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만에 재심…'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과거사 정리 작업으로 '햇빛'


구글에서 SBS뉴스 즐겨찾기 추가
대표 이미지 영역 - SBS 뉴스

대법원이 19일 재심 개시를 결정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1991년 분신 자살한 김기설씨의 유서를 친구인 강기훈씨가 대신 작성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옥살이를 한 사건이다.

노태우 정권 시절이던 1991년 5월8일 당시 민주화 운동의 중추 세력이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당시 25세)씨가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유서를 남기고 몸에 불을 붙인 뒤 투신해 숨졌다.

그 무렵은 `수서지구 특혜분양', `국회의원 뇌물외유' 등 6공화국 정부의 잇단 비리사건에 반발해 재야ㆍ운동권의 시위와 분신이 이어지던 상황이었다.

김기설씨의 분신에 앞서 그해 4월29일에는 명지대 1학년생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다.

이 사건을 전후한 기간인 4월3일부터 5월1일까지 전남대생 박승희, 경원대 천세용, 안동대생 김영균 등 대학생들이 차례로 분신했다.

이처럼 정권에 항의하는 분신이 계속되자 김지하 시인은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는 글을 발표했고 박홍 서강대 총장은 기자회견에서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기설씨가 숨지고 일주일여 뒤인 그해 5월16일 검찰은 "김씨의 유서와 가족이 제출한 김씨의 필적이 다르다"고 발표했고 김씨의 유서를 대신 쓴 인물로 강기훈 당시 전민련 총무부장을 지목했다.

결국 검찰은 6월24일 김씨의 유서를 대필해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강씨를 구속하고 7월12일에는 재판에 넘겼다.

강씨는 8월12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당시 공안당국은 "유서까지 대신 써주며 분신을 종용했다"며 재야ㆍ민주화 운동 세력을 매도하고 나섰다.

광고 영역

1991년은 노태우 정권의 집권 후반기로 각종 권력형 비리에 대한 국민의 염증이 커지고 민주화 요구가 고조되던 정치적 격변기였다.

하지만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터지면서 진보 진영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이 가해졌고 이후 대학가의 학생운동이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필적이 문제가 됐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과 매우 유사해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린다.

1894년 프랑스 육군의 드레퓌스 대위는 독일에 군사 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돼 반역죄로 종신유배형을 받았다가 10년 만에 재심을 받고 무죄로 석방됐다.

군사기밀이 적힌 명세서의 필적과 드레퓌스의 필적이 일치한다는 게 반역죄의 이유였지만, 에밀 졸라 등 당대 문인과 지식인이 무죄를 주장하며 거세게 저항한 덕분에 재심이 개시됐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그대로 묻혀지는가 싶었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과거사 정리 작업을 통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2005년 경찰청 자체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김기설씨의) 유서는 김씨 친필로 보이나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고 발표했다.

사건 당시 필적을 감정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김씨의 유서는 본인이 작성한 것'이라는 필적 재감정 결과를 내놓았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11월13일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쓰지 않았다"며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고, 국가에 재심을 권고했다.

강씨는 2008년 1월31일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2009년 9월16일 서울고법 형사10부는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검찰(서울고검)이 재심 개시 결정에 불복해 대법원에 즉시항고해 최종 결정이 미뤄졌다.

대법원이 검찰의 즉시항고 이후 약 3년1개월 만에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림에 따라 이 사건은 마침내 사법부의 새로운 판단을 받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