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와 '고기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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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1월12일) 기사중에 군대의 급식비가 4.6% 올랐는데 고기값이 15%나 올라서 급식에서 고기반찬을 줄인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클로징멘트를 쓰다말고 문득 다녀온 지 20년이 다 돼가는 군대와 '먹는 문제'에 대한 몇가지 단상이 떠올랐습니다.

기억 #1.

비오던 어느 날, 몸살이 나 열이 끓는 몸에 판초 우의를 걸치고 경계근무에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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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초소 앞, 도로를 지나는 차들의 불빛을 보며, 저 차를 몰래 얻어 타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까...이룰 수 없는 생각을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달빛 밝은 날은 불침번을 서다 말고 M16 소총의 날씬한 개머리판을 책받침 삼아 그리운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또 썼습니다.

처음 머리를 깍고 난데없이 군인이 된 뒤 겪는 가장 강렬한 고통은 두고 온 사람들과 이전의 자신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채워지지 않은 그리움을 그나마 달래주는 것은 다름아닌 '음식'입니다.

그래서 어느날 갑자기 군복을 입게 된 젊은이들은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음식에 더 집착합니다.

기억#2.

대침투 훈련을 마치고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어느 날 저녁..

밥판을 들고 길게 늘어선 배식줄에서 육두문자가 섞인 싸움판이 벌어졌습니다.

싸움은 밥을 타던 훈련병이 깍두기를 더 달라고 주장하고, 배식을 담당한 병사는 혹시 뒷사람이 모자랄지 모르니 더 줄 수 없다고 맞서면서 시작됐습니다.

여기서 '더' 라 함은 배식판 반찬란의 크기를 감안할 때, 깍두기 2-3알에 해당 합니다.

깍두기를 더 달라며 치열한 싸움을 시작한 훈련병은 서울의 모 명문대를 대학원까지 마치고 늦깎이로 입대한...중대에서도 젊잖기로 유명했던 한 '형'이었습니다.

무슨 전쟁통도 아니고 , 그 점잖은 사람이 깍두기 두 알 더 달라고 욕설을 섞어가며 싸움을 벌일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여기가 TV에서나 보던 아프리카도 아니고...먹는 것 앞에서 그토록 치열해 질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대한민국에서는 군대정도에서나 겪을 수 있는 일 일것입니다.

외롭고, 괴롭고, 허전한 사람에게 음식은 단순히 '영양'의 수준을 넘어 양보할 수 없는 '위로'입니다.

당연히 그들에게 고기반찬은, 먹고 싶으면 수퍼에서 사다 구워 먹으면 되는 사람들과는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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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면 배고플 나이...병사이기에 앞서 그들은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입니다.

올해 국방부의 예산에 따르면 병사 한명의 급식비는 하루 세끼와 후식을 합쳐 5천650원에 불과합니다. 이것도 지난해 보다 4.6% 인상돼 251원이 늘어난 것입니다.

이 추위에...장갑을 벗으면 총신에 손가락이 붙어버리는 혹한을 헤치고 이 밤에도 불침번을 서야하는 군인들에게 고기반찬이나마 더 주지는 못할 망정...

그래서 어제의 클로징멘트도 이렇게 끝을 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국방부가 고기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며, 군 장병들의 급식에서, 고기반찬을 줄이기로 했다고합니다. 자식 군대보낸 부모님들은, 아들이 밥은 잘 먹는지, 몸은 건강한지가 가장 큰 걱정이죠. 이 추운 겨울날 집 떠나서, 나라 지키는 장병들입니다. 예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다른건 몰라도 먹을 걸 줄이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요? 나이트라인 마칩니다. 편히 주무십쇼."

이글을 보면 아내는 틀림없이 저를 욕할 것입니다.

"뭐 쓸게 없어 또 먹는 얘기냐... 만날 집에서 먹을 것만 밝히면서, 클로징멘트까지 먹는 타령이냐.."

그래도 저는 당당히 항변할 것입니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것...이보다 더 인간적인 일이 세상에 몇이나 되는 줄 아느냐...눈물 젖은 빵을 씹어보지 않고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괴테의 말도 있잖느냐..

(좀 안맞는 예 인것 같긴 하지만...우물쭈물 넘어가고) 음식은 생존의 문제를 넘어 인간의 정신이며 추억이란 말이야...이 사람아.

당신이랑 연애할 때 내가 읽어준 신동엽 시인의 글도 있잖아!!"

'냄새'   -신동엽-

두戀人은 걸었다.

찬 바람이 부는 겨울 밤거리다.

외투 깃을 세워도 세워도 저녁내 걸은 두 사람의 피곤한 몸은 으스스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다방이나 홀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그들의 취미가 높았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창문 안의 수런수런한 말소리를 들으며 두 사람은 똑같이 그들에겐 언제 저런 따뜻한 그들만의 방(房)이 마련될까 하고 생각했다.

어느 음식점 앞에서였다. 문득 그는 말했다.

"그 냄새 참 구수한데"

여인은 살짝 웃으며 외투 속의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아 끌었다. 두 사람은 다시 도란도란 그들의 인생을 의논하며 사라져 갔다.

한 겨울 밤.

거리에서 맡은 구수한 내음.

허기진 젊은이의 미각(味覺)을 잡아당긴 그 내음의 의미(意味)는 순수(純粹)하다. 먹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만 그것으로 족하다.

질리도록 코를 박고 먹어 버렸으면 삼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두 사람의 가슴에 그 내음이 그리도 그리웁게 남아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두 사람의 인생은 한 고비 넘었다. 그렇게 부러워하던 다스운 불빛이 새어 나오는 그들만의 방(房)에서, 오늘은 그들의 어린것의 재롱을 웃어가며 수런수런 인생을 밤알처럼 익혀가고 있다.

책상 앞 벽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그는 문득 이런 말을 했다.

"그날 밤, 그 어느 음식점 속에서 새나오던 그런 냄새나는 찌개 좀 끓여 보우"

女人은 그날 밤처럼 그저 빙긋 웃을 뿐이다.

(-후략- 혹 궁금하실까봐 '냄새' 전문은 블로그에 따로 퍼놓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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