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류현진은 '기교파 투수'?

-투구 궤적 데이터로 본 류현진의 성공 가능성 : 뉴스 리포트로 다 못 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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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Pitch F/X, 우리나라에서 투구 측정 시스템(PTS : Pitch Tracking System)이라고 불리는 것에 익숙한 야구팬들은  굵은 글씨의 첫 문단을 건너 뛰시길. 그렇지 않은 독자들은 빠른 이해를 위해 반드시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PTS는 투수가 던지는 공의 속도, 상하 좌우 무브먼트, 로케이션 등을 측정하는 시스템이다. 무브먼트를 측정하는 방법은 이렇다. 먼저 실제 투구의 궤적을 측정한다. 그리고 출발점과 도착점을 잇는 '가상의 무회전 공'의 궤적을 물리법칙을 적용해 산출한다.

실제 투구는 너클볼을 제외하면 모두 회전하며 날아간다. 때문에 무회전공과는 다르게 움직인다. 가령 포심 패스트볼의 경우, 공의 진행방향과 반대쪽으로 '역회전'이 걸린다. 이 역회전은 날아가는 공을 '무회전공'보다 '덜 떨어지게' 만든다.

아래 <그림 1>은 지난 2009년 WBC 때 측정된 김광현의 직구 궤적이다. 김광현의 직구는 강력한 역회전 때문에 '덜 떨어지기 때문에', 비행 도중 '무회전공'보다 중간에 33.3cm 낮은 곳을 지나가도 도착은 같은 곳에 한다. 공의 회전이 만들어내는 이 33.3cm의 궤적차가 바로 무브먼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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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이번엔 타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타자는 투구의 초반 궤적을 보고, 이후 궤적을 예측해 스윙한다. 중간에 낮은 곳을 통과하면, 타자는 낮은 공으로 판단하고 낮은 쪽을 목표로 스윙을 시작한다.
그런데 위의 김광현의 직구처럼 역회전이 많이 걸린 공은 타자의 예측 궤도보다 '덜 떨어진다'. 그래서 방망이 위쪽에 맞거나 위쪽으로 지나간다. 타자는 공이 '솟아 오르는 것처럼' 느낀다. 이른바 '라이징 패스트볼'이다. 가상의 '무회전공'보다 아래쪽으로 날아가는데 '상승(+) 무브먼트'라고 부르는 건 이 때문이다.

반대로 커브 같은 구질은 출발점과 도착점을 잇는 가상의 무회전공보다 위쪽을 통과한다. 역으로 이건 '하강(-) 무브먼트'다. 유추해 보면 좌우로 휘어지는 공의 무브먼트도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왼손타자 쪽으로 휘는 무브먼트는 양수로, 오른손타자 쪽으로 휘는 무브먼트는 음수로 표현된다.

다음은 PTS 시스템에 측정된 올 시즌 류현진의 투구 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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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류현진 PTS 투구정보 (자료제공 (주)스포츠투아이)

1. 패스트볼 : 류현진의 직구는 전형적인 포심 패스트볼이다. 구속은 메이저리그 기준으로는 평범하다. 시속 142.99로 올 시즌 MLB 평균보다 약 4.6km, 좌완투수 평균보다도 약 1km가 느리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 가운데는 뒤에서 12번째다. (물론 류현진보다 느린 투수 11명 가운데는 제럿 위버(LA 에인절스) 같은 뛰어난 투수들도 포함돼 있다)

그렇다고 류현진의 직구가 평범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떠오르는 무브먼트' 때문이다. <표1>에 따르면, 류현진의 상승 무브먼트는 31.96cm (12.58 인치)다. Fangraphs.com에 따르면, 올 시즌 메이저리그 50이닝 채운 투수 가운데 상승 무브먼트 1위는 지난 해 사이영상 수상자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의 31.5cm다. 즉 류현진의 포심 패스트볼이, 빅리그 최고 수준의 라이징 무브먼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건 좋은 현상일까? 상승 무브먼트가 높은 순위에 앤디 페티트(28.7cm), 위버(27.9cm), 콜 해멀스(27.5cm) 같은 정상급 투수들이 들어 있는 걸로 봐서는 나쁜 징조는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포심 패스트볼이 '최신 트렌드'가 아닌 건 분명해 보인다. 

