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선은 한나라당의 완패로 끝났습니다. 전주 두 곳을 제외한 세 곳의 전쟁에서 모두 졌습니다. MB정부에 대한 수도권 표심의 중간 평가적 성격을 갖고 있는 부평 을에서는 민주당에 패했고 진보 대 보수의 대결장이었던 울산북구는 진보진영 단일화에 무너졌고, 친이-친박 집안싸움이었던 경북 경주도 주류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왜 졌을까? 패인에 대한 분석은 다양합니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한나라당은 이번 재보선에서 콩가루 집안이었습니다. 민주당은 아예 전주 두 곳은 내 줄 각오를 하고 있었기에 부평 을에 당력을 집중했습니다. 정세균 대표는 살다시피 했습니다. 당내 공천 갈등에서 비롯된 계파 간 불화에도 불구하고 부평에 몰입했습니다. 그 덕분에 부평 을은 물론 시흥시장까지도 건졌습니다.
반면 한나라당은 전략의 부재를 보였습니다. 여야 대결인 부평 을이나 보-혁 대결인 울산 북구나 계파대결인 경북 경주 모두 "경제 살리기"라는 단일 모드의 공약으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경제가 어려우니 경제회생이라는 코드가 제일 좋은 선거 수단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와 여당이 보여준 각종 정책 혼선을 지켜 본 유권자들이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을 과연 신뢰할까?
당-정 간에 갈등으로 갈지 자 걸음을 하기 일쑤고, 같은 여당 내에서조차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정책이 언제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는 마당에 여당 대표가 아무리 목청 높여 경제를 살리겠다고 외쳐본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까? 콩가루 집안이 불러온 자업자득입니다.
패인은 또 있습니다. 박희태 대표는 몸은 하나고 전선은 세 곳이다 보니 하루에도 세군데 모두를 왔다 갔다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기자들도 "노인네 저러다 쓰러진다"는 말을 할 정도로 박희태 대표는 바삐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소속 의원들은 형식적인 도장 찍기에만 그쳤을 뿐입니다.
각 지역별로 의원들을 배정해 지원 활동을 펴라고 지시했지만, 그저 현지에 내려가서 유세 한번 하고는 올라오기 일쑤였습니다. 오죽하면 당내에서 "하다 못해 시장 통이라도 한번 돌고 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170명이 있으면 뭐 합니까? 50명씩 세 곳에 나눠서 보내고 이 50명이 각 지역에서 골목마다 누볐어도 이런 참패는 없었을 거라는 자조가 당직자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당나라 군대'라는 말, 오랜 만에 들어보셨을 겁니다. 수십만 대군이 움직이다 보니 각 부대별로 뭔 짓을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알 리 없습니다. 조직과 체계가 제대로 짜이지 않으면 당나라 군대 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한나라당은 170명의 소속 의원을 가진 거대 여당입니다. 4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 본회의에서 벌어진 '코미디'는 한나라당이 당나라 군대임을 보여준 전형적 사례입니다. 한나라당이 그간 국회에서 보여준 코미디는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예산안 처리 때도 그랬고, 지난 2월 국회 때도 그랬습니다. 야당과 싸우느라 힘을 죄다 소진하고는 막판에 기회가 찾아 와도 스스로 무산시키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여러 번 초래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산분리 완화와 관련한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은 의장의 직권상정 절차가 아닌 여야 협의를 통해 상정이 됐습니다. 여야가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해 의장이 직권상정한 주공토공통합법이나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관련 법안은 모두 야당도 참여한 가운데 표결을 거쳐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여야 절충을 거쳐 상정된 금산분리완화 법안은 여당내의 자중지란으로 수정안과 원안이 모두 부결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이미 보도를 통해서 보신 만큼 구체적인 상황은 설명 드리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한마디로 이겁니다. 원내 사령탑인 홍준표 원내대표가 전쟁터에서 진두지휘를 하는데, 중대장이 반발하고, 부대원들은 우왕좌왕하다가 지리멸렬한 겁니다. 오히려 맞은편에 있던 적들(민주당)이 어이없어 하며 조소를 쏟아냅니다.
금산분리완화 법안을 기필코 처리하겠다며 지난 3월에 정무위에서 강행 처리한 여당이 이번에는 정무위원장의 반발로 수정안과 원안이 모두 부결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 민주당도 실소를 자아내지 않을 수 없게 된 겁니다. 부대장인 홍 원내대표는 "나를 따르라"하고 전장에서 앞서 달렸는데 한참을 가다 뒤돌아보니 아무도 따라오지 않은 겁니다.
안 되는 집안은 복권에 당첨 되도 패가망신한다고 했습니다. 딱 그런 꼴입니다. 선거도 지고 스스로 자중지란에 무너지고.. 한나라당이 콩가루니 당나라 군대니 하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 없는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일이라고 서양의 한 격언집에도 나와 있습니다. 한나라당의 원내에서의 실수는 벌써 세 번째입니다. 그것도 대체로 비슷한 양상들입니다. 한참 국지전에 매달려 힘을 소진하다가 정작 고지에 오를 때는 기진맥진해 주저앉거나 아니면, 한참 고지라고 올라가 보니 엉뚱한 산에 올라온 겁니다.
10월에 또 재보선이 있습니다. 당장 5월에는 새 원내사령탑이 선출됩니다. 한나라당은 이번 4월 재보선과 4월 임시국회의 뼈저린 경험을 자양분으로 삼아야 할 겁니다. 민심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전술에만 매달리다 전략을 잊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170명이나 되는 소속 의원들을 하나로 만들어야 할 겁니다. 친이-친박 간의 알력이나 소장과 중진의 갈등을 슬기롭게 조율해 나가야 할 겁니다. 우리 국민에게 이제 더 이상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는 민심을 얻을 수 없을 겁니다. 소속 의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더가 중요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편집자주] 10년전 '출동 코끼리 기자' 또 '박병일 기자의 현장출동!' 등에서 맹렬하고 거침없는 시사고발 취재로 이름을 날렸던 박병일 기자는 현재 차장이 되어 정치부 여당팀의 현장팀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에 이제는 연륜까지 더해진 깊이있는 정치 기사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