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내 다리를 돌려줘"..어느 '모델'의 항변

'목적이 옳으면 방법은 상관없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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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욕에서 화제가 됐던 건강 캠페인 포스터입니다. 뉴욕시 보건당국의 당뇨 예방 캠페인인데요, 설탕이 많이 든 탄산음료를 마시게 되면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고, 그러면 결국 당뇨합병증으로 손발을 절단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과체중 남성의 오른쪽 다리가 무릎 아래로 잘린 모습이지요.

다소 충격적인 시각효과로 대중의 각성을 유도하려는 이런 방식은 금연 캠페인에서 흔히 쓰여왔습니다. 금연 캠페인이 오히려 강도가 더 세죠. 그래서 처음에는 이 포스터도 큰 주목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사진 속 남성이 '내 다리를 어쨌냐'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면서였습니다.

사진 속의 남자는 클레오 베리(Cleo Berry)라는 이름의 무명 배우입니다. 올해 27살, 지금은 LA에 사는 그는 몇년 전, 방세 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뉴욕 맨하탄의 한 스튜디오에서 모델로 카메라 앞에 서게 됩니다. 모델료는 5백 달러. 그는 자신의 사진이, 이런 저런 디자인이나 출판 회사에 '자료사진'으로 넘어갈 것은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 조작되어 쓰일 줄은 몰랐다고 말합니다. 혹여 앞으로 자신이 배우로서 배역을 구할 때에, 캐스팅 권한을 지닌 감독이 자신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그는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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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 중앙,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이가 클레오 베리 입니다.)

이렇게 두 다리 멀쩡한 클레오 베리의 사진은 포토 에이전시 소유로 남아있다가, 뉴욕시 보건당국의 비만방지 캠페인을 수주한 어느 광고회사에 팔렸습니다. 광고회사는 메시지 전달 효과를 높이기 위해 베리의 다리 한 쪽을 지우고, 사진 우측에 목발까지 합성해 넣었습니다.

뉴욕타임즈 인터뷰에서, 클레오 베리는 자신도 '단 음료와 패스트푸드를 덜 먹으라'는 캠페인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런 방식은 곤란하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메시지가 옳더라도, 옳은 방식으로 전달해야죠.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이 믿나요."

실제로 당분 과다 섭취 때문에 당뇨에 걸려 신체 일부를 절단해야 했던 피해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사진을 써야 옳지 않았냐는 겁니다.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옳다면,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은 좀 문제가 있어도 될까요. 보통사람의 상식으로는 '당연히 안 되는' 일이지만,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 - 미디어, 정치, 광고 등등- 은 자신들의 일에 파묻히다 보면, 이런 '상식'을 쉽게 잊곤 합니다. 저도 그 중 하나이니,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 반성의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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