MLB에서 포심의 비중은 2009년 53.1%에서 올시즌 34.3%로 줄어든 반면, 가라앉는 궤적을 갖고 있는 투심 패스트볼은 3.8%에서 12.9%로 증가했다. 투수들이 포심 대신 투심-싱커 계통의 비중을 늘리는 이유는 뜬공을 막기 위해서다. 포심은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 때문에 방망이의 윗쪽을 맞고 뜬 공이 되기 쉽다. 뜬 공은 땅볼보다 당연히 홈런이 될 확률이 높다. 포심의 비중이 줄고 투심이 늘어나면서, 지난 2009년 한 시즌 동안 5042개가 터졌던 홈런은 해마다 줄어들어 올해 4908개가 되었다.

그래서 류현진의 '느리고 떠오르는' 패스트볼이 통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외야 펜스까지 거리가 먼, '투수 친화적' 구장을 홈으로 쓰는 구단에 지명될 것. (류현진이 PTS 데이터를 사간 28개 팀이 모두 성실하게 공부한다는 가정 하에, '홈런공장'이 홈구장인 팀들은 류현진의 포스팅에 소극적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 류현진이 한국 최고의 홈런공장인 대전구장을 홈으로 쓰지 않았다면 ,7년 동안 얼마나 더 놀라운 성적을 냈을 지도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두 번째, 포심 패스트볼의 '상승 무브먼트'의 효율을 높일 '떨어지는 변화구'가 통할 것. 여기서 류현진의 변화구들을 살펴보자.

2. 류현진의 커브는 메이저리그에서 류현진의 직구보다 더 특이할 것이다. <표1>에 따르면 류현진의 올 시즌 커브 평균속도는 128.44km. 올 시즌 MLB에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가운데 이보다 더 느린 커브를 던진 투수는 한 명도 없다. 커브 뿐만 아니라 규정이닝 채운 투수들의 모든 구종을 통틀어 이보다 더 느린 공은 R.A 디키의 너클볼 뿐이다.

이렇게 커브가 MLB 기준 '초슬로우볼'이 되면서, 직구와 구속차가 커진다. 무려 33.55km. MLB에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가운데 직구와 커브의 속도차이가 이보다 더 큰 선수는 다르빗슈(35.9km) 뿐이다.

커브의 낙폭도 준수하다. 16.58cm의 '하강 무브먼트'로, 15.7cm인 MLB 평균 커브보다 더 '떨어진다'. (어제 뉴스 리포트에 소개된 43.36cm의 '낙차'와는 다른 개념이다. 낙차는 말 그대로 커브 궤적의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실제 거리차를 말한다) 포심 패스트볼의 상승 무브먼트와 차이가 48.54cm. 포심과 커브의 무브먼트차가 이보다 더 큰 투수는 커쇼 뿐이다.

류현진의 커브는 그의 구종 중에 지난해 대비 가장 확연하게 좋아진 공이다. 하강 무브먼트가 13cm, 왼손타자의 바깥쪽으로 달아나는 무브먼트가 7cm 늘어났다. 커브의 피안타율도 지난해의 0.243에서 올해 0.159로 줄었다. 올 시즌 류현진의 커브는 그의 구질 가운데 가장 피안타율이 낮은 구종이었다. 위에 적은 대로 포심과의 구속 및 궤적차 때문에, MLB에서도 커브는 류현진의 성공 여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3.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구질 가운데 하나였다. 오른손 타자를 무력화시키는 체인지업은 류현진을 대한민국 에이스로 만든 열쇠였다. PTS 데이터만으로는 체인지업의 성공 가능성을 점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직구와의 속도차(14.55km)-상하 무브먼트차(13.44cm)가 괜찮은 편으로 보이지만, 직구나 커브처럼 대단히 특이한 별종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오른손 타자의 바깥쪽을 겨냥하는 제구가 한국에서처럼 통할지가 변수가 될 것이다.

4. 데이터로 볼 때, MLB에서는 류현진을 우리가 아는 '시원한 정통파 스타일' 대신 '수준급의 기교파 투수'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CC 사바시아(뉴욕 양키스)보다는 토미 밀론(오클랜드)을 더 닮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MLB에는 '압도적인 파이어볼러' 외에 이런 유형의 투수들의 성공담도 넘쳐난다 (크리스 메들렌, 밀론, 웨이드 마일리, 크리스 카푸아노, 제이슨 바르가스, 위버...) 류현진은 이들 중 한 명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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