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 앨범이 모두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나왔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기자들이 비틀즈가 디지털로 되살아났다며 기사를 썼죠.
얼마전엔 재즈의 거장 마일즈 데이비스,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앨범도 디지털 리마스터돼 나왔고요.
퀸의 공연 영상이 디지털 리마스터돼 극장에서 상영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합니다.
이미 우리는 CD로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있고 CD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LP로 나왔던 추억의 음악들은 디지털의 옷을 입었거든요.
그렇다면 과연 디지털 리마스터링이란게 뭐길래 호들갑을 떠는 걸까요?
음반을 만들땐 몇 가지 단계를 거칩니다.
가장 먼저 하는건 물론 녹음이죠.
비틀즈가 한창 음악 활동을 하던 60년대 초반엔 밴드가 모여서 연주하는걸 그대로 녹음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렇게 작업하진 않습니다.
대중음악의 경우 먼저 드럼과 베이스가 각각 녹음을 합니다.
이후 기타나 건반 녹음을 하고요.
각 악기들은 독립된 트랙에 녹음이 됩니다.
이렇게 모양새가 갖춰진 이후에 보컬이 녹음을 하죠.
이렇게 각 트랙별로 녹음된 소리를 조화롭게 조절해 믹스하고 믹스된 것을 다시 매만지는 마스터링 작업을 거쳐야 하나의 음반이 탄생합니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이란 말 그대로 과거의 음원을 현재의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새롭게 마스터링하는 작업을 뜻합니다.
디지털 리마스터링 기사에는 디지털로 음질을 높였다는 말들이 나옵니다.
또 한편에선 디지털로 처리한 리마스터 버전에는 아날로그의 따스함이 없다느니, 디지털의 차가움만 있다느니, 웬지 가벼워보인다느니 등등 말들이 나옵니다.
이것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리는 기본적으로 아날로그죠. 디지털 사운드란건 없습니다.
다만 디지털 형식으로 바꾸면 아날로그 신호일 때보다 이런 저런 처리를 하기가 쉽고 처리 과정을 거치는 동안 손실이 이론적으로 없습니다.
따라서 아날로그인 음원을 디지털로 바꿔 처리하면 보다 다양한 효과를 편리하게 낼 수 있습니다.
요즘 나오는 디지털 리마스터링에서도 그렇습니다.
요즘 음악들은 예전 것들보다 일반적으로 음량이 큽니다.
엔지니어들 말을 들어보니 이건 기술적 이유보단 경쟁 심리 때문이었답니다.
라디오에서 또는 음반 가게에서 틀었을 때 조금이라도 크게 크게 들리도록 하기 위해 최대한 음량을 키워서 음반을 만든다는 거죠.
그래서 옛 음반을 새롭게 리마스터링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음량을 키우는 겁니다.
소리에 대한 감각은 시대에 따라 다르니 지금 추세를 따르는 것이죠.
이보다 한층 힘들고 정교한 작업은 음을 하나 하나 세심하게 다듬는 건데요.
아무래도 예전은 지금보다 녹음 환경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녹음된 음이 균질하지 못합니다.
어떤 부분에선 드럼에 비해 기타의 피치가 떨어지고, 어떤 부분에선 기타보다 건반의 피치가 떨어지고 하는 식이지요. 음원에 잡음이 껴 있어 소리의 완벽한 하모니를 방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각각의 소리들을 만져주는 것이죠.
이건 소리를 주파수의 차원에서 이해할 때 쉽게 작업할 수 있습니다.
소리는 떨림이고, 각각의 고유한 주파수를 갖지요.
그러니 주파수 파형을 보면서 파형의 모양을 좀더 예쁘게 가다듬는 겁니다.
복잡한 전자회로가 우리가 원하는 모양으로 소리의 주파수에 작업을 합니다.
심지어는 모노로 녹음된 원본 소스로 스테레오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스테레오는 쉽게 생각해서 두 개 이상의 채널에서 약간 다른 소리가 들어오는 것이니까요.
하나의 채널밖에 없어도 그 채널의 소스에 딜레이를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약간의 조작을 통해 마치 스테레오 소스를 받고 있는양 느끼게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디지털로 음질을 높였다한들 우리가 귀로 들으려면 지금까지 신나게 처리한 것을 다시 아날로그 신호로 바꿔야 합니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문제가 생기기에 아날로그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론적으론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디지털 신호 처리 분야에서 가장 기초되는 이론으로 '나이키스트의 정리'란게 있습니다.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바꾸려면 샘플링을 해야하죠?
이렇게 디지털로 바꾼 신호를 다시 아날로그로 바꿨을 때 완벽히 복원되려면 샘플링 레이트가 적어도 원래 신호의 최고 주파수보다 두배가 돼야 한다는 거죠.
CD의 샘플링 레이트는 이 정리에 기초해 만들어졌습니다.
인간의 가청 주파수는 20Hz부터 20KHz이니 최대 주파수인 20KHz의 두 배인 40KHz 이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44.1KHz가 됐죠. 또 샘플링한 각각의 주파수를 quantization할 때 CD 규격은 16비트입니다.
물론 보다 원형에 가깝게 음을 복원하려면 샘플링도 quantization도 촘촘할수록 유리하죠.
그러나 이렇게 되면 용량이 커지고 돈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정도에선 이정도면 괜찮다고 하여 trade-off가 이뤄진건데 저장 매체가 발전하면서 96KHz에 24비트, 192KHz에 24비트 등으로 계속 더욱 촘촘하게 원본 음원을 자르고 있고, 또 웹 환경에 맞춰 mp3 등 인간 지각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손실을 주면서 압축하는 규격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 과연 이 차이를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느냐….
사실 이게 핵심입니다.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이 분명 절대적인 음질을 높여주는 건 맞는데 파형을 보면 분명 달라진 점이 있다 하더라도 과연 예전 것과 비교해 들었을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느냐의 문제죠.
CD의 음질과 DVD의 음질이 과연 다르냐, LP와 CD의 음질은 과연 차이가 있느냐의 문제...
CD 음질 수준이라해도 클래식 악기들의 경우, 인간의 가청 주파수를 넘어선 진동을 잡아내지 못하므로 여기서 오는 울림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고 블라인드 테스트로 해보면 mp3 음질이나 dvd 음질이나 구별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고 설은 분분한데요.
일반적인 스피커 환경에서 보통 사람이라면 디지털 리마스터링한 것이건 CD건 LP건 DVD건 별 차이를 못 느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도 사실 yesterday 리마스터링 전-후 시연할 땐 무슨 차인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다가 스튜디오 가서 들어보니 또 뭔가 차이가 있는거 같고요.
하지만, 설령 단순히 심리적인 차이라도 들어서 더 좋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편집자주] 보도국 문화부의 젊은 피, 유재규 기자는 종교계와 대중문화, 문화재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5년 SBS에 공채로 입사한 뒤 국제부를 거쳐 사회2부 사건팀을 거쳤습니다.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시선으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하는 유 기자는 최근엔 박영석 원정대의 에베레스트 남서벽 도전을 현지에서 동행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