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째 이어지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갈등

원점 재검토 vs 중단없는 추진 '평행선'


구글에서 SBS뉴스 즐겨찾기 추가

9일 오전 10시께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공사장 서쪽 펜스에 신부와 목사, 평화활동가 등 30여명이 갑자기 모여들었다.

이들은 펜스 외벽에 '門(문)'자가 그려진 천을 붙여 '평화의 문'이라고 선포하고 나서 속칭 '빠루'와 절단기 등을 이용해 펜스를 뜯어내고 안으로 진입, 구럼비 발파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경비용역업체와 공사 관계자들의 제지 속에 곧바로 증원된 경찰에 의해 모두 연행됐다. 구럼비 발파를 막아보려던 시도는 이렇게 끝났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공사를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이들과는 달리 8일에는 한국시민단체협의회와 해군협회, 자유시민연대 등 보수단체 회원 1천200여명이 강정마을에 모여 해군기지 건설을 촉구하는 집회를 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강정천 체육공원에서 열린 행사를 통해 "해군기지는 단지 안보에 관한 문제"라며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인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제주가 세계적 관광도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주해군기지 찬반 갈등은 이처럼 각자의 시각을 굳건히 하며 6년째 이어지고 있다. 갈등의 시발점은 여론조사 과정이다.

◇'뜨거운 감자' 여론조사 = 2007년 당시 김태환 제주지사는 오랜 논란을 부르던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 "'평화의 섬'과 양립 가능하고, 지역경제 파급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최우선 대상지로 발표했다.

도민 1천500명에게 해군기지 유치 여부를 물은 여론조사결과 찬성이 54.3%로, 반대(38.2%)보다 많았고, 후보지로 거론된 대천동과 안덕면ㆍ남원읍 등 3곳을 대상으로 한 주민여론 조사에서도 대천동 찬성률이 56%로 가장 앞섰다는 것이 정책결정의 근거였다.

그러나 강정마을 주민과 사회단체 등이 여론조사 표본의 주민대표성과 객관성 문제 등을 잇달아 제기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찬성률이 가장 높다는 대천동은 강정마을, 용흥마을, 월평마을, 도순마을, 신시가지 일부 구역 등 5개 마을로 이루어진 행정구역을 말하는데 이 가운데 용흥마을과 신시가지 일부 구역의 주소도 모두 강정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표본추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광고 영역

또 정작 해군기지 건설로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곳은 강정마을의 양쪽 옆 마을인 행정구역상 대륜동의 법환마을과 중문동의 대포마을이지만 이들 마을은 아예 여론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강정마을회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바뀌어 '해군기지 유치'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해군기지 건설 반대'로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했던 제주지사는 광역자치단체장 중 처음으로 주민소환투표에 부쳐졌는가 하면, 주민들은 찬반으로 나뉘어 반목의 불씨만 걷잡을 수 없게 커지고 있다.

◇무리한 행정조치..반대측 자극 = 국방부는 물론 제주도의 무리한 행정 조치와 제주도의회의 날치기도 반대 세력을 결집하는데 한몫했다.

국방부는 환경영향평가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2009년 1월 국방ㆍ군사시설 실시계획 승인을 고시해 반대 측을 자극했다.

제주도는 같은 해 9월 25일 제주해군기지 예정부지 중 10만5천295㎡에 대해 절대보전지역 지정을 해제(변경)해 달라는 내용의 절대보전지역 변경 동의안과 환경영향평가 협의 동의안을 제주도의회에 제출했다.

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는 같은 해 12월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 제292조에 보전지역 등을 지정 또는 변경할 때는 주민들의 의견을 듣게 돼 있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아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이를 부결시켰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 다수를 점하고 있던 도의회는 3일 뒤 열린 임시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의원과 무소속 의원 등의 반대 속에 '절대보전지역에 대한 변경동의안'과 '환경영향평가 협의 동의안' 등 2개의 안건을 표결에 부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처리했다.

