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아이들은 하루 15시간씩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최근 서울을 찾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한국의 아이들을 걱정했다. 성적과 입시에 워낙 익숙해진 터라 한국인들은 문제의식마저 잘 갖지 않게 돼버린 사회현상이 이 미래학자의 눈에는 무척이나 해괴하게 비쳤던 것이다.
사실 우리 아이들이 당면한 현실은 정말 위험하고 불안하다. 2010년만 해도 한 해 7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학교를 때려치웠다. 집을 나와 떠돌아다니는 아이들도 2만 명이 넘는다. 이들 중 상당수는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로부터 방치되고 학대받고 사육당하다가 숨이 막혀 뛰쳐나온 아이들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보다 훨씬 많은 아이가 뛰쳐나가고 싶어한다. 지옥과 같은 현실에서 한 시라도 도망치고자 한다. 그들은 교육이라는 미명에 붙잡힌 볼모이자 희생양이다. 고3 남학생이 성적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던 엄마를 살해하고, 중2 여학생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일까지 심심찮게 벌어진다.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아프다. 아파도 무척 아프다. 아이들의 아픔은 부모의 아픔과 직결돼 있다. 이 아픔은 사회가 강요한다. 인성이 파괴되고 가정이 붕괴되며 사회가 혼란해지는 건 안타깝게도 당연지사다. 살아 남으려고 병들고, 살아 남고자 일탈하는 아이들. 이들의 주관적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맨 꼴찌라는 사실은 무얼 말해주는가. 청소년들이 사망 원인 중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은 또 무얼 말해주는가.
이 참담한 현실을 진단하고 그 치유책을 찾고자 두 명의 심리학 연구자와 한 명의 인문학 연구자가 손을 잡고 학교로, 거리로 나섰다. 심리치료사 이승욱 씨와 가족 상담사 신희경 씨, 청소년 교육자 김은산 씨가 그들이다. 이들은 다양한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 아이와 가정, 사회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 보여주는 실태보고서 '대한민국 부모'를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치열하다. 상담실에서 만난 우리 아이들은 심하게 망가져 있었고, 이 아이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는 상상을 넘어선 고통이자 아픔이었다. 그러면서 묻는다. 한국 사회에서, 한국 가정에서 교육이란 과연 뭐냐고.
그래서 내린 진단과 대답에는 통절한 아픔이 화살처럼 꽂혀 있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사실 진정한 교육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을 뿐 텅 빈 공간이라는 거다. 가정도 마찬가지. 다들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지만 집 역시 안식을 얻지 못하는 비어 있는 공간이 돼버린 지 오래다.
서열과 성적과 입시 강요는 이제 한국사회를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다. 한때 그 희생자이기도 했던 부모는 이제 가해자 대열에 합류해 더욱 모질고 거칠게 아이를 희생자로 만들어낸다. '교육'과 '성공'과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다 자식인 너희들 좋으라'고 그런다고. 저자들은 자신이 구원받으려고 자기 아이를 제물로 바친 에밀레종을 상기시킨다, 아이들을 교육이라는 지옥불에 밀어 넣는 부모의 불안이 어디에서 오며 왜 이들은 아이들을 희생의 제물로 삼는지 파고들었다.
책은 대한민국의 아이, 부모, 부부의 내밀한 아픔과 고통을 차례차례 생생히 전달한다. 이들의 증상과 문제행동이 먹이사슬처럼 교묘하고도 정교하게 서로 맞물려 있음도 밝혀낸다. 나아가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 아픔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모순과 부조리에서 찾는다. 더불어 고도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살아온 요즘 부모들의 연대기를 돌아보며 그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른바 '어른'이라는 기성세대의 각성이 특히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성적으로 서열화하고 경쟁만 강요하는 학교, 그 정글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효과적으로 가르친다는 학원, 그 때문에 힘들어하고 좌절하는 아이에게 나약하고 무능력하다며 실망만 하는 부모, 이들이 바로 우리 아이들이 매일 만나는 '어른들'이라는 거다. 아이들이 믿고 기대기는커녕 싫어하고 우습게 여기는 기성세대가 과연 어른스러운가라고 묻는다.
저자들은 자신한다.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사회 시스템이 틀렸다고. 상위 1%를 위한 과열경쟁에서 나머지 99%가 낙오자가 되고, 그 상위 1%마저 다양한 삶과 개별적 가치를 가꿔갈 기회를 상실한 채 불행한 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재미도, 승산도 없는 게임은 이제 그만하자고.
그래서 제한한다. 일류대학으로만 올인하게 하고 결국 99%들끼리의 무한 서열경쟁에 매몰되게 하는 사회적 헤게모니를 과감히 거부하라고. 일류대를 나와 대기업에 취직하는, 고민할 필요도 없고 재미도 없고 승산도 없는 게임에 아이들을 내몰지 말고 다른 삶의 기회를 열어주라고. 부모 역시 아이의 대학 서열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들지 말고 아이에게서 독립해 자신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문학동네. 312쪽. 1만4천원.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