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전집이 쏟아지고 있다.
선두주자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이 300권을 돌파한 가운데 후발주자들의 전집도 100∼200권씩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근래 번역된 세계문학전집만 줄잡아 1천 권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세계문학전집 시장의 확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제부터는 출판사마다 특색있는 번역에도 신경 쓸 때라고 조언한다.
◇ 세계문학전집 1천권…양적 확대 = 1998년 세계문학전집 출간에 팔을 걷어붙인 민음사는 25개국 작가 175명의 작품으로 최근 300권을 돌파했다.
해당 언어와 문학을 공부한 전공자들에게 번역을 맡긴 덕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약 15년간 1천만 부 판매라는 기록을 세웠고 다른 출판사들이 시장에 진출하는 촉매가 됐다.
2010년 세계문학 100권을 내놓으면서 전집 발간을 시작한 열린책들은 지금까지 208권을 내놨다.
열린책들은 널리 알려진 본격 문학의 고전들은 물론 추리소설과 환상문학, 과학소설 분야에서도 기념할 만한 책들을 번역하고 있다.
문학작품은 물론 인문·사회 고전까지 아울러 펴내는 펭귄클래식코리아는 지금까지 135권을 냈고, 문학과지성사가 대산문화재단과 만드는 대산세계문학총서는 112권이 나왔다.
2009년 말 세계문학전집 시장에 합류한 문학동네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중국 작가 모옌의 소설 '열세 걸음'으로 최근 100권을 넘겼다.
전문성 있는 번역으로 호평받는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은 60권째에 이르고 있다.
지난달 창비까지 전집 발간에 뛰어든 점을 감안하면 몇 년 새 1천 권에 달하는 세계문학이 번역돼 쏟아진 셈이다.
◇ 전공자·번역자 확대로 번역수준 질적 향상 = 2007년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이 해방 이후부터 2005년까지 발간된 영미 고전 완역본을 조사한 결과 신뢰할 만한 번역본은 10권 중 1권에 불과했다.
심지어 10권에 4권가량은 남의 번역을 그대로 베끼거나 약간의 윤문을 거친 표절본으로 드러나 한국의 고전번역 수준을 그대로 보여줬다.
세계문학 번역시장에 변화가 생긴 건 민음사를 필두로 세계문학전집 발간에 나선 출판사들이 중역과 부분 번역인 초역(抄譯)을 피하고 전공자를 찾아 완역을 맡기면서부터다.
외국문학 전공자들이 늘어난 상황과 궤를 같이 한다.
수십 년 전 이미 전집을 내놨던 출판사들에서도 새 번역본을 내놓기 시작했다.
1959년 국내 최초로 세계문학전집을 출간해 1975년 100권으로 전집을 완간했던 을유문화사는 2008년부터 30여 년 만에 전문인력을 찾아 새롭게 번역한 전집을 내놨고, 문예출판사 역시 1960∼70년대에 번역했던 고전들을 2000년대 들어 새 번역으로 출간하고 있다.
여기에 원저자 측과 정식계약을 하는 관행도 자리 잡아 가면서 세계문학전집의 수준이 향상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번역도 제2의 창작인데 번역의 인적 자원이 풍부해지면서 세계문학전집 수준이 높아졌다"며 "세계적 상상력을 읽고 자라는 세대를 위해 긍정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 특색 있는 번역 필요성 제기 = 세계문학전집의 양적·질적 향상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출판사마다 특색 있는 번역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문학 번역이 이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만큼 특정 작가의 전집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제3세계 작품, 희곡이나 시 등 소설보다 덜 친숙한 영역의 적극적인 번역을 통해 외연 확대를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열린책들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알렉산드르 푸쉬킨 전집을 내고 책세상이 알베르 카뮈의 전집을 낸 것이 한 예다.
문학평론가인 유종호 전 연세대 특임교수는 "세계문학전집의 발간이 출판계와 문화계의 역량을 신장시키고 독자의 수준을 일반적으로 높인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 "좁은 시장에서 같은 작품으로 경쟁하기보다 개인 전집이나 (소개가 덜 된) 희곡 분야 등으로 특성화하는 시도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에서 세계의 고전을 값싸게 대량 번역한 이와나미(岩波) 문고에 대해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공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장기적으로 독자들의 문학을 보는 눈을 향상시켰다"면서 "세계문학이 향상시킨 독자와 문학계의 눈으로 국내문학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문학전집의 확대를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