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 폭로' 배형렬 감독 "팀 해체 아쉬워"


"하루든 1년이든 데리고 있던 선수들인데...자식이 구속되는 걸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한국 축구가 도박에 망가지는 걸 보고 있을 수 없었고 지금은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마축구 K3리그 서울 파발FC의 사령탑이었던 배형렬(47) 감독은 요즘 비시즌인데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파발FC가 지난해 축구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승부조작 사건 여파로 최근 해체가 결정되면서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된 제자들의 새 둥지를 찾아주거나 팀을 후원할 스폰서를 알아보고 있어서다.

전체 선수 25명 가운데 중국 도박업자와 연계된 승부조작을 주동했던 1명이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제명을 당했고 12명은 출전정지 1∼5년 중징계를 받았다. 파발FC가 나머지 선수로 리그에 참가하는 게 사실상 어렵게 된 것이다.

2007년 K3리그 최하위였던 파발FC의 지휘봉을 잡은 배형렬 감독에게 지난해는 악몽의 시간이었다.

파발FC는 전반기에 날카로운 공격과 탄탄한 조직력을 앞세워 7승1무7패로 작은 돌풍을 일으켰지만 후반기 들어 충격적인 사건에 휩싸였다.

선수들이 브로커들로부터 돈을 받고 상대팀에 일부러 경기를 져주는 등 초유의 승부 조작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배 감독도 지난해 4월 4라운드 직전 중국 도박사이트 업자로부터 '요구대로 경기를 지거나 비겨주면 곧바로 1천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도박업자들은 배 감독을 끌어들이는 데 실패하자 선수들에게 마수(魔手)를 뻗쳤다.

선수 대부분이 적게는 30만원에서 100만원을 받고 후기리그 포천과 경기에서는 0-5로 패배를 했다. 포천은 전반기에 7-2로 완파했던 상대였지만 골키퍼가 쉽게 골을 먹거나 공격수들이 태업에 가까운 플레이로 도박업자가 요구한 점수를 만들어줬다.

배 감독은 상대 감독으로부터 전체적인 플레이가 이상하다는 말을 듣고 선수들을 추궁하고 나서야 승부 조작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축구협회에 이 사실을 보고했지만 즉각적인 조치가 없자 알고 지내던 모 경찰서 형사와 상의했고 결국 경찰 수사를 통해 승부 조작을 유도한 브로커와 가담 선수들이 구속되거나 불구속 입건됐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참척(慘慽)의 고통은 겪는 부모처럼 제자들이 '범죄자'로 낙인이 찍히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자신이 침묵을 지켰다면 승부조작은 브로커들이 접근했던 실업축구 내셔널리그에까지 확산할 수 있었고 다른 K3 구단까지 선의의 피해를 볼 수 있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는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선수들의 진로를 걱정하느라 밤잠을 설칠 정도다.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거나 아예 새로운 구단주를 찾아 팀을 만드는 걸 추진하고 있지만 여러 이유로 여의치 않아서다.

거짓말을 하는 걸 가장 싫어한다는 그는 "선수들이 나 몰래 승부 조작에 참여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배신감을 느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구단과 축구계가 더 큰 피해를 보는 걸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축구협회도 제도적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각성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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