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려 미끄러운 그라운드. 신장과 체력의 열세. 하지만 태극낭자들은 연속 실점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태극마크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그라운드에서 땀을 쏟았고, 관중은 태극낭자들의 선전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최인철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U-20) 여자 대표팀은 29일(한국시간) 독일 보훔에서 한국의 남녀 축구 사상 처음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결승 진출에 도전했지만 세계 최강 전력을 자랑하는 독일의 벽에 막히면서 좌절의 쓴맛을 보고 말았다.
조별리그 3경기와 8강전을 합쳐 11골을 폭발하며 경기당 평균 2.8골의 높은 득점력을 자랑해온 태극낭자들은 한 뼘이나 더 큰 독일의 장신 수비진의 벽을 뚫지 못하면서 5골이나 내줬지만 골잡이 지소연(한양여대)이 포기하지 않고 한 골을 따라가는 끈질긴 저력을 보여줬다.
특히 이날 유일하게 골 맛을 본 지소연은 5경기에서 7골을 터트리며 독일의 알렉산드라 포프(9골)와 득점왕 경쟁에서 한발 물러서고 말았지만 독일의 수비벽을 무너뜨리며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지켰다.
조별리그와 8강전을 치르며 승승장구했던 한국은 독일과 4강전을 앞두고 쉽지 않은 경기가 예상됐다.
무엇보다 비가 내려 미끄러운 잔디 때문에 한국 특유의 패스 플레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경기 초반 심판 판정도 한국에 불리한 느낌이 많았다.
전반 43분 지소연이 페널티지역 중앙 부근에서 상대 수비수에게 눌리면서 넘어졌지만 볼이 이현영에게 이어지면서 주심은 그대로 경기를 진행시켰다. 하지만 페널티킥을 줘도 될 법한 상황임이 틀림없었다.
이에 앞서 이현영도 페널티지역 오른쪽 부근을 돌파하려다 독일 수비수의 반칙성 태클에 걸리며 넘어졌지만 주심은 발이 볼을 겨냥했다는 판정을 내렸다. TV를 통해 보여진 느린 화면에서는 이현영이 수비수의 발에 걸린 게 명확했다.
이처럼 악조건에서 태극낭자들은 독일의 파괴력 높은 공격에 무너지고 말았고, 포프와 킴 쿨리크에게 각각 두 골씩 내주며 지난 4경기에서 내줬던 4실점보다 더 많은 5실점의 아픔을 겪고 말았다.
그러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은 이날 경기에서도 한국은 희망의 빛을 찾을 수 있었다.
전반 10분에는 정영아(울산과학대)의 크로스를 스트라이커 정혜인(현대제철)이 독일의 장신 수비벽을 뚫고 정확한 왼발슛으로 골에 가까운 장면을 만들었고, 후반 19분 지소연은 상대 수비수 2명을 무력화하는 멋진 드리블로 귀중한 골을 터트렸다.
하지만 아직 태극낭자들에게는 한국 축구사를 새로 쓸 기회가 남아있다.
내달 1일 치러질 3-4위전에서 승리한다면 역대 FIFA 주관 대회에서 남녀 대표팀을 통틀어 가장 높은 등수인 3위를 차지할 수 있다.
한국은 지난 1986년 멕시코 U-20 월드컵에서 4위를 차지했고,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도 4위에 올랐던 게 역대 최고 순위였다.
비록 결승진출 문턱에서 좌절한 태극낭자들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3-4위 전에서 최고의 경기를 보여달라는 게 국내 축구팬들의 공통된 소원이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