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마을의 공기총 살인사건, 최후의 목격자는..


故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의 마을 하동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습니다.

40대 남자가 동네 주민들에게 공기총을 쏘아 40대 남성 한 명이 숨지고, 숨진 남성의 부인과 또다른 40대 남자가 중태에 빠졌습니다.

피의자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땅을 물려받았는데, 등기를 해놓지 않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이 땅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팔렸고 마지막으로 숨진 남성에게 팔린 것입니다. 피의자는 1년 전부터 이 땅을 내놓으라며 피해자를 닥달해왔고, 피해자는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는데 무슨 소리냐며 서로 다퉈왔습니다.

그러다 피의자는 과수원에 자주 출몰하는 멧돼지를 잡으러 가겠다며 동네 주민에게 공기총을 빌렸고, 가는 길에 있는 피해자 집으로 들어가 이들에게 총을 쐈습니다. 범행 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은 피의자는 공기총을 빌려준 동네 주민에게 범행 사실을 털어놓았고, 결국 경찰에 자수했습니다.

사건 발생 시각은 밤 10시 반쯤.. 사건이 알려져 피해자들이 발견된 건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피의자가 조사를 받고 있는 경찰서 취재를 마친 뒤, 저희 취재팀은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현장의 자세한 위치를 경찰에게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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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못찾습니다. 산길따라 올라가야 하는데, 우리도 나갔다가 못찾고 헤매고 있어요."

그래도 대충 위치를 파악한 뒤 무작정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울퉁불퉁 비무장 산길.. 추적추적 비까지 내리고... 가로등 하나 없이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불빛의 전부인 산골.. 인적이라고는 전혀 없고, 중간중간 어둠 속을 뛰어다니는 고라니만 보였습니다.

20분 정도를 그렇게 올라갔나.. 저 앞쪽에 불이 켜진 산장이 보였습니다. 현장을 찾아나선뒤 처음으로 보는 불빛이었습니다. '일단 저기라도 가서 길을 물어보자. 산골마을이니 동네주민들을 서로 다 알겠지' 이런 생각으로 산장에 들어서는데.. 집 앞에는 '수사중'이라는 팻말이 붙어있고, 마당에는 피가 흥건했습니다.

바로 사건 현장이었습니다!!!!!!!!!!!!!

시뻘건 핏자국과 LPG 가스통 2개가 쓰러진 채 마당에 남아있었습니다. 이것으로 당시 격렬한 몸싸움이 있었다는 걸 추측할 수 있을 뿐, 당시 상황을 자세히 말해줄 수 있는 어떤 사람도 주변에는 없었습니다. 총을 5발 쐈다고는 하지만, 총소리가 들릴만한 거리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을 정도로 깊숙한 산 속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곳에 있는 건 집을 지키고 있었던 개 한마리.. 줄에 묶인 채 취재팀을 바라보고 있던 개 한마리 뿐이었습니다.

'이 녀석이 바로 최후 목격자겠구나..'

몇 시간 전에 벌어졌던 끔찍한 사건 현장을 다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인지 개는 어두운 밤에 낯선 취재팀을 봐도 슬금슬금 뒤로 물러날 뿐 짖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피의자가 자수를 하지 않았다면, 피해자들 발견은 물론, 사건 자체가 알려지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면 수사에도 많은 지장이 있었겠죠.

게다가 목격자는 개 한마리 뿐..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동물심리학자 등을 동원해 동물을 상대로 수사를 하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다지 가능성이 큰 얘기는 아니죠. 다시는 있지 말아야 할 사건.. 그래도 피의자가 뉘우치고 자수를 해서 사건 전말이 밝혀지고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덜 수 있었지만, 자칫하면 수사가 난항에 빠질 수도 있었겠죠.

그나마 사건이 바로 풀렸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최후의 목격자인 개 한마리만 답답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안타깝게 돌아가신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다른 피해자들도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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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권란 기자는 2005년 SBS 보도국에 입사해 사회부 검찰 출입기자를 거쳐 현재는 사회2부 사건팀에서 경찰서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꼼꼼하고 성실한 취재로 계속해서 좋은 기사를 전해드리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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