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제주 해군기지 공사, 끝나지 않는 싸움


구글에서 SBS뉴스 즐겨찾기 추가

제주해군기지사업단은 지난 19일 그동안 ‘보존’ 논란을 빚은 구럼비 바위에서 첫 발파를 시행했습니다. 오후 늦게는 발파작업을 하지 않는 관례를 깨고, 발파작업은 저녁 6시부터 기습적으로 진행됐습니다.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발파작업이 계속됐지만, 이번 발파작업은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이번 발파를 통해 해군은 ‘구럼비 바위 파괴 공사’를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공식적으로 알렸습니다. 또, 제주도의 해군기지 공사 정지 명령을 위한 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발파작업을 진행해, 청문회와 상관없이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도 함께 드러냈습니다.

그동안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갈등 주체는 ‘강정마을 주민+환경 관련 시민단체 회원’과 ‘국방부(해군)+경찰’이었습니다.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마을주민은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고, 경찰은 이를 막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해군은 공사를 단계적으로 진행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갈등의 양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공사를 강행하려는 ‘국방부’와 이를 막으려는 ‘제주도’의 싸움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그동안 제주 해군기지건설 공사를 두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시간을 거슬러 지난 2007년 6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정부당국은 여러 평가 끝에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2008년 9월에 정부는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이를 국책사업으로 승격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2009년 4월엔 국방부장관과 국토해양부장관, 제주도지사가 모여 '15만 톤급 크루즈선 2척의 동시 접안이 가능한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을 건설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정부와 제주도가 조금씩 양보해 타협한 결과물이었습니다. 국방부의 ‘국방력 강화’라는 강한 의지와 제주도의‘서귀포를 해양관광 메카로 만들겠다’는 복안이 절충점을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합의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15만 톤급 크루즈선 2척이 동시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15만 톤급 크루즈 선박의 입출항 관련 시뮬레이션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뮬레이션에선 기존 설계도대로 공사가 진행될 경우, 배가 들어오는 공간이 좁아 항해사가 심리적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이에 국방부는 해결책으로 해군기지 항만 내 서쪽에 돌출형 부두를 ‘고정식’에서 ‘이동식’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동식 부두’ 건설을 전제로 선박 입출항 시뮬레이션을 시행한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제주도는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국방부가 시행한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제주도가 추천한 전문가들이 모두 배제됐다는 게 반발의 주된 이유였습니다. 또, 기술검증위원회가 제시한 풍속과 풍압 면적 등의 기준이 반영됐는지도 의문이라고 반발했습니다. 제주도는 자신들이 추천한 전문가를 참석시켜 시뮬레이션을 다시 하자고 주장하고 나왔습니다. 만약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관련법에 따라 해군을 불러 청문회를 열고 공사 중지명령을 내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실제로 제주도는 지난 21일과 23일 2차례 걸쳐 해군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양측은 지금까지 관련 절차에 따라 냉정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얘기하지만, 속사정은 조금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제주도는 이번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실속은 전혀 못 챙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습니다. ‘과연 이동식 부두를 설치한다고 해도 크루즈 선박이 들어오는 데 문제가 없는지’ 의구심을 가진 것입니다. 부두를 뗐다 붙었다 하는 게 물리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방부가 지금은 ‘이동식 부두’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얘기하지만, 나중에 공사가 끝나면 실제로는 ‘군사항’으로 사용할지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복합형 관광미항 건설’이라는 애초 취지는 사라지고, 제주도가 기대했던 관광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입니다. 공사비용의 절반을 부담하고, 주민 반발까지 무릅쓰고 사업을 추진했는데 아무것도 못 얻을 수 있다며 부글부글 속이 끓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반면, 해군은 제주도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시뮬레이션 결과, 제주도가 주장하는 15만 톤급 크루즈 선박 2척이 동시 입항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또 중앙정부가 국가안위를 위한 중요한 국책사업을 진행하는데 지자체가 반발하고 나선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해군은 법적으로 정해진 절차니 어쩔 수 없이 청문회에 참석하긴 하는데, 내심 불쾌한 표정이 역력합니다. 어느 국방부 관계자는 이런 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제주도의 주장에 뭔가 ‘의도’가 깔렸다고 보고 있다. 4.11총선 이후까지 공사를 중단시킨 뒤 이후 여소야대 정국을 틈타 전면 재검토 내지 백지화 절차를 밟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광고 영역

이런 상황을 보여주듯, 지난 21일과 23일 두 차례 걸쳐 열린 청문회는 큰 실속 없이 끝났습니다. 청문회를 마치고 양측은 “성실하게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았다.”고 공식적인 논평을 내놓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발언일 뿐이었습니다. 청문회는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팽팽했던 양측의 입장을 청문회장 밖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물밑 접촉이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워낙 민감한 사항이다 보니, 양측 모두 원만하게 해결되길 바라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국방부는 2차 청문회 하루 전날인 22일에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을 제주도로 내려 보내 우근민 제주도지사를 만나 타협점을 찾기도 했습니다. 결국 양측은 29일 3차 청문회를 다시 열고, 제주도가 추천한 전문가가 해군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다시 분석하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앞으로의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섣불리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일단 해군이 제주도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이며 1차 고비는 넘겼지만, 곳곳에서 위기상황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내부적으로 공사 중지명령을 내린다는 방침을 확정한 상태입니다. 반면, 해군은 제주도가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리면 주무부서인 국토부의 협조를 받아 제주도의 ‘공사 중지 명령’을 취소시키겠다는 방침입니다. 그럴 경우, 제주도는 다시 법원에 이 취소 조치가 잘못됐다는 소송을 내게 될 텐데, 양측 모두 이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다시피 제주도와 정부 모두 이 문제로 대립이 길어지는 걸 원하진 않습니다. 법적 분쟁이 진행이 되면 정부와 제주도 양측 모두에 이롭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법원까지 가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되, 적정한 수준에서 타협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그럼, 어떤 타협안이 가능할까요?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정부나 제주도 어느 한 쪽이 주장한 대로 될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정부나 제주도 어느 한 쪽의 ‘백기 투항’은 이처럼 지역주민과 반대단체들이 격렬한 반대운동을 하는 사업인 경우, 그쪽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정부와 제주도가 한 걸음씩 후퇴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15만 톤급 크루즈선 입출항과 관련 있는 공사를 ‘일시 보류’하고, 시한을 두고 재검증하는 방안입니다. 정부와 제주도 모두 ‘윈-윈’하는 방안이란 평가입니다. 현재 분위기는 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제주도가 추천한 전문가가 참여하는 시뮬레이션 재검증을 해군이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 재검증 작업은 오는 29일과 30일, 다음 달 6일 이렇게 3차례에 걸쳐 한국해양연구원에서 열립니다.

결국, 이 재검증의 결과에 따라 앞으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제주도가 수용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온다면 해군기지 건설은 급물살을 탈 것입니다. 반면 반대의 결과가 나올 경우, 또다시 갈등이 증폭되며 기지건설 반대 여론이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5년 동안 끌어온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