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NLL, 북방한계선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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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 3년 후인 지난 1953년 7월,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한반도를 피로 물들게 했던 총성은 멎었지만 한반도에는 긴 상처가 남았다. 휴전선, 155마일의 긴 철책은 그 후 60년 가까운 세월을 거치면서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점점 국경선처럼 굳어져 갔다.

그렇다면 해상은 어땠을까?

육상의 휴전선처럼 해상에서도 경계선 설정을 위해 양측 간에 협상이 진행됐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아무런 경계선도 정하지 못한 채 남북 양측은 정전을 맞았다. 하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경계선은 필요했고 당시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클라크 장군이 자체적으로 해상 경계선을 설정했다. 자체적으로 설정한 경계선이었던 만큼 북한과의 협의는 없었고 북한에 이런 사실을 공식 통보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북방한계선, NLL(Northern Limit Line)이다.

◈ NLL, 왜 문제?

NLL은 서해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의 5개 섬 북단과 북한 측에서 관할하는 옹진반도 사이를 가로지르는 경계선이다. 북위 37。 35'과 38。 03' 사이에 해당한다. 1953년 설정 이후 1972년까지는 북한도 이 한계선에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준수했다.

그러나 1973년 들어 북한이 서해 5개 섬 주변 수역이 북한 연해라고 주장하면서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고 급기야 북한 선박들이 빈번히 북방한계선을 넘나들면서 남한 함정들과 대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국제법적으로도 NLL이 영해를 규정하는 경계선은 아니라는 것이 국제법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에 따르더라도 NLL이 영해를 구분하는 선은 아니다. 사실 최근 정치권을 달구고 있는 'NLL이 영해선이냐 아니냐'는 식의 말싸움은 논란의 본질이 아니다.

◈ NLL은 '영해선' 아닌 '해상경계선'

정전 협정 당시, 해상 경계선을 합의하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국제적으로는 영해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를 놓고 2가지 견해가 있었는데 바로 3해리설과 3해리 이상설 즉, 12해리설이다. 교역이 왕성한 선진국들은 해상 교통이 용이하도록 영해 범위를 가급적 축소한 '3해리'를 지지한 반면, 약소국들은 3해리 이상, '12해리'를 주장했다. 이런 배경 하에서 진행된 정전협정이었던 만큼 유엔군은 3해리를, 북한은 12해리를 주장하면서 결국 접점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해상경계선을 정하지 못한 채 정전이 됐지만 충돌은 없었다. 당시 북한은 해군력이 거의 괴멸상태였기 때문이다.

클라크 사령관이 NLL을 설정한 당초 이유도 북한의 침범에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엔군과 남측 선박이 북쪽으로 너무 깊숙이 넘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이는 NLL, 북방한계선이라는 이름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우리측 선박이 북쪽으로 올라갈 수 있는 한계선이라는 뜻이다.

북한이 해군력을 복원한 뒤 해상경계선에 대한 무력화에 나선 건 북한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특히나 NLL 설정의 기점이 되는 서해 5도는 위도상 육상의 휴전선보다 휠씬 북쪽에 위치한다. 북한 옹진반도의 턱 밑에 자리잡고 있어 북한 입장에서는 목의 가시같은 존재다. 반면 우리에게는 그만큼 전략적 가치가 높은 섬이다.

북한이 해군력을 재건한 뒤 남하하면서 북방한계선은 자연스럽게 북한에게 남방한계선이 됐다. 우리가 올라가지 못하지만 북한도 내려오지 못하는 '해상경계선'이 된 것이다. 유엔사령부가 NLL 획정에 대해 통보했을 당시 북한 측에서는 분명한 이의 제기가 없었고 20여 년 간 관행으로 준수해 왔다.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 11조에도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우리 측이 NLL을 명백한 해상경계선이라고 보는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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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LL이 가진 '두 얼굴'

대체로 NLL이 해상경계선이라는 데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견해차가 생기는 것은 다음부터다. 바로 이 해상경계선을 어떻게 운영할 것이냐이다. 안보적 관점에서 보자면 해상경계선 즉 NLL은 반드시 지켜야 할 영해선과 같은 개념이다. 법적으로 북한은 미수복지역을 불법 점유한 불법 정권으로 한국의 국경은 두만강과 압록강이지만 정전협정 이후 60여 년이 흐르면서 휴전선은 사실상 영토선이 됐고 NLL도 영해선처럼 됐다.

또 앞서 언급했듯이 군사적 전략 요충지인 서해 5도의 방위를 위해서는 NLL 유지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자칫 NLL이 무력화될 경우 당장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이 북한 함정의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 군이 NLL 방어를 중시하는 이유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 한반도 평화라는 측면으로 접근하면 NLL은 불필요한 마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관점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NLL에서 발생한 충돌을 예로 든다.

법적 근거도 없는 NLL에 매달려 불필요한 충돌을 거듭할 게 아니라 남북이 NLL 근처를 공동어로구역·평화수역으로 지정해 교류 협력을 강화하는 장으로 만들자고 말한다. 또 안보 측면에서도 NLL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남북간 충돌을 막고 주변 해역의 긴장을 완화해 궁극적으로 북한의 위협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평가한다. NLL을 둘러싼 논란은 남북간의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을 어떻게 평가하고 또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한 견해차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 NLL 문제, 국민적 합의가 우선

앞서 살펴봤듯이 NLL은 관점에 따라 사수해야 할 영해선이 될 수도, 불필요한 희생을 강요하는 갈등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통일에 대한 로드맵 없이 NLL을 무조건 영해선으로 간주하려 한다면 분단상황을 고착화시킬 수 있고 반면 NLL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면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물론 해답은 있다. 튼튼한 안보 위에 통일을 이룩하면 된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튼튼한 안보이고 어디까지가 통일을 위해 가능한 양보인지가 문제다. 결국 안보와 통일 사이에서 NLL을 어떻게 갖고 갈지는 국민적 합의를 통해 결정할 수밖에 없다. 정전이라는 한반도 특수 상황에서 시간과 진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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