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꿀 수 있는 곳은 다 바꿨다. 하지만 다들 훌륭한 인재라 큰 걱정은 없다."
"파격적이다 못해 혁명적이다. 상식 밖의 인사라 할 말조차 잃어버렸다."
얼마 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단행한 '3급 이상 공무원 인사'를 두고 서울시 안팎에서 나온 말입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번 인사는 파격적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저희 기자들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박 시장은 그동안 소수 인력 풀로만 이뤄지던 이른바 '회전문 인사'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재를 중용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습니다. 행정직과 기술직군 사이의 칸막이를 허물고, 연수를 다녀온 공무원들이 교육받은 내용을 실무에 적용할 수 있게 배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 시장의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엇갈립니다. '참신하고 기대되는 인사'라는 평가와 '오세훈 전 시장 색깔 지우기 위해 무리했다'는 상반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소외된 인사들을 배려하려는 의도는 좋지만 전문성과 업무능력 등에 대한 검증은 부족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인사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과제를 풀어야할지 알아보겠습니다.
직급과 연차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역시 이번 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직급과 연차 파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사가 나기 얼마 전 친분이 있는 시의원이 저녁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박 시장이 1급 공무원들에게 모두 사표를 받았다. 아마 그 자리를 파격적인 사람들로 채울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이 중간에 들어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큰 변화를 줄까 내심 반신반의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그 시의원의 예측대로였습니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큰 파격은 역시 이건기 주택정책실장의 승진입니다, 4급(3급 진급 예정)인 이건기 주택정책실장이 이번 인사에서 무려 3단계를 뛰어 1급 자리인 주택본부장으로 올라갔습니다. 한번에 3단계 진급하는 게 규정상 불가능해, 사표를 내고 나간 뒤 다시 채용하는 방식으로 영전했습니다. 일반 공직사회에선 상상조차 하기 힘든, 말 그대로 파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보통 고참 1급 공무원이 가는 자리인 기획조정실장(국가직 1급)에는 정효성 행정국장이 임명됐습니다. 행정국장이 2~3급 자리임을 감안하면 이 역시 파격적인 인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이건기 실장의 경우, 주택본부장 자리는 ‘건축직’이 가야하는 보직인데 이 실장 빼곤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무리해서 인사를 하지 않고, 전임 본부장을 더 기용해야 되는 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에 대해 인사에 관여했던 한 참모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 실장과 정 국장의 경우는 누구든 일만 잘하면 직급과 연차에 상관없이 진급을 시켜주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였다", 결국, '일만 잘 하면 직급이나 연차와 상관없이 바로 승진할 수 있으니 열심히 일해라, 동시에 높은 직급에 있어도 제대로 일 안 하면 언제든 나가게 될 수도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로 풀이됩니다.
멀리 있던 인재들의 중용
"말을 살핌은 비쩍 마른 데서 놓치게 되고, 선비를 알아봄은 가난에서 실수가 생깁니다. 비쩍 말랐다고 거들떠보지도 않은 말 속에 명마가 있고, 행색이 볼품없어 눈길 한 번 받지 못하는 가난한 선비 가운데 숨은 인재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서울시 고위관계자가 박 시장의 인사를 두고 제게 해준 말입니다. 이 말처럼 이번 인사에서는 이른바 '요직'으로 불리는 보직이 아닌 상대적으로 멀리 있던 인재의 중용이 두르러졌습니다.
