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독재자 아버지에 평생 '저항'

"스탈린 꼬리표가 붙은 정치범일 뿐"


오프라인 대표 이미지 - SBS 뉴스

딸을 각별히 아끼는 아버지들을 일컬어 요즘 흔히 '딸바보'라고 합니다. 옛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도 유명한 '딸 바보'였는데요. 오늘은 수백만 명을 희생시킨 철권 통치자의 외동딸, '스베틀라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스탈린에게는 아들 둘에 딸 하나, 이렇게 3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는 외동딸 스베틀라나를 '작은 참새'라고 부르면서 유독 큰 애정을 쏟았는데요, 독재자 시절이었기 때문에, 스베틀라나는 사실상 왕정 시대의 공주나 마찬가지였죠. 그러니 소련 전 국민도 이 공주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목했습니다. 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 이름을 '스베틀라나'로 짓는 게 유행이었고, 같은 이름의 향수가 출시됐을 정도로 스베틀라나는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의 딸도 아닌, 독재자 '스탈린'의 딸이었기 때문입니다. 스베틀라나가 성장하면서 아버지의 잔혹함을 깨닫게 하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집니다. 10대 시절 우연히 영어 잡지를 보다가 맹장염으로 죽었다던 어머니가 사실은 자살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게 아버지와 멀어지게 된 첫 번째 일입니다. 이후 자신의 첫사랑을 총살하려 한 것도 모자라, 수용소에 강제로 보내버린 사실을 알게 되고, 이복 오빠를 전쟁 포로로 숨지게 한 일까지 벌어지자 결국 아버지와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죠.

그녀는 이후 스탈린을 줄곧 부정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요, 그 행보가 본격화한 것은 1953년 그러니까 스탈린이 숨진 뒤였습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어머니의 성을 택한 일입니다. 당연히 소련 당국의 시선이 고왔을 리 없겠죠. 주변에는 늘 국가보안위원회, KGB 요원이 따라붙었는데, 1967년 그녀는 감시 속에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대형 이벤트를 펼칩니다. 인도를 방문한 뒤 KGB를 따돌리고 미국 대사관으로 들어가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소련과 미국의 냉전이 한창이던 때여서 '스탈린의 딸'이 미국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국제 사회에 큰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더군다나 그녀는 망명한 뒤 표현의 자유를 위해 미국을 선택했다며 아버지의 체제를 서슴없이 비판하기도 합니다. 특히 공개적으로 소련의 여권을 불태운 일은 그녀를 단숨에 '냉전 시대의 스타'로 등극하게 했습니다. 소비에트 체제의 가장 중심에 있던 그녀가 이제 소비에트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격수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그녀는 이후 두 권의 자서전을 출간해 미국에서 큰 돈을 벌어들였고 1978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습니다. 완전히 미국인의 삶을 선택한 것인데, 그럼에도 '스탈린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떼기는 쉽지 않았던 듯 합니다. 그녀는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지나갈 때마다 '스탈린 딸이야', '스탈린 딸이야'라고 수군거립니다. 마치 내가 미국인들을 겨냥할 총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면 옆에서 또 이렇게 말해요. '아니야. 이제 미국으로 왔잖아. 이제 저 여자도 미국 시민권자야'. 난 어느 곳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했어요."

올해 85세로 회한의 삶을 마감한 스베틀라나. 지난 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스탈린이 내 인생을 망쳤다"며 원망하기도 했는데요. "어딜가든 아버지 스탈린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었고, 나는 그의 이름 아래 정치적 죄수일 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평생을 아버지에게 저항한 그녀로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그림자를 지우지 못한 것이 무엇보다도 괴로웠을 것입니다.

댓글
댓글 표시하기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