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작지만 매운 고추, ‘골목형 소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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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에서 잠을 청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막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 ‘삐용삐용’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사회부 기자로 살며 화재를 워낙 많이 접해서인지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 정신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누가 벨을 누르며 문을 세게 두드리는 것입니다. 겨우 일어나보니 소방관 한 분이 다급한 목소리로 옆집에서 연기가 난다며 빨리 대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연기가 나는 집은 문이 잠겨 있어 우선 옆집에 있는 저부터 먼저 대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잠시 뒤 그 문제의 집 주인이 외출 갔다가 돌아왔는데, 확인 결과 가스레인지 위에 국을 올리고 잠시 나갔다가 냄비가 타면서 연기가 난 것이었습니다. 다행이라며 집에 와 다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문뜩 섬뜩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아직 미혼이고 여유가 별로 없어 좁은 주택가 원룸에 사는데, 가만 보니 골목이 좁다보니 소방차가 못 들어오고 소방관이 걸어 들어와 저를 깨웠던 것입니다. 그 뒤론 집 주변 골목길을 지날 때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얼마 전 저의 불안을 덜어줄 새로운 유형의 소방차를 등장했습니다. 이름 하여 ‘골목형 소방차’. 이 소방차는 승합차를 개조해 만든 소방차인데 말 그대로 좁은 골목길에도 쉽게 지나갈 수 있게 일반 소방차의 1/3 크기로 만들어졌습니다. 일반 소방차가 상대적으로 크기가 크다보니 교통체증이나 좁은 골목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문제점을 보완한 것입니다. 특히, 다세대 주택이나 고시원과 같이 화재 대비 시설이 상당수가 좁은 골목길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화재 진압에 매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이 ‘골목형 소방차’는 덩치는 작지만 특수 장비를 두루두루 갖춘 작지만 매운 고추입니다. 우선, 강한 수압으로 철문이나 강화유리를 뚫을 수 있는 ‘고압 분무장치’를 탑재해 문에 작은 구멍을 낸 뒤 안으로 물을 뿌려 화재를 진압할 수 있게 했습니다. 기존에는 소방관들이 문을 직접 열고 화재 현장 안에 들어가 불을 꺼야했는데, 이 경우 문을 여는 순간 산소가 공급돼 불이 밖으로 크게 번지는 이른바 ‘백 드래프트(Back draft)’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 ‘백 드래트프’ 현상은 이것을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을 만큼(분노의 역류, 1991) 소방관들에겐 매우 위협적입니다. 하지만 이 장비를 사용하면 굳이 문을 열지 않고도 불을 끌 수 있어 초기 진화는 물론 소방관들 안전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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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이 아닙니다. ‘골목형 소방차’에는 이산화탄소가스 분무기도 설치돼 있는데요, 이는 문화재나 사찰 등 목조건물 화재 진압에 매우 유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008년 남대문 화재 때 물을 뿌려 밖에 있는 큰 불은 잡았지만 나무 내부의 있던 불을 끄지 못해 소중한 문화유산을 잃었던 적이 있습니다. 왜 그때 소방관들은 불을 제때 끄지 못했을까요? 바로 이 이산화탄소 분무기를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잠시 시간을 내 중학교 화학시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불은 끄는 데는 크게 3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온도를 발화점 이하로 낮춰서 끄는 법, 산소 공급을 차단하는 방법, 탈 수 있는 물질을 제거하는 방법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우리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게 ‘발화점 이하로 온도를 낮추는 방법’인데요, 소방관들이 화재현장에서 물을 뿌리는 게 여기에 속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목조건물에서는 이 방법을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목조건축물에 사용되는 나무는 나무 사이마다 톱밥 등을 넣어 견고하게 만들어지다 보니 물이 나무 안으로 스며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제 남은 방법은 산소 공급을 차단하는 방법과 탈 수 있는 물질을 먼저 제거하는 두 가지입니다. 탈 수 있는 물질을 먼저 제거하는 방법은 주로 산불이 났을 때 쓰는 데, 불이 진행되는 방향에 있는 나무를 먼저 태워버려 불이 옮겨 붙는 것을 미리 막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불을 끄려고 집을 먼저 태울 수는 없겠죠.

결국, 마지막으로 남은 방법이 산소 공급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때 유용한 것이 이산화탄소 가스입니다. 이산화탄소를 넣어 주면 상대적으로 주변의 산소가 줄어들어 불이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 꺼지는 원리입니다. 설명이 길었는데 어쨌든 이 ‘골목형 소방차’에는 이 이산화탄소 분사기까지 탑재가 돼 있어 문화재나 목조건물 화재를 신속하게 진압할 수 있습니다. 여러 모로 유용하고 효율적인 소방차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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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골목형 소방차’는 아직 2대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역시 예산이 부족해서입니다. ‘골목형 소방차’는 한 대당 가격이 약 1억 원 정도로 일반 소방차의 절반 수준입니다. 하지만 기존의 노후소방차를 고치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추가로 예산을 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결국 서울시가 쓰고 남은 자투리 예산을 긁어모아서 겨우 두 대를 구매한 것입니다. 현장에 투입되는 소방관들은 서울에서만 최소 10대 가량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예산이 없다보니 올해까지 4대를 확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나마 행정안전부가 노후소방차 교체 비용 205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예산으로도 충분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송나라의 유학자 구양수가 쓴 '영관전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화환상적어홀미(禍患常積於忽微), 사람이 큰 돌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대부분 하찮게 여겼던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는 뜻입니다. 이번 취재를 하며 가장 많이 생각났던 글귀입니다.

소방장비를 보완하는 게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극히 작은 부분일지 모릅니다. 또, 대형 토목공사처럼 크고 화려하거나 쉽게 드러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작아 보이는 것을 소홀히 했을 때 우리가 접해야 하는 현실은 크고 무겁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 작은 부분에 바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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