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뉴스>
<앵커>
지난 15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국 테니스의 간판이었던 이형택 선수가 태극 마크를 반납했습니다.
세계에 한국 테니스의 존재를 알린 이형택 선수를 주말 인터뷰에서 이주형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야구에 박찬호, 축구에 박지성이 있다면 테니스엔 이형택이 있습니다.
한국 테니스 역사상 유일하게 US오픈 16강에 두 번이나 진출하며 세계랭킹 30위 안에 들었던 선수.
그가 올 가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이형택 : 최고 랭킹까지 올렸었고, 그 이후에 잦은 부상도 있었고요.]
지난주 데이비스컵 대회가 국가대표로서는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세계랭킹 100위 안에 아시아 선수라곤 많아야 너댓 명 뿐인 현실에서, 안드레아 아가시, 피터 샘프라스, 로저 페더러, 시대를 풍미한 대스타들과 맞서왔던 아시아의 대표선수였습니다.
[이형택 : 게임을 그래도 비슷하게 해서 3 대 0으로 졌지만 비슷하게 해서 그래도 자신감을 많이 가졌어요. 그 전날까지만 해도 야 내가 샘프라스랑 시합을 하는데 한 게임도 못 따면 어떡하나. (손이 굉장히 작네요.) 네, 작은 편이에요. (어휴, 여기 뭐 굳은살이 엄청나네요.)]
서양 선수들보다 체구도 작고 경험도 부족한 상태에서 뛰어든 세계 투어.
[이형택 : 더 빨리 뛰고 더 많이, 나는 뛰는 걸로 상대방 선수를 이겨야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저 국가대표가 목표였던 이형택은 세계 투어 무대를 알게 되면서 ATP 투어 우승, 윔블던 32강 진출 등 한국 남자 선수로서는 전인미답의 길을 갔습니다.
비결은 천천히, 조금씩 그러나 멈추지 않는 목표 의식이었습니다.
[이형택 : 1회전 통과하는 것, 그 다음에 그랜드슬램 뛰는 것, 100위 안에 드는 것, 100위 안에 들었으면 90위 안에 드는 것 이런 식으로 목표를 계속 잡아갔었거든요.]
어려운 형편 탓에 혼자 가계를 꾸려야 했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와 8살 때부터 떨어져 강원도 시골에서 외로운 유년기를 보내야 했던 소년은 지금은 정신적으로도 가장 세계화된 선수가 됐습니다.
[이형택 : 랭킹 탑 10 안에 있는 선수도 4주 연속 1회전에서 지는 것도 봤어요. 그런데 계속 똑같이 운동을 해요. 졌다고 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아! 투어는 졌다고 해서 포기하는 게 아니라 계속 도전하는 거구나.]
이런 정신력과 노하우를 이제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게 이형택 선수가 꿈꾸는 인생 2막의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