'부구청장' 보직을 두고 공무원들은 흔히들 '잠시 쉬어가는 자리'라고 표현합니다. 아무래도 서울시보다 업무 규모가 작고, 구청장을 보좌하는 '2인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인사에선 많은 '부구청장'들이 박 시장의 부름을 받아 서울시로 들어왔습니다. 우선, 박 시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복지 분야를 총괄하게 될 복지건강실장(1·2급)에는 김경호 구로구 부구청장이 발탁됐습니다. 또, 서울의 교통정책을 진두지휘할 도시교통본부장(1급)에도 윤준병 관악구 부구청장이, 시민소통기획관(2·3급)에는 안준호 금천구 부구청장이 각각 임명됐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서울시 간부 7명이 자치구 부구청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자치구 부구청장 6명이 서울시와 산하기관 주요 사업의 담당 직위를 맡게 됐습니다. 이를 두고 서울시는 시와 자치구 간의 소통 활성화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어느 자리에서 있더라도 일만 잘 하면 바로 중책을 맡기겠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또, 연수자들의 현업 복귀도 두드러졌습니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이끌게 될 경제진흥실장(1·2급)에는 국내 교육을 마치고 복귀한 권혁소 국장이 임명됐습니다. 이번에 신설된 서울혁신기획관(2·3급)에는 산업지원과장 등을 역임하고 최근 국외 연수에서 복귀한 조인동 국장이 임명됐습니다. 연수 과정을 통해 교육받은 것을 실무에 적용할 수 있게 하는 이른바 '성장 인사'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박원순 시장도 지난 2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회를 줘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만큼 이번 인사에선 외곽이나 소외된 분들에게 기회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컸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일부 공무원들은 전임 시장 시절 업무책임을 물어 좌천됐던 인물이 이른바 '배려인사'를 통해 주요 보직간부로 진입했는가 하면, 평소 업무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인사들도 상당수 보직을 꿰찼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또, 주요 요직에 있던 상당수 고위공무원들이 연수를 갔는데, 연수는 특별한 보직을 주기 어려울 때 한시적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아 오세훈 전임 시장 때 중용됐던 인물들을 바꾸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장르 파괴
행정직과 기술직 사이의 이른바 '장르 파괴'도 눈에 띕니다. 구로구 부구청장에 이례적으로 기술직 출신인 조성일 시설안전기획관이 발탁됐고, 기존에 기술직 간부가 임용됐던 지역균형정책관에는 행정직 출신 남원준 영등포 부구청장이 보임됐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시너지 효과'를 노렸다고 밝혔습니다. 행정직과 기술직이 서로 다른 자리에 가서 그동안 정체돼 있던 조직 문화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서로 다른 직군 간 의사소통을 통해 업무향상을 기하겠다는 의도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핵심 관계자는 서로 같은 직군들끼리 모여 있다 보니 통제가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며, 그런 기득권을 깨기 위해 의도적으로 직군을 바꾸어 배치했다고도 밝혔습니다.
조직 안정성과 업무 전문성이 부족?
이번 정기인사는 박 시장이 취임 초 발표했던 공정·소통·책임·감동·공감·성장 이 6가지 원칙에 의거해 이뤄졌습니다. 그 가운데 '공정'과 '책임' 즉, '\누구에게나 기회는 공정하게 주되 업무성과에 대해서는 엄격히 책임을 묻겠다는 원칙이 이번 인사에 많이 반영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내부에서는 쇄신과 배려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조직의 안정성과 전문성과 업무 능력에 대한 고려와 검증은 다소 미흡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박 시장은 얼마 전 서울시 실·국·본부의 기구를 '1실 8본부 5국 체제'에서 '5실 4본부 5국 체제'로 대거 바꿨는데, 이번 인사에선 '푸른도시국'이 '공원녹지국'으로 바뀐 최광빈 국장을 제외하곤 '5실 4본부 4국'의 수장들을 모두 바꾸었습니다. 쇄신과 개혁의 이미지가 강한 장점이 있는 반면 조직의 안정성과 전문성을 해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우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서울시는 이번 달 안에 4급 이하, 다음 달엔 6급 이하 승진전보 인사를 마무리할 예정인데, 공무원들 사이의 분위기는 어수선해 보입니다. 얼마 전 1급 공무원 6명 가운데 5명에게 사실상 퇴진을 요구한 데 이어 이번 3급 이상 인사마저 파격적으로 나오자, 공무원들은 앞으로 있을 4급 이하 인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일손을 잡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박 시장이 4급 이하 인사는 최소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술렁이는 분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됩니다. 그런 점에서 공직 인사는 냉정해야 하고 안정성도 중요한데 박 시장이 시민단체 있을 때처럼 너무 파격적인 변화를 가져온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습니다. 박 시장은 파격적인 인사 실험(?)을 통해 만사의 첫 걸음을 땠습니다. 이제 ‘박원순 호’가 어디로, 어떤 항해를 할지 시민들은 기대 반, 걱정 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