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굶어죽는 이유


제가 초등학교 2~3학년 일 때, 저희집도 돼지를 키웠습니다. 물론, 돼지만 키운 건 아닙니다. 소도 키우고 닭도 키웠습니다. 아. 개 두마리도 있었습니다^^

저희 집 돼지는 대략 다섯 마리 정도였던 거 같은데, 지금도 제 기억에 선한 것은, 늘 꿀꿀 거리면서 사료에 코를 박는 돼지들이 '매우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빠가 늘 돼지 배설물을 그 때 그 때 치워야한다고 강조하셨는데요.

그런데 이번에 제가 그렇게 먹을거 좋아하고, 깨끗한 거 좋아하는 돼지들이 굶어 죽고 있는 현장에 간 겁니다.

사실 처음에는 엄두가  안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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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키워봐서 돼지 냄새가 어떤 건지 잘 아는데, 죽었으니 얼마나 냄새가 심할까, 얼마나 처참할 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거든요.

덜덜 떨면서 돼지 축사동을 살펴봤습니다.

지난해 말 이후로 예방 접종 기록이 없는 표 밑에 종돈(씨돼지입니다. 어미 돼지죠^^)들이 죽어 있습니다.

액비탱크는(정부에서 지원 해 줍니다. 돼지 분뇨를 모아서 옥수수밭 등에 뿌리는 비료로 만드는 시설이죠) 가득 차서 넘치기 직전입니다.

냄새요? 작살입니다.

죽은 돼지는 처리 방법이 두 가지입니다.

1. 전염병으로 죽은 경우 : 조류 독감 때 많이 보셨을텐데, 각종 방역 절차를 다 거치고 소독에 소독을 거듭해 지정 장소에 묻습니다.

2. 그냥 죽은 경우 : 돼지 사체가 폐기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폐기물 봉투에 넣어 일정 장소에서 소각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돼지들은 죽은 뒤 그냥 방치된 겁니다.

돼지 밑에 쥐들도 죽어있고..구더기 수백마리 기어다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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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도를 웃도는 한여름에 그냥 두기에는 정말 위험한 환경입니다.

냄새야 차치하더라도 흘러넘친 분뇨로 인한 환경오염, 돼지 사체에서 나오는 균에 의한 전염병 등을 걱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동네 사람들도 마구 욕 합니다.

봄 까지 보이던 농장 주인이, 부도 났다는 소문과 함께 사라졌다는 겁니다.

죽은 돼지들 좀 치우라고…. 냄새나 죽겠다고 연락을 해도 도통 반응이 없다고 화도 냅니다.

새끼같은 돼지들을 버리다니. 저도 처음에는 동물 학대 수준이라고 생각해 화가 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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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배경을 알기 위해 이리저리 물어보는 과정에서 저는 가슴아프게 이해하게 됐습니다.

문제는 사료값이었습니다.

곡물값과 잇따른 환율 인상, 그에 따른 운임료 자동 상승으로 사료값 정말 엄청 올랐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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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kg당 돼지 사료값은 290원. 그러나 지금은 580~590원 입니다. 딱 두배죠.

돼지 1천마리를 키운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1천마리는 소규모 농가에 속합니다.)

2007년 : 1천마리 *  290원 * 하루 3포대 * 30일 = 2천 6백 1십만 원

현재 : 1천마리 * 590 * 하루 3포대 * 30 = 5천 3백 1십만 원.

2년 새에 한 달에 2천만 원이 더 드는 꼴이니 1년이면  꼬박 2억이 넘는 돈이 더 드는 겁니다.

삼겹살 가격이 소고기 가격에 맞먹게 좋은데 뭐가 문제나고요?

양돈농가는 도매 시장에서 돼지를 넘기는 지육 가격이 실제 소득인데, 2007~8년에 킬로그램당 6천 원이던 도매가격은 지금 4천2백원대를 간신히 웃돕니다. (그러니 여기서 유통 업체들을 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_-) 신종 플루 초기에 돼지가 매개체로 잘못 알려진 탓도 크죠.

키우는데 비용은 배 가까이 드는데 가격은 떨어졌으니..환장할 노릇 아닙니까.

그러니..돼지들에게 사료를 주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줄 수가 없는 겁니다.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사료 보조금도 3천마리 이상에 현대화된 시설을 보유한 돼지 농가에게 돌아가니 1천마리 미만 양돈 농가들은 돼지들을 팔아 넘기다 못해 굶겨 죽이는 상황이 된 거죠.

저 삼겹살 좋아합니다.

소주 한 잔에 김치 같이 구워 먹을 때, 삼겸살 만한 게 또 어딨겠습니까.

좁은 우리에서 밥 주는 주인을 마냥 기다리다 굶어죽었을 돼지들.

그리고 처리되지 못 한 각종 배설물과 전염병 우려…. 환경도 걱정이지만, 취재를 마치고 나서도 답이 없어서, 마땅한 대안이 없어서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열악한 환경의 우리 나라 양돈 농가.

이번에 한-EU FTA 체결로 가장 타격 입는 분야도 양돈 농가라고 하는데 아직 조금 먼 훗날의 일이 되겠지만. 우리 나라 삼겹살을 못 먹는 날이 오는건 아니겠지요??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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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2007년에 입사한 SBS 사회2부의 새내기 최고운 기자는 늘 밝은 웃음으로 사건팀에서 '비타민'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험한 사건사고 현장을 누비면서도 인간적인 매력을 잃지 않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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