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찬 종로 경찰서장. 한 동안 논란의 중심에 섰던 사람입니다. 박 서장은 기억할지 모르지만 저는 박 서장을 두 번 만났습니다. 냉철하고, 합리적이며,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경찰. 제가 받은 박 서장에 대한 인상입니다.
박 서장에 대한 부하직원들의 평가도 칭찬일색입니다. "다시 또 함께 일하고 싶은 분." 제가 만난 종로경찰서 일선 직원들의 박 서장에 대한 평가입니다. 아마 부하 직원들에게 이런 평가를 받는 상사를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종로 경찰서장이 11월 26일 토요일 한미 FTA 반대 집회 도중 시위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폭행을 당했다고 기자회견을 했고, 많은 언론과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왜 종로 경찰서장은 시위대 속으로 들어갔을까요?
집회 당일 저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 서장이 시위대 속으로 들어갈 때 함께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박 서장이 세종로 파출소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현장에도 있었습니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인 밤 9시까지, 살수차를 동원해 시위대를 해산시키겠다는 경찰의 방송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후방에 있던 살수차들이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던 전경들 바로 뒤로 앞당겨지고, 물대포는 시위대를 향해 조준됐습니다. 영하의 날씨에 물대포를 사용해서 논란이 일고, 인권위까지 나선 지 이틀 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살수차 바로 옆에 인권위 직원들도 나와 있었습니다. 분위기는 급박하게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급반전됐습니다. 9시 15분쯤이었습니다. 전경들이 도열해 있고, 살수차 2대가 대기하고 있던 광화문 교보빌딩 옆으로 박 서장을 비롯한 종로경찰서 직원들이 등장했습니다. 뭔가 신호를 주고받고 주위를 살피더니 자리를 떴습니다.
그 사이 해산 방송은 계속됐지만, 당장이라도 해산시킬 것 같았던 이전과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그리고 9시 반 쯤, 박 서장 일행이 전경들 뒤쪽에 다시 나타났고, 전경들이 길을 열면서 박 서장 일행은 시위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여 저도 박 서장 일행을 뒤따랐습니다.
박 서장이 갑자기 시위대 속에 나타나서인지 사람들이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발사된 물대포 때문에, 그리고 물대포로 해산시키겠다는 해산방송에 흥분해 있던 시위대였습니다. 몇몇 시민들이 ‘조현오다’라고 외치며 몰려들었고, 박 서장 일행과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박 서장을 향해 손이 날아들었고, 견장이 찢겨나갔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폭행을 유도하는 거다. 그냥 보내주자. 말려들지 말자"고 소리치기도 했습니다. 박 서장은 빠져나갔고, 저도 다시 빠져나왔습니다.
얼마 후, 박 서장이 폭행 관련해서 긴급 기자회견을 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박 서장은 기자회견에서 폭력 행위는 묵과할 수 없는 행위이며, 자신은 그런 폭력행위가 있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시위대 앞에 있던 국회의원에게 대화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기는 했지만 답변을 듣지는 못 했다고 했습니다. 시위대 속으로 들어간 것은 관할 경찰서장으로서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한 결정이었고, 자기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폭행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습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자신의 의사표현을 상대가 막는다고 하더라도 폭행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야 합니다. (일부에서는 박 서장을 폭행한 손이 경찰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합니다만 저는 서장 옆쪽에 있어서 그 손이 누구의 손인지 알지는 못 합니다. 다만 당시 분위기로 봤을 때 시위대의 손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 날 박 서장의 행동과 발언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박 서장은 만나자는 국회의원의 답변을 듣지는 못했지만, 국회의원과 시위대를 막기 위한 관할서장이라는 공인 사이에 그것이 뭐가 중요하냐고 이야기합니다. 시위대와 진압 경찰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경찰서장이 시위대 속으로 들어갈 때 상대로부터 만나자는 말을 사전에 들었는지가 뭐가 중요하냐는 답변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박 서장은 당시 시위에 대해 잔뼈가 굵은 참모들과 서울청 정보계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참모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고지나 사전 합의도 없이 불쑥 시위대 속으로 들어갔을 때 충돌이 있을지 예상을 못 했다는 것, 그리고 충돌을 넘어선 폭행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현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많은 기자들이 예상했던 것을 왜 박 서장은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박 서장은 시위대 속으로 들어간 결정은 자신이 내린 것이며 관할 서장으로서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믿습니다. 하지만 전례를 찾기 힘듭니다. 박 서장은 비슷한 일이 벌어졌던 반값 등록금 집회에서는 왜 그러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까요? 왜 하필 한미 FTA 저지 집회에서 전례에 없던 결정을 하게 된 것일까요?
박 서장의 기자회견 이후 카메라 기자 선배와 씁쓸한 예상을 했습니다. 경찰이 채증 사진이라며 폭행 당시의 사진을 언론에 제공할 것이고, 일부 언론은 박 서장 왼쪽의 떨어진 견장을 찍어 불법 시위대의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보도할 것이다. 예상은 씁쓸하지만 정확히 맞아 떨어졌습니다.
저는 박 서장이 시위를 평화적으로 조기에 종결하기 위해서 그러한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박 서장 혼자 결정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다만, 진정 평화롭게 집회를 마무리 짓기 위한 것이었다면, '살수차를 동원해 집회를 해산하겠다'고 반복적으로 방송하던 방송차를 이용해 '시위와 관련해 국회의원과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라는 짧은 고지라도 있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만난 일선 경찰들의 이야기가 귓가를 맴돕니다. "우리도 왜 들어가셨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결정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