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보 한통을 받았습니다. 제보 내용은 검증되지 않은 ‘가짜 풍산개’가 시중에 많이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풍산개는 북한 백두산에 뿌리를 둔 우리나라 전통 토종개로, ‘호랑이를 잡는 개’로 불립니다. 진돗개, 삽살개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명견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서 선물로 받아오며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습니다. 워낙 용맹하고 영리하다 보니 인기가 많아, 10여 년이 지난 요즘엔 백만 원이 넘는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그런 풍산개가 가짜라니 과연 사실일까요?
제보자를 만나 직접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제보자는 혈통 있는 ‘순종’이라는 말을 믿고, 150만 원이라는 거액을 주고 풍산개를 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보자가 산 풍산개는 커갈수록 기대했던 명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선, 일반 풍산개와 외모가 너무 많이 달랐습니다. 앞머리(전두골)가 둥글고 넓은 풍산개와 달리 제보자의 개는 좁고 길었습니다. 또, 풍산개는 눈이 귀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귀가 두텁고 끝 부분이 살짝 구워 있는데, 제보자의 개는 귀가 얇고 끝이 날카롭게 뾰족 서 있었습니다. 성품도 주인을 잘 따르는 풍산개와 달리 폐쇄적이고 사람에게 매우 공격적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수의학을 전공한 제가 보기엔, 아예 전혀 다른 종으로 보였습니다.
정확한 검증을 위해 국가공인연기기관(DIGIST)에 유전자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각기 다른 지역에 있는 풍산개 30마리와 제보자가 구매한 개의 유전자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풍산개 30마리는 비슷한 유전자 분포를 보인 반면, 제보자의 개는 전혀 다른 유전자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기준이 되는 유전자 10개 가운데 7개에서 다른 형질이 나타났습니다. 실험을 수행한 연구자는 다른 종의 유전자가 아주 많이 섞여 있거나 풍산개와는 전혀 다른 종이라고 봐야 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문제의 시작은 ‘혈통서 증명서’
제보자는 10년 가까이 개를 키워온 애견가였습니다. 그런데도 외형이 전혀 달라 보이는 개를 풍산개로 믿고 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문제는 ‘혈통증명서’였습니다. 제보자도 풍산개를 구매할 당시, 의심을 안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판매업자가 국제공인을 받은 혈통증명서를 보여주며 순종이 확실하다고 하자,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그 문제의 개 농장을 찾아갔을 때도, 판매업자는 혈통증명서를 보여주며 순종이 틀림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럼, 이 혈통증명서는 믿을 수 있는 것일까요? 또, 어떤 과정을 거쳐 발급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혈통증명서가 발급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하고 또 허술했습니다. 혈통증명서는 애견협회에서 소정의 심사과정 거쳐 발급해줍니다. 애견협회는 등록한 회원이 개 사진을 찍어 보내주면, 그걸 심사위원들이 보고 순종 여부를 판단한다고 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애견 전문가이기 때문에 개를 직접 보지 않고 사진만 봐도 순종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자이기 전에 수의사로서 볼 때, 판정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위험한 심사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동물의 품종을 판단할 때는 골격구조나 털 모양, 종별로 가지는 신체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판매업자가 나쁜 마음을 먹고 비슷하게 생긴 개의 사진을 보내거나 혹은 사진을 조작해서 보낸다고 해도, 구조적으로 이를 막아낼 방법이 부족한 것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사진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가정해도 문제는 또 있습니다. 제가 만나 풍산개 판매업자는 부모 개를 협회에 등록해뒀기 때문에 따로 심사를 거치지 않고, 전화하면 혈통증명서를 바로 발급해준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부모 개를 한번 등록해두면 그 후손들은 특별한 검증 없이 증명서를 발급해 주고 있었습니다. 전적으로 등록한 회원의 말만 믿어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 애견협회는 주기적으로 귀에 문신을 새겨 나름의 방법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혈통증명서 발급 건수가 약 5천 마리에 이르고, 소형견은 특별 관리 대상에서 빠져 있다고 하니 혈통증명서의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혈통증명서가 있으면 개의 판매 가격이 최소 몇 배에서 최대 수십 배까지 올라가는 현실을 감안하면, 혈통증명서 발급과정이 좀 더 엄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종’ 풍산개는 존재할까?
그렇다면 과연 진짜 순종 풍산개는 있을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알 수 없다’가 가장 정확한 답인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나라에 풍산개가 공식적으로 처음 들어온 건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입니다. 그때 들어온 풍산개들은 서울대공원에서 관리를 하다가 현재는 전국 곳곳으로 분양돼 후손들이 제법 늘어난 상태입니다. 그렇게 생긴 후손들이 약 백여 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풍산개가 국내로 들어온 경우가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통해 들어온 것들입니다.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풍산개를 들여온 판매업자들은 북한에서 몰래 빼돌린 것을 수입해 온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지금도 북한 접경 지역에 가면 '북한산 풍산개'를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순종 풍산개'의 기준을 어디에 둘지 정해진 게 없다는 것입니다. 공식적으로 북한에서 들어온 것만 풍산개로 볼 것이냐, 아니면 다른 나라를 거쳐 들어온 개도 풍산개로 인정해 줄 것이냐 이런 문제가 남습니다. 또, 이 풍산개들이 번식과정에서 다른 종과 섞였을 가능성이 큰데, 혈통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순종 풍산개의 존재 여부를 논의하는 게 무의미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냉정하게 말하자면 풍산개를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이 개가 순종인지를 알지 못하고 사고팔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우리는 왜 ‘순종’에 열광하나?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오늘 현대인은 자신이 특정한 사회계급에 속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혹은 부를 과시하기 위해 재화를 소비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과거에는 태어남과 동시에 계급이 정해지지만, 이런 계급이 없어진 현대 사회에선 소비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들어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명품에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닙니다. 이젠 동물도 이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내가 키우는 개는 뭔가 특별해”, “혈통 있는 ‘명품’ 개야” 이런 소유의식이 ‘순종’에 열광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풍산개와 같이 매우 희귀하거나 멸종위기에 놓인 종은 적극적으로 보존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역할은 자금과 연구력을 갖춘 정부나 학계에서 학문적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이 있는 건 모두 소중하다
예전에 제가 동물병원에서 수의사로 근무할 때였습니다. 자신이 키우는 동물이 순종인지, 좋은 혈통인지를 물어보는 분이 종종 계셨습니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분들에게 ‘순종’이란 검증되지 않았고, 순수하지 않은 ‘잡종’의 반대되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의 상당수는 어느 날 보면 키우던 개가 바뀌어 있습니다. 동물이 아프거나 혹은 다치면 바로 버린 것입니다. 동물을 소유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굳이 ‘실존주의 철학’을 논하지 않더라도, ‘생명이 있는 존재는 모두 똑같이 존엄하다.’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과연, 오늘 우리에게 ‘생명’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동물을 생명, 공존의 대상이 아닌 소유의 대상 보는 마음이 순종에 대한 ‘집착’을 불러일으킨 건 아닐까요? ‘순종에 대한 집착’은 허영과 욕심이 만들어낸 우리의 부끄러운 얼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