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가습기살균제① 세제 성분이 곧장 폐로 들어간다

샴푸에서 세제까지… 4대 폐손상 의심성분 공개


대표 이미지 영역 - SBS 뉴스

"위험에 대한 정보는 없다"...'위험 소통'의 부재

공산품을 살 때, 소비자가 효능을 알고자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온갖 광고로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반면 부작용은 어떨까요. 공산품의 부작용은 언제나 취재나 연구가 있을 때만 밝혀질 뿐, 쉽게 알려지는 법은 없습니다. 공산품은 늘 새로운 것들이 발명되고 생활필수품 목록도 그만큼 불어납니다. 소비자들은 효능엔 밝지만 부작용엔 무지한 상태로 불안 속에 구매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세계 3대 사회학자의 한 사람으로 불리는 울리히 벡은 이런 현대 사회의 속성을 ‘위험사회’로 정의했습니다. 쉽게 이해하자면, '비행기나 고속철처럼 편리한 게 많아지니까 사고 위험도 크다'는 단순한 개념어일 것입니다. 그러나 개념의 이면엔 지식체계의 불균형를 경고하는 통찰이 담겨있습니다. 물질적 풍요를 가능케 한 수많은 시스템. 그것의 사용법은 환하게 알지만, 부작용 즉, 위험에 대한 정보는 없는 사회. 이런 '위험사회'는 주기적인 재앙에 직면한다는 게 벡의 생각입니다.

"가습기 살균제에 인체위험 4대 성분"

지난 4월 이런 ‘주기적 재앙’이 또 한 번 우리사회에 닥쳤습니다. 소비자는 공포에 빠졌습니다. 임산부 4명이 폐가 딱딱하게 굳는 미확인 폐질환으로 비슷한 시기에 잇따라 숨진 겁니다. 사고 넉 달 만에 질병관리본부는 원인물질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원인물질을 밝히진 않았습니다.

실제 국내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한 가습기 살균제를 보면,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쓴다는 광고 문구만 있을 뿐, 성분에 대한 정보는 한 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폐질환을 일으키는 게 어떤 성분인지 정부의 발표도 없고, 제품에도 쓰여 있지 않다 보니 소비자가 혼란에 빠진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지난 1일 SBS 취재로 일부 성분이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미확인 폐질환의 원인물질로 지목된 가습기 살균제엔 샴푸나 세제에 들어가는 화학 성분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물로 씻으면 안전하지만 폐에 직접 들어가면 위험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전현희 의원실이 입수한 성분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포스페이트’는 주방이나 욕실의 곰팡이 제거제에 쓰도록 식품의약품안전청 고시로 허가된 물질입니다. 두 번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린’과 ‘메틸이소티아졸린’으로 두 물질 모두 샴푸나 세안제, 방부제에 써도 좋다고 허가받았습니다. 끝으로 ‘염화 에톡시에틸구아니디움(올리고)’은 급식소 조리기구 세척제에 들어갑니다.

광고 영역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폐에 살균제를 집어넣는 행위다"

이런 성분들은 가습기살균제에도 들어가도 좋다고 허가된 것들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이들 성분을 제조에 사용해도 좋다고 허용한 제품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샴푸나 세제처럼 사용 후 물로 씻어낸다는 것입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번에 가습기살균제를 이번 폐질환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추정하면서, 살균제를 배양한 폐 세포에 직접 닿게 했더니 세포가 손상되는 걸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 성분이 결국 폐 세포를 손상하는 주범이란 사실을 실험으로 확인한 겁니다.

샴푸나 세제에 들어가는 성분들이 가습기살균제에도 똑같이 들어간다면, 가습기를 통해 폐까지 직접 유해물질이 들어간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장인 백도명 교수 등 환경운동연합 환경시민센터 회원 10여 명은 정부가 원인을 발표한 지난달 31일 긴급회의를 가졌습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가장 먼저 이런 점을 경고했습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가습기’와 ‘살균제’는 같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며, "정부는 가습기문제가 아닌 가습기살균제문제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초음파식(또는 분무식) 가습기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물 입자는 폐 깊숙이 흡입될 수 있어, 언제라도 화학물질이나 바이러스가 흡착되어 폐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기구다"라고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장치인 가습기에 세정이나 살균을 목적으로 살균성분을 투여하는 '가습기살균제'라는 제품의 사용은 곧바로 폐에 살균제를 집어넣는 행위와도 같다"고 매우 비관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런 성분들은 식약청이 안전성 검사를 거쳐 피부에 닿더라도 물로 씻어 내면 인체에 해롭지 않다고 판단해 허가를 내 준 것들인데요, 이런 성분이 가습기의 기포와 결합해 직접 폐 속으로 들어간다면 유해성에 대한 판단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염증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유해 물질이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임종한 인하대병원 산업의학과 교수는 "이물질로 작용해 염증 반응을 유발하는 독성을 가진 물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성 평가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에 나온 게 문제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문의들은 이런 물질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체질을 가진 사람은 폐에 생긴 염증이 결국 폐 섬유화로까지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뒤늦은 대책...우선 가습기살균제 사용 피해야"

이런 유해성분이 가습기살균제의 성분이 될 수 있었던 건 당국이 일반 공산품으로 방치했기 때문입니다. 의약외품이 아니다 보니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관리를 받지 않았던 겁니다. 현재 식약청은 샴푸와 비누는 물론 살충제까지 인체와 접촉하는 화학물질은 모두 안전성이 검증된 것만 사용 기준을 정해 사용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체에 직접 흡입되는 물질이 공산품이란 이유로, 완전한 사각에 놓여 있던 겁니다.

그래서 당국도 살균제 사용 중지를 권고함과 동시에, 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전환해 식약청에 관리를 맡기기로 한 겁니다. 미생물을 억제하는 살균제 특성상 국산과 수입제품 모두 비슷한 성분을 쓰이고 있는데요, 때문에 전문가들은 앞으로 석 달 뒤 정부의 최종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진 살균제 사용은 피하고, 가습기를 자주 청소해 깨끗한 물만 사용하는 게 최선책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