도를 높이면 바로 회사 측의 제지가 들어온다"며 "다음 컨설팅 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으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특정 기업의 외부감사를 한 회계법인이 10년 이상 맡는 일도 적지 않아 유착관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회계법인 관계자는 "해외 투자처 점검 목적으로 해외출장을 가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상 외유성 여행에 가깝다"라며 "해외 투자손실 등을 재무제표에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전했다.
일부 회계법인의 소홀한 외부감사는 결국 일반 투자자들에게 큰 피해로 돌아온다.
작년에는 영업정지 사태를 맞은 저축은행들의 부실을 잡아내지 못했던 회계법인들이 줄줄이 도마 위에 올랐다.
부실 저축은행의 외부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들이 후에 해당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쪽의 컨설팅을 맡아 이중으로 돈벌이하는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다.
◇ 미국선 10년 前 회계감사·컨설팅 겸임 금지 미국, 유럽 등에서는 회계법인들의 과다한 비감사용역 수임이 부실감사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며 규제가 시도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기업이었던 엔론의 분식회계 사건 이후인 2002년 외부감사와 컨설팅을 분리토록 하는 회계개혁 법안을 만들어 시행 중이다.
지난해 유럽위원회(EC)도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에 모든 종류의 비감사용역 수임을 금지하는 제안서를 제출했다.
국내에서도 회계 컨설팅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면서 외부감사와 컨설팅을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삼일, 안진, 삼정, 한영 등 4대 회계법인의 2010사업연도 매출액은 1조7천837억 원으로 컨설팅 매출(7천124억 원)이 회계감사 매출(6천563억 원)보다 많았다.
2011사업연도에는 국제회계기준(K-IFRS) 제도 정착과 인수합병(M&A) 시장 침체로 컨설팅 매출(6천805억 원)이 다소 줄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이지수 연구위원은 "외부감사인의 역할은 감사에만 그쳐야 한다"며 "용역비를 기업체로부터 받기 때문에 이해 상충을 최소한으로 유지해야만 독립된 회계감사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규제 움직임은 아직 미미한 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투자자보호 측면에서 외부감사와 컨설팅을 분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한다"면서도 "잠재적인 이해 상충의 문제는 있지만 외부감사의 자문 업무를 완전히 못 하게 해야 하는지는 신중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회계법인들은 외부감사와 컨설팅 부서 간 차단벽이 있어 이해 상충 문제가 없으며 동시에 두 업무를 맡으면 효율성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한 회계법인에서 기업체의 외부감사와 컨설팅을 동시에 수행하면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며 "외부감사를 하면서 파악한 문제점의 해결책을 컨설팅을 통해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