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띵하고 역한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화재 현장에 가면 으레 나는 참기 어려운 냄새. 골목 안에 집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아주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들어가면 그곳에 18살 박 모군의 집이 있었습니다.
현관문 안 좁은 길을 따라가면 4평 남짓한 집이 나옵니다. 부엌과 이어지는 곳엔 거실 대신 '방'이라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방과 부엌을 구별하는 문은 원래 없는 건지, 불에 타버린 건지 존재 자체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부엌은 1평, 방은 3평인 셈입니다. 부엌에서 나온 뒤 방쪽 외벽을 따라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공간을 따라 걸어가면 손바닥만한 크기의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말 그래도 '단칸방'인 이 집에 박 군을 포함해 모두 네 식구가 살았습니다.
박 군은 시각장애가 있어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간질 증세도 있고, 다리도 불편했습니다. 박 군의 할머니는 중증 치매를 앓고 있습니다. 박 군의 아버지는 몇년 전까지 채소 장사를 했지만, 지금은 직업이 없습니다.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인 박 군의 형이 집의 가장 역할을 했습니다. 닥치는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몸이 아픈 동생과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를 돌봤습니다.
하지만 버는 돈은 턱 없이 적었고, 추운 겨울이 오자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박 군의 가족은 집에 있는 기름보일러를 땔 돈이 없어 2년 동안 한 번도 보일러를 틀지 못했습니다. 냉골 속에서 괴로워하는 어머니와 아들을 위해 박 군의 아버지는 부탄가스를 이용해 낚시용 버너를 방 안에 켜놓고, 바닥엔 전기장판을 깔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추위를 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12일. 그날 따라 집은 몹시 추웠습니다. 전기장판도 역부족인 추위였고, 박 군의 아버지는 추위에 떠는 어머니와 아들을 위해 낚시용 버너를 켜 놓고 잠시 외출했습니다. 그 사이 일이 터졌습니다. 갑자기 타오른 불길이 순식간에 단칸방을 집어 삼켰습니다. 네 식구가 살기에 턱 없이 비좁았지만, 그래도 그들에게만큼은 아늑했던 그 공간은 시커먼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불과 8분만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박 군의 할머니는 다행히 이웃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에 의해 신속히 구조됐습니다. 불이 나기 직전 방에서 나와, 집 밖에 딸린 화장실에 가 있었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던 박 군은 밖으로 나올 수 없었습니다. 불편한 다리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중증 치매인 할머니도 박 군을 도울 수 없었습니다. 결국 박 군은 싸늘한 주검으로, 잿더미가 된 집 안에서 발견됐습니다.
박 군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박 군의 아버지는 손이 까맸습니다. 입고 있던 새하얀 웃도리도 거뭇거뭇합니다. 불이 난 집 안 구석 구석을 미친듯이 돌아다니며, 만지며, 오열했을 흔적들입니다. 그는 어머니가 입원한 고대 병원부터 찾아갔습니다. 치매를 앓았어도, 아들만은 늘 알아보시던 어머니는 그날만큼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간지럼을 태워 드리자, 언제 그랬냐는듯 아들을 보며 아이처럼 웃습니다. 어머니의 웃는 얼굴을 뒤로 하고, 박 씨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장례식장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영정 사진 속에는 언제나 착하고 말 잘 들었던 막내 아들의 얼굴이 있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버너를 켜놓고 나온 자신이 원망스러 누구도 탓하지 못했습니다.
기자와 만난 박 씨는 말했습니다. 기름 값이 없어 2년 동안 보일러를 한번도 틀지 못했다고. 상대적으로 난방비가 덜 드는 가스보일러로 바꾸고 싶었지만, 설치비가 없어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전기장판이 위험하고, 부탄가스가 위험한 건 자신도 잘 알았지만, 추위에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은 저렴한 가스보일러를, 가난한 사람들은 값비싼 기름보일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억울했습니다.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난방비도 없었습니다.
박 씨 같은 사람들을, 우리는 '에너지 빈곤층'이라고 부릅니다. 소득의 10% 이상을 난방비로 써야 하는 사람들로, 이런 가정은 120만 가구가 넘습니다. 이들에겐 전기장판이나 부탄가스가 냉골을 참아낼 수 있는 유일한 난방 도구입니다. 이들에게 연간 17만 원 규모의 에너지 쿠폰을 지급하는 내용의 '에너지복지법'이 다행스럽게도 지난해 10월 발의됐지만, 1년 넘게 국회에서 표류 중입니다. 정부와 이웃이 에너지 빈곤층을 외면하는 사이, 이들의 목숨을 건 위험한 겨울나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박 군의 죽음에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