◇반대여론 확산..정치권 가세 = 제주도는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도의회 등과 정책협의회를 열고 갈등해소추진단까지 구성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주민과 해군, 시공사는 각각 기지 공사 추진 혹은 저지를 둘러싼 법적 대응을 이어가며 갈등의 골만 깊어졌다.

지난해 4월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돼 갇힌 영화평론가 양윤모씨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외치며 59일간 단식했다. 그는 풀려났다가 또 구속돼 지난 2월7일부터 다시 옥중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주민들의 투쟁을 담은 독립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는 등 문화예술계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부정적 여론이 날로 커지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미국의 노엄 촘스키 등 진보적 지식인이 기지 반대 의사를 밝히는가 하면, 뉴욕타임스(NYT)와 CNN 등 외신에 보도되는 등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부상했다.

또 노벨평화상 후보였던 영국 출신 평화ㆍ환경활동가인 앤지 젤터(Angie Zelter)씨는 현재도 매일 강정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야5당으로 구성된 제주해군기지 진상조사단은 제주해군기지 사업의 재검토를 촉구했다.

조사단은 "제주해군기지 사업은 국회가 예산승인 당시 달았던 `민항 위주의 민군 복합형 기항지를 만든다'는 부대의견을 준수하지 않고 환경과 생태계를 훼손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는 특위를 구성해 2007년 당시 정부가 동의한 `국회 부대의견'의 준수 여부를 포함한 사업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총선을 앞두고 지난 7일 강정마을을 찾은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는 "야권연대를 이뤄 제주해군기지 공사를 중단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 정부는 2008년 9월 '제주해군기지 건설과 관련된 크루즈 선박 공동활용 예비타당성 조사 및 연구용역' 발표에서 1조원을 투자해 세계적인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당시 도는 대천동 지역종합발전계획 수립 용역을 조속히 마련해 지역개발사업을 조기에 가시화하고,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 건설되면 대형 크루즈선박 유치를 통해 관광소득 증대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기로 했다.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이란 1만5천t급 크루즈 선박 2척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항구로 규정됐다.

광고 영역

그러나 수장이 바뀐 제주도는 최근 "국방부가 일방적으로 시행한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의 크루즈 선박 입ㆍ출항 시뮬레이션이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는 이런 상황에서 해군이 공사를 강행하자 "2009년 4월 제주도지사와 국방부장관, 국토해양부장관이 체결한 해군기지 건설 기본협약서의 목적인 15만t급 크루즈 선박 2척이 접안할 수 있는지 대한 명확한 판단이 나올 때까지 공사 정지 명령을 검토하고자 한다"며 청문에 응하라고 해군에 요구했다.

◇정부 "중단없는 추진" = 입지 선정은 물론 이후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 훼손 등을 들어 원점 재검토를 주장하는 반대측 요구에도 정부와 국방부는 '중단없는 추진'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4주년 특별기자회견'에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국가 미래와 경제발전ㆍ안보를 위해 올바른 결정이었다"면서 민주통합당 등의 '말 바꾸기' 행태를 정면 비판했다.

이어 정부는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어 크루즈 입항 가부 논란 등으로 공사가 지지부진한 `제주 강정마을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사업을 예정대로 오는 2015년까지 완공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항만 주변 지역발전 사업에 2021년까지 1조771억원을 투입하는 계획을 확정하고 국비 5천787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제주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우리 영해를 수호하고 제주지역의 관광자원을 만들어 지역주민의 소득증대와 일자리 창출에 이바지하는 중요한 국책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국책사업이 지연된다면 경제 손실은 물론 국가안보에 지장이 초래될 것"이라며 "작전의 신속성과 지속성이 보장되고 남방해역 방어가 가능해지려면 제주에 해군기지가 건설돼야 한다"고 거듭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도 강정마을 주민은 물론 국내외 평화활동가, 천주교 사제단과 목사 등 종교인,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이 컨테이너와 천막, 텐트 등에서 생활하며 해군기지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연일 벌이고 있다. 그러면서 그 메아리는 국내외로 계속 퍼지고 있어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