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게 중국은 적 혹은 친구?

G20 완패가 미국에 준 충격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지역을 순방하고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났습니다. 중간선거 패배의 충격을 그대로 안고 인도로 떠나 인도네시아,한국,일본을 도는 강행군이었습니다.

이번 순방의 최대 목적은 다름 아니라 아시아의 공룡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인도를 방문해 인도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고 공개 발언한 것도 점점 커지고 있는 중국의 목소리를 견제하기 위한 의도였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입니다. 한국,일본과의 유대를 다시 한 번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미국 언론과 정치권은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실제로 벌어진 전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에 완패를 하고 말았습니다.무슨 얘기냐 하면 서울에서 있었던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공동선언에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내용을 담는 데 실패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주요 참가국 정상들을일일이 만나 이번에 가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다른 나라 정상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얘기를 외면했습니다. 그래서 환율문제는 시장에 맡기는 방향으로 간다는 원칙적인 내용만 담겼습니다. 상대적으로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승리의 기쁨을 맛본 셈이죠.오바마 대통령이 G20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중국 위안화 문제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 수출분야에서 경쟁하는 많은 나라들에게 대단히 짜증나는 주제다.”라고 불만을 숨기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G20이 끝난 뒤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되짚어 보는 글들을 실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런 기사들의 제목 또한 공통적이었습니다. '중국, 적인가 아니면 친구인가?'였습니다. 그리고 명시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은 필연적으로 미국의 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들이 그 기사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 중 CNN 특파원의 기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을 만났더니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중국의 성장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현재 세계에서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초강대국 지위에 중국이 도전하는 일은 결코 없다. 그 면에서 미국은 안심해도 된다. 왜냐하면 세계를 리드하는 미국의 역할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중국은 그럴 여유가 없다. 따라서 중국은 돈이 많이 드는 세계 최강대국으로서의 역할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외교부 대변인 개인의 생각일 수 있고 중국 정부의 공식 태도일 가능성도 있지만, 상당히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얘기입니다.

문제는 그런 중국 정부 당국자의 말을 미국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이미 중국은 그동안 미국이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아프리카를 집중 공략해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경제적 원조를 해주는 대가로 아프리카의 막대한 자원을 확보했습니다.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 어느 나라고 중국과의 무역 없이 돈을 벌 수 없게 됐습니다. 그동안 미국의 소비에 의존해왔던 세계 경제 성장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는 뜻입니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이번 순방기간 "그동안 아시아 국가들은 수출하고 미국 소비자들이 소비하는 방식의 경제 성장방식에는 한계가 왔다."고 인정했습니다. 이젠 미국도 수출을 통해 수익을 내고 일자리도 더 만들어내야 하겠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수출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다름 아닌 중국일 수 밖에 없습니다.세계 경제가 미국 못지 않게 중국에 의존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는 것이죠. 수천억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 미국의 채권을 닥치는 대로 사들인 중국,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곳 워싱턴DC의 경제전문가들도 “이제는 미국 재무부가 아니라 중국 중앙은행 총재가 하는 말이 세계 경제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사실 미국내에서 중국을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공개적으로 표출된 것은 지난 중간선거였습니다. 중국이 미국과의 수출에서 막대한 흑자를 내고 있는데, 그런 중국 때문에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그런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강조했던 후보들은 미국 편이 아니라 중국 편이다, 그러니 떨어뜨려야 한다는 광고가 미 전역을 휩쓸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자기 생각을 말했는데요,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세계 경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안다. 그런데 그 원인이 중국 위안화 가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들이 감기에 걸렸다고 해서 중국에게 약처방을 해달라고 요구해서는 안된다." 상당히 냉소적이면서 미국측에서 보면 아플 수 밖에 없는 말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전략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중국의 부상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런 중국의 급부상을 바라보는 다른 나라들의 우려와 걱정,두려움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 핵 문제에서, 천안함 사태에서 중국은 국제사회의 공통된 인식과 달리 무조건 북한 편을 들었다. 이란 제재에는 마지못해 협력했지만 북한 제재는 외면하고 있다. 희토류를 자기들 영토 주권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을 아직도 수감하고 있는 인권탄압 국가다.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성장률도 세계에서 최고고, 한 세대 후에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혹은 앞서는 G2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지만 그런 경제력에 걸맞게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책임있는 역할을 할 준비가 돼있지 않은 나라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이번 오바마대통령의 아시아 순방도 그런 전략에서 추진되고 성사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미국이 중국을 적으로 보느냐 친구로 보느냐에 상관없이 그런 말이 나오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100년전 영국을 제치고 무서운 기세로 세계의 중심국 자리를 차지했던 미국이 잠자던 아시아의 공룡 중국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쓸쓸히 그 자리에서 물러서야 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따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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