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약간 과장을 보태면) '동네북' 신세가 됐다. 어정쩡한 통화정책 때문이다.
비판의 요지는 이렇다. 그동안 금리를 선제적으로 인상하지 않은 탓에, 대외 불안 요인이 불거졌을 때 금리 인하라는 대응 수단을 쓰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속에서 물가와 경기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지적이다.
금통위는 지난해 7월부터 기준금리를 5번이나 올렸다. 하지만 인상폭은 대단히 소심했다. 격월로 0.25% 포인트씩. 금통위는 이를 '베이비스텝'(점진적 금리정상화)이라고 둘러댔지만 농수산물 값 폭등에서 시작된 물가 상승에 전기료와 도시가스, 대중교통 요금까지 가세하면서 올해 내내 서민경제의 주름살을 키우고 있다. 고공행진하는 물가 오름 속도에 비해 통화정책은 매번 한발 늦는다는 비판이 그래서 나오고 있다.
이번 달에도 금통위는 금리를 동결했다. 벌써 6개월 째이다. 금통위로선 별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유럽발 재정위기는 도통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금융시장은 계속 불안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가는 손도 못대고 있는데 대외 불안 요인 때문에 경기마저 둔화 국면으로 본격 진입하면서 시중에선 오히려 금리를 낮춰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브라질, 호주, 인도네시아 등은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응해 금리를 낮췄고, 중국도 지급준비율을 낮춰 경기 부양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바꿨다.
중앙은행의 최우선 목표는 '물가안정'이다. 하지만 지금 한은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사실상 상실했다. 물가가 오르면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가 된 지 이미 오래된 상황, 저금리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는 커질대로 커져 있지만 대내외적 불안 때문에 금리를 더 끌어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뒤늦게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올렸다간 가뜩이나 찬바람 쌩쌩 부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기업들은 내년 실적 전망치를 낮추고 있고, 고용도 줄어들 전망이고, 수출 부진은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 카드는 쌩뚱맞을 수밖에 없다.
경기가 그리 나쁘지 않을 때 금리 정상화에 속도를 냈더라면 가파르게 뛰는 물가에도 일부 제동을 걸수 있었을 것이고, 지금처럼 대외 불안요인이 부각될 때 금리를 내릴 수 있는 통화정책의 여력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 건 이 때문이다.
금통위의 고민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원래 금리란 게 올리든 내리든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금리를 올리면 가계 부실과 경기 위축을, 내리면 물가를 부추기고 가계빚을 늘리는, 어느 쪽도 부작용을 피할 수 없는 양날의 칼이다. 그래서 금리정책은 어디에 방점을 둘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외로운 싸움이다. 일시적인 기상 이변으로 인한 물가 상승의 영향을 과소 평가했을 수도 있고, 경기 불안의 신호가 오래 전부터 나와 있는 상황에서 앞장서 금리를 올려 경기를 옥죄는 게 과연 합당한가 하는 고민도 했을 것이다. 0.25% 포인트라는 베이비스텝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도 한 금통위원은 "0.25% 포인트 이상의 금리 인상은 비상 상황일 때나 집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시장의 오해를 낳을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시장의 평가는 냉정하다. 경기 침체 막겠다는 '고육지책'이라며 금통위의 고민을 이해해 주려는 의견보다는 '물가안정'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해태했다는 비판 쪽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 사실이다. 통화정책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시장에 적절한 신호를 주지 못했고, 그래서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훼손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물가와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준금리가 4% 이상은 돼야 하고, 그런 점에서 한국은행의 금리정책은 대단히 소극적이었다고 정면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 오해와 비판을 한국은행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금통위원 7석 가운에 1석을 지금까지 1년 넘도록 공석으로 방치해 둔 건 금통위에 대한 불신을 키운 대표적인 사례이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금통위원 공석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문제없다.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그러나 7명이 할 일을 6명으로 하는 건 상당히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금통위 정원을 7명으로 정한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 일 것인데 일 년 넘게 한 명이 빠져도 문제없다고 하니 '아예 정원을 줄이라'거나, '두 명이 빠진들 어떠냐'는 농담섞인 비판도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2명의 금통위원이 금리인상을 강하게 주장해도 한 표가 모자라 동결된 경우가 몇 차례 있는 것을 보면, 금통위원 한 사람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워낙 오래 자리를 비워 두다보니 지금은 누굴 앉히기에도 상당히 부담스럽게 됐다. "저 사람 앉히려고 그렇게 비워뒀느냐, 배경은 뭐냐, 현 정권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 사람이냐"는 둥 뒷말이 많을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한은은 정상화시킬 것이 많다. 괜한 오해와 불신을 초래한 금통위원 공석 사태도 그렇고, 고물가와 가계빚 급증을 야기했다는 비판 속에 최장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실질금리 마이너스의 상황도 어떻게든 손질을 해야 한다. 문제는 세계 경제도 그렇고 우리 경제도 그렇고 내년 이후 당분간은 어려움이 계속될 것으로 보여서 한은의 뒤늦은 정상화 노력이 의도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낙관할 수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