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료인이 의사를 고용해 운영하는 이른바 '사무장 병원' 의사들이 잇따라 자살하는 등 폐해가 속출해 관계 당국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9일 의료계와 경찰에 따르면 지난 5월 충남 천안에서 지인과 함께 자금을 투자해 병원을 개업했던 의사 정모(60)씨가 자신의 병원 건물 8층에서 투신해 숨졌다.
정씨는 병원 건물의 매매 잔금 1억원을 갚으라는 채권자의 독촉에 시달리다 신병을 비관했던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지난달에는 충북 제천의 50대 병원장이 늘어난 병원 부채를 놓고 고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의료업계에서는 이 의사들이 모두 '사무장 병원'에 몸담고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사무장 병원은 의사면허가 없는 사람이 의사를 고용해 병원을 개설, 운영하는 형태를 통칭한다.
현행법상 비의료인은 병원을 개설할 수 없다.
사무장 병원은 이에 따라 '페이 닥터(월급제 의사)' 형태로 운영된다.
비의료인이 의사에게 억대의 연봉을 제시하며 사실상 명의를 빌리는 셈이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사무장 병원을 둘러싼 비리가 '복마전'에 가깝다고 했다.
병원 운영의 초점이 수익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영리를 목적으로 병원을 개설한 일부 사무장의 도덕적 해이는 도를 넘었다"며 "공금 횡령이나 직원 임금 체불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병원장을 자살로 몰아넣은 제천의 병원도 비슷한 사정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무리한 투자에 비해 수익이 나지 않다 보니 명의상 병원의 주인인 '바지 원장'이 금융 부채만 수억원을 떠안게 됐다는 것이다.
의료 소모품 생산 업체에 대한 미지급금과 진료 시 적용받던 건강보험료 환수액까지 계산하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사무장 병원 피해자 모임'의 한 관계자는 "보통 개업에 실패했거나 나이가 많은 의사가 사무장 병원의 유혹에 쉽게 빠지곤 한다"며 "경제적 문제로 사무장의 제안에 넘어간 이들이 수십억원에 달하는 보험료 환수액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전했다.
그러나 의료법상 자신의 명의로 병원을 개설한 의사도 처벌을 피해갈 수는 없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경위야 어찌 됐든 돈을 받고 병원을 개설했다면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라며 "사무장 병원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일하는 것도 위법"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아예 의료인이 스스로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한 뒤 사무장에게 운영을 맡기는 형태의 영리병원을 우후죽순처럼 설립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의료법에 이 같은 행태를 막는 '의료인의 의무' 조항을 신설해 지난달부터 시행 중이다.
의사협회의 한 관계자는 "사무장 병원 척결을 위해서는 법개정 뿐만 아니라 경찰력의 도움이 절실하다"며 "위법한 병원 운영을 뿌리 뽑기 위해 함께 노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전경찰은 서구 갈마동의 한 사무장 병원에서 허위 환자 300여명을 유치해 보험금을 타낸 정황을 잡아 수사하고 있다.
(대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