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방선거가 남긴 것들…

여당에겐 패배를, 야당에겐 숙제를 주다


일부러 각본을 쓰려 해도 이렇게는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지방선거 얘기입니다. 국민이라고 하는 깊은 호수는 거의 모든 언론이 예단했던 것보다 많은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들 그동안 수면에 이는 물결만 보고 그 속에 뭐가 있다고 이러쿵저러쿵 '찍기'를 한 셈이 됐습니다.

몇 차례의 선거, 가깝게는 지난 대선과 총선(크게 봐서 그 두 선거는 동일한 구도 속에서 치러진 것이라고 봐야겠지요)과 비교해 봐도 민심의 변화를 정말 체감할 수 있는 선거였습니다. 하지만 선거에서 배워야 하는 건 여도 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뿐일까요? 정치권만 생각할 거리를 안게 된 것이 아니지요. 지난 선거 결과와 이번 선거 결과를 만든 유권자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먼저 여당인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 정부가 가장 반성할 대목이 많겠지요. 대선과 총선에서의 압도적 승리는 당시 집권 세력에 대한 불만이 크게 작용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출범 직후부터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이 문제가 됐지요. 대규모 촛불시위를 겪고도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문제 등을 다루면서 이런 국정 운영 스타일은 계속됐습니다. 재보궐 선거에서 져도 마찬가지였지요. 과거 어느 국회보다도 자주 다수의 힘을 앞세운 법안 날치기 처리를 한 것도 되새겨볼 대목입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도 4대강과 세종시 문제는 물론 서울 봉은사와 관련한 외압 의혹 등 크고 작은 무리수가 잇달았습니다. 3월 말에 터진 천안함 침몰 사태로 정국이 크게 흔들렸습니다만 오히려 안보 문제를 지나치게 선거에 활용하려 한다는 의심을 자초했습니다. 결국 국민들은 천안함 사태와는 별개로 지방선거에서 현 정권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걸기로 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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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지도부가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청와대 대통령실장까지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물론 지방선거 패배를 이유로 대통령실장이 물러나기로 한 이유가 궁금하긴 합니다. 하지만 정권 핵심부가 이번 선거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와 같은 일방통행식 정국 운영 방식의 변화를 기대해 봅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약진을 보인 민주당은 선거 승리를 자축하고 있습니다. 큰 성과를 거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번과 같은 견제 바람이 부는 속에서도 서울과 경기에서 진 이유는 꼭 짚어봐야 할 겁니다.

진보 성향 인사들 가운데서도 이번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행태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가 왜 서울시장이 되어야 하는가, 또 유시민 전 장관이 왜 경기지사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후보 선정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제대로 된 경선도 없이 후보를 선정하거나 정치공학적인 단일화에 매달렸지 정작 지방선거의 핵심 이슈를 장악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특히 정작 오랫동안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선거를 준비한 사람이 모양뿐인 경선이나 단일화 논의에 밀려 출마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오랫동안 지방 선거를 준비한 사람이 정상적으로 후보가 되고 한명숙, 유시민 후보가 선대위원장 등을 맡아 지원했더라면 선거 결과가 지금처럼 나왔을까요? 특히 민주당은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강금실 후보를 내세웠던 경험에서 별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역시 유권자, 국민을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국민참여당으로서는 경기지사 후보의 소속 정당이 달랐다면 선거 결과도 달라질 수 있었지 않았느냐는 일각의 지적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겠지요. 왜 같은 친노 인사라도 이광재, 안희정 후보는 당선됐는지도 생각해볼 대목이고요. 김두관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것도 그렇지요. 일부 인사들은 인터넷 등에서 “유시민 후보가 조직의 열세 등에도 그 정도 선전한 것은 사실상 이긴 것”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는데, 일리가 영 없는 말은 아니지만 전체 구도를 보면 그렇게 합리화 논리부터 내세울 일은 아닌 듯 싶습니다.

가장 고민스러울 진영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입니다. 진보 세력은 분열로 망한다는 말까지 있는데, 그나마 미약한 진보 세력이 이렇게 분열해 있는 것이나, 대선이나 광역단체장 선거와 같은 규모가 큰 선거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근본적인 고민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막판에 전격 사퇴함으로써 경기지사 선거에 야권이 진 데 대한 책임을 면한 심상정 후보는 그렇다치고, 당장 한명숙 후보의 패배에 빌미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눈총이 서울시장 선거를 완주한 노회찬 후보에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진보신당은 그나마 야권 단일화 논의까지 거부함으로써 기초단체장 하나 건지지 못하는 상황이 됐지요.

결국 야권은 지방선거는 이겼지만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말처럼 스스로 잘 해서 이긴 것은 아닌 만큼 국민들이 요구한 정국 변화를 실제로 이뤄낼 방안을 찾아낼 숙제를 떠안게 된 겁니다. 천안함 사태 이후 수세로 몰린 국면을 타개하고 제대로 정국의 균형을 잡아 나간다면 좋은 기회가 될 것이지만 여전히 반사 이익을 기대하는 수준이라면 오히려 이번 선거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아침에 우연히 여의도에서 만난 한 민주당 중진 의원도 이런 맥락에서, 오히려 서울, 경기에서 진 것이 민주당 등 야권이 자만하지 않을 수 있는 보약이 될 거라고 평가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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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씩 왕창 판을 뒤집는 당사자인 국민들은 승리자일까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가끔씩 바람이 부는 것도 좋은데, 선거 때마다 무슨 무슨 '풍(風)'이다 해서 어느 한쪽으로 확 쏠리는 현상, 그런 현상 때문에 정작 후보 자체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게 되는 상황의 반복이 계속되면 결국 국민들만 괴롭게 되는 거죠. 가깝게만 봐도 탄핵 바람이 불면서 열린우리당에 몰표를 줬다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선 한나라당에 몰표를 주고, 이번에는 또 야권에 몰표를 줬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몰표를 받은 세력은 항상 오만해지기를 반복했고 국민들만 힘들었습니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게 극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와중에 정작 나라와 사회가 멍드는 것 아닐까요. 함량 미달의 후보가 바람 덕분에 공직을 맡는 일도 자주 일어나죠. 결국은, 항상 정치권 욕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를 냉정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한 표, 한 표를 정말 소중하고 책임감 있게 행사해야 한다는 거죠. SBS의 선거 관련 영상물에도 나왔지만 히틀러에게 권력을 맡기고 그로 인해 세계사적 참사를 불러온 것도 결국은 1표의 힘이었다고 하니까요. 히틀러가 나치당 당수가 될 때 1표 차이로 이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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