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어젯밤(4월 30일) 늦게 구속 수감됐습니다. 사실상 자신이 후견인을 자처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를 10달 정도 남겨놓은 시점입니다. 방송통신위원장을 연임하면서 그렇게 시끄러웠던 ‘언론 장악’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과 함께 사실상 권력 그 자체였던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초라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구속 영장이 집행되는 순간 그가 남긴 말은 뭘까요? 아침 동아일보는 1면 하단에 구치소로 가는 호송차에 앉은 최 씨의 사진과 함께 [최시중 구속…“내가 많이 잘못됐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기사 본문을 보면 최 씨는 이렇게 말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내가 많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에게 큰 시련이 왔다고 생각하고 시련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자중자애하겠다”고 말이죠. “내가 많이 잘못됐다”는 말은 대체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그래서 일종의 사과의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읽힙니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요?
SBS 아침 뉴스에는 최 씨의 생생한 육성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어젯밤 검찰청에서 밤 늦게 구속영장 집행 순간을 지킨 기자들이 최 씨와 간단한 문답을 했습니다. 기자들을 대표해서 질문을 한 기자는 SBS 사회2부 법조팀의 임찬종 기자였습니다.
기 자: 본인이 왜 구속됐다고 생각하십니까?
최시중: ...
기 자: 위원장님 생각이 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한마디 해주시죠.
최시중: 뭔가 많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 자: 뭐가 많이 잘못된 건가요?
최시중: 네.
기 자: 본인이 잘못하신 거라는 건가요? 아니면 경위가 잘못됐다는 건가요?
최시중: 뭔가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기자가 뭔가 질문하려 하자) 하여튼 나에게 닥친 큰 시련으로 생각하고 이 시련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자중자애 하겠습니다.
기 자: 국민들에게 한 마디 해주시죠.
최시중: (알아듣기 어려운 한 마디에 이어) 드릴 말씀이 그 말씀 아니겠습니까? (주변의 다른 기자들을 돌아보며) 그리고 여러분들 열심히 하십시오.
* 여기를 클릭하시면 실제 발언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
(SBS 생생영상 '최시중 전 위원장 구속 수감' 동영상 보기)
이상이 제가 화면을 몇 번 돌려보며 받아 적은 내용입니다. 기자는 명확하게 ‘자신이 잘못했다는 거냐, 경위가 잘못됐다는 거냐’고 캐묻는데 최 씨는 끝까지 그냥 뭔가가 잘못된 것 같다며 이 일을 자신에게 닥친 ‘시련’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중자애’하겠다, 함부로 행동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사과의 표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끝까지 사과의 표현을 거부한 채 ‘뭔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건 자신의 구속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걸로 비칩니다.
자, 그럼 동아일보의 제목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그리고 “내가 많이 잘못된 것 같다”는 인용은 어디서 왔을까요? 혹시 마감 시간에 쫓기는 조간 신문의 속성 때문에 빚어진 일일까요?
다른 조간 신문은 어떻게 썼는지 찾아봤습니다. 다른 신문에서는 최 씨의 말을 인용한 것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중앙일보는 6면에 사진과 함께 “뭔가 잘못됐다”고 심경을 밝힌 뒤 ‘본인이 잘못했다는 뜻이냐’는 질문에 “하여튼 뭔가가 잘못됐고 나에게 닥친 큰 시련이라고 생각하고 이 시련을 극복할 수 있도록 자중자애하겠다”며 여운을 남겼다고 전했습니다. 대체로 정확하게 발언을 전달한 셈입니다.
최 씨는 이번 금품수수 사건 과정에서 좀 특이한 언행을 보여왔습니다. 검찰에 의해 출국금지된 사실이 언론 보도로 공개된 직후 돈을 받은 사실을 선뜻 공개한 것이나 그 돈의 사용처로 대선 과정에서 여론 조사 등을 거론하면서 사실상 대선자금으로 쓴 것처럼 얘기를 해서 파장을 불러 일으킨 것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최 씨는 여기에 구속영장이 집행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나름 당당한 모습을 하나 추가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표현 하나에 너무 집착한 글이 아니냐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또 동아일보 현장 기자가 일부러 최 씨의 말을 왜곡했을 거라(이른바 '마사지'를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잘못됐다’와 ‘뭔가가 잘못됐다’의 단어 하나 차이가 주는 의미 차이, 이런 것 하나하나에 언론의 신뢰 문제가 걸려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