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간 뒤바뀐 딸, 어떻게 찾았나?

기막힌 사연의 주인공들···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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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중지 키워온 딸이 18년 전 산부인과에서 뒤바뀐 사실이 밝혀졌다는 보도에 충격 받은 분들 많으시겠죠? "혹시 우리 아이도...", "혹시 우리 엄마 아빠도..."하는 생각까지 가지는 않았겠지만, 그 절절한 사연에 많이들 가슴 아파했을 겁니다.

"산부인과의 잘못으로 아이가 뒤바뀌어 남의 아이를 키워오다 유전자 검사로 그 사실을 18년만에 알게 됐다"

보도의 요지는 이렇게 간단한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연을 되짚어 보면 정말 '핏줄'이라는 게 뭔가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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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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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의 프로그램 '당신이 궁금한 그 이야기, 큐브'라는 프로그램에서입니다.

18년 전 산부인과 병원의 실수로 아이가 뒤바뀐 박희정씨(가명.50살)의 안타까운 사연이 소개됐습니다.

박씨는 1992년 2월 27일 경기도 구리시 집 근처 산부인과에서 딸을 낳았습니다.

이틀 뒤 퇴원한 박씨 부부는 딸아이를 여느 부모나 마찬가지로 애지중지 아끼며 길렀습니다. 그러던 이 집안에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2007년 여름.

고등학생인 딸의 학교 건강기록부를 본 뒤였습니다. 남편과 자신은 모두 B형인데, 딸은 둘 사이에 나올 수 없는 A형으로 기록돼 있는 것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혈액형 검사를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박씨는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뒤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씨의 기막힌 사연에 <큐브> 제작진은 박씨와 함께 출산을 했던 산부인과를 찾아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병원 측은 관련 기록을 보여줄 수 없다는 말로 일관했습니다.

박씨가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매달려도 의사는 "그런 일 없다"며 협조를 거부했습니다.

당시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기록을 받아서 하나하나 찾아 나설 요량이었지만, 그 기록을 받을 수가 없으니 어찌하겠습니까? "변호사와 만나서 얘기해라, 알려 줄 필요도 없고 오래된 자료라 다 없애버렸다" 의사의 대답은 매몰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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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를 못 찾으면 평생 가슴에 묻고 살 것 같아요. 잘 지내고 있는지 소식이라도 알면 원이 없겠어요.."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만약 당신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큐브> 제작진은 아이를 둔 부모 5백명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78.4%가 '찾아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당연한, 아니 어쩌면 생각보다 '낮은' 비율의 응답일 정도로 찾아야 한다는 쪽이 압도적이었습니다.

박씨와 제작진의 '친딸 찾기'는 그 때부터 시작됩니다.

관할 시청을 찾아가 1992년 2월 27일을 전후한 이틀, 즉 25일부터 29일까지 닷새간 태어났다고 출생신고한 여자아이의 신상명세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거부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변 초등학교 14곳을 뒤졌지만 또 실패.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민원을 받아줘 '딸 찾기'는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합니다.

산부인과 인근 23개 읍면동사무소를 돌며 20년 가까이 지난 출생신고 기록을 이 잡듯 찾았습니다. 비슷한 아이를 발견하고 현주소를 추적해 강원도로 경상도로 단걸음에 달려가 봤지만 번번이 허사였습니다.

어떻게든 '친딸'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에만 빠졌던 박씨에게 그즈음 갑자기 또 다른 고민이 닥쳐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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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인가? 찾고 나면 길러왔던 딸아이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나를 찾는 과정이 하나를 잃는 건 아닌지?" 박씨는 '기른 딸'을 잃게 된다는 생각에 가슴 아파 기르고 있는 딸과의 통화가 부쩍 잦아졌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펑펑 내리는 흰 눈과 함께 기다리던 소식이 찾아왔습니다.

친딸보다 하루 먼저 같은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아이의 부모를 경찰에서 찾아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전화를 해도 상대방 어머니는 "그럴 일 절대 없다"며 만남조차도 거부했습니다. 자신의 딸은 혈액형도 자신과 똑같은 B형이라며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다음날 상대방의 아버지가 경찰서를 찾아왔습니다.

제작진과 경찰이 지난해 9월 방송된 <큐브> 프로그램을 보여주며 유전자 검사를 해보자고 설득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역시 단호했습니다.

"병원에서 출산하자마자 간호사가 아이 목욕을 시키고 바로 데려왔다. 그럴 일이 없다. 검사해 볼 필요도 없다. 황당하다" 박씨는 자신이 기른 딸의 사진을 보여주며 "혹시 당신의 친딸일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을 보자마자 갑자기 눈물을 흘립니다.

아직 확인을 시작도 안했는데 말입니다.

이런 걸 인지상정이라고 해야 하나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애지중지 키운 딸. 그런데 그 딸이 친 딸이 아닐 수도 있다니...

아버지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소복히 쌓인 눈위를 비틀거리며 사라집니다.

며칠 뒤 상대 아버지의 요청에 따라 기막힌 사연의 양쪽 부부가 만납니다. 상대방이 '기른 딸'의 유치원때 사진도 건네줍니다. 18년 만에 보는 딸의 얼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양쪽 모두 '친딸'을 찾는 기쁨보다 '기른 딸'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가슴을 짓누릅니다. 친자확인 유전자 검사에 동의하고 아이들의 머리카락과 부모들의 머리카락을 뽑아 병원에 보냈습니다.

드디어 검사결과가 나오는 날. 친자 관계성립 확률이 99.999966%.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서로가 뒤바뀐 딸을 18년 동안 길러왔던 것입니다.

상대 쪽 엄마의 충격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길렀으면 그대로 키워야지. 이제 와서 뭘 어떻게 하자고..." 문을 박차고 나갑니다.

뒤바뀐 아이를 천신만고 끝에 찾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찾고 나니 고민은 더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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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은 '친자식을 찾아야 한다'고 대답했던 부모들에게만 다시 물었습니다. '아이를 바꾸겠느냐'고.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대답이 무려 70.6%나 됐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칠 충격 때문이었겠죠.

양쪽 부모가 내린 결론도 그랬습니다.

아직 성인이 안 된 두 아이에게 알려질 경우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을 걱정해 그냥 그대로 살기로 한 것입니다. 겉으로는 변한 게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친딸을 만나 가슴에 안고 펑펑 울고 싶은 마음 왜 간절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자연스럽게 엄마 친구인 것처럼 소개하고 서로 왔다갔다 하다보면 친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얘기할까 합니다"

참으로 먼길을 돌아 '친딸'을 이렇게 힘들게 찾았습니다.

드라마 '가을동화'의 대본이 아닌 '지금'의 이야기라니 정말 기막힌 일이죠?

(이 사연은 지난 1월 15일 <큐브>에서 방송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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