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졌습니다.
서울의 낮 최고 기온도 35도를 넘나들고, 밤에도 25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숨이 턱 막히는 더위입니다.
이렇게 더운 여름이 가장 괴로운 사람들...
바로 도심 한 가운데 있는 쪽방촌 사람들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인지 매년 여름이면 쪽방촌 여름나기 기사가 관행적으로 언론 매체를 장식합니다.
매년 내용도 비슷합니다.
한 두평 남짓한 비좁은 공간, 비좁고 창이 없어 통풍이 안 되는 구조탓에 바깥보다 평균 3도 이상 높은 숨 막히는 공간이지만 에어콘은 있을리 만무하고...
낡은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땀이 비오듯하는 곳에서 지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곤 하죠.
이 쯤되면 고민이 생깁니다.
때가 되면 ENG 카메라를 메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줄기차게 매년 기사화되는데도 왜 달라지는 것이 없어 그 다음해 여름에도 또다시 기사 소재를 제공하는 걸까?
쪽방이란 곳에 대한 대책은 없는 걸까?
후배와 함께 이 문제를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나?
한국도시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평균 나이는 53.1세.
일용직 건설 노동, 폐지나 고물 수집, 공공근로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월 평균 41만 원을 벌고 있었습니다.
46%가 노숙 경험이 있었고, 대체로 혼자 살면서 가족이나 친지와도 연락을 끊고 있었습니다.
쪽방, 어떤 곳인가?
서울역 앞 남대문경찰서 뒤, 영등포역 근처 등 서울엔 5개 쪽방 상담소가 있습니다.
쪽방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아직 없지만 보증금 없이 월세 16만 원 선에 성인 남자 한 명이 누울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통상 쪽방이라 부릅니다.
국토해양부의 전신인 건설교통부는 지난 2005년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최소한 보장되어야 할 주거생활 기준으로 최저주거기준을 정했는데요.
1인 가구의 경우 최소 면적은 3.6평(12㎡), 침실에 전용 부엌이 있어야합니다.
쪽방은? 당연히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지요.
60년대 박정희 정권이 윤락 행위를 금지하면서 사창가였던 곳이 쪽방으로 바뀌기도 했고, 여인숙이나 여관이 쪽방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왜 쪽방에 살고 있는가?
당연한 질문이죠.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노숙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절반에 가까운 것에서 볼 수 있 듯 노숙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보금자리가 쪽방인 겁니다.
그나마 쪽방은 보증금이 없고, 월세만 내면 되기 때문에 일용직 노동을 해서라도 집세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물론 16만 원이면 월 평균 소득의 40%에 달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만만한 금액은 아닙니다만...
도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기에 인력 시장이 형성되기도 좋아 그래도 마지막으로 자립을 위해 몸부림칠 수 있는 기반은 되는 거죠.
따라서, 쪽방은 마지막 사회 안전망의 기능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쪽방은 어떤 상황에 놓여있나?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쪽방촌, 미관상 좋을 게 없겠죠?
거기에 뛰어난 입지조건, 당연히 개발 압력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쯤되면 쪽방촌이 현재 처한 상황을 쉽게 유추할 수 있는데요.
도시계획시설사업, 도시환경정비사업 등을 통해 꾸준히 쪽방촌이 철거되고 있습니다.
2003년 영등포역 바로 옆에 있는 영등포1,2동의 쪽방 280여 개가 철거됐고, 2005년에도 남대문로 5가 쪽방 400여 개가 철거됐습니다.
지난해 5월,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가 서울의 한 쪽방촌을 방문했다
21세기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니...라며 대책 마련을 지시해 쪽방 거주민을 위한 임대 주택 공급 계획이 잡히기도 했습니다.
정부 대책 뭐가 문제인가?
정부의 임대 주택 공급 계획은 정책 방향 자체는 옳다고 평가됩니다.
그러나, 실제 쪽방 거주민들은 이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우선은 역시 돈 때문입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따르면 이사가기 위해 보증금 100만 원을 내야 합니다.
월 평균 소득이 40만 원에 불과하고 그나마 16만 원은 월세로 내는 사람들이 100만 원이 있을리 만무하죠.
또 정부가 주는 임대 주택 계약 기간은 6년이라 6년이 지나면 나와야하는데 그 때 또 갈 곳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기존의 쪽방촌이 철거되고 개발되면 좋은 입지 조건 때문에 이 사람들은 절대 들어갈 수 없죠.
결국 또다시 노숙으로 내몰리게됩니다.
무엇을 해야 하나?
쪽방이란 곳의 순기능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공간이 있어야하고 현재 쪽방이 이런 기능을 하고 있으니 낡고 비위생적인 이 공간에 대한 점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철거를 통한 개발 사업의 이익은 쪽방 주민에게 돌아갈 수 없으니 이들을 위한 정비 사업을 벌여야 한다는 거죠.
미국 역시 SRO(Single Room Occupancy)라는 쪽방과 비슷한 곳이 있는데요.
이곳이 노숙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기에 저소득층의 주거 공간으로 인정하고 적절한 임대료 책정과 현실적인 주거 기준을 세웠다고 합니다.
여기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죠.
임대 주택을 공급할 때 보증금이 필수적이라면 현실적으로 마련이 불가능한 쪽방 주민들을 위해 마이크로크레딧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무함마드 유누스가 생각해낸 마이크로크레딧이 여기도 적용 가능하겠죠.
이는 장기적으로 쪽방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과 주거 상향 이동까지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매년 반복되는 힘겨운 여름나기...
분명 현재의 쪽방촌은 거듭나야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다시 이들의 삶이 파괴되어선 안 되겠죠...
그 곳으로 흘러들어올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의 마지막 희망의 공간 역시 개발 이익 못지 않은 소중한 가치니까요.
[편집자주] 유재규 기자는 2005년 SBS 기자로 입사해 국제부를 거쳐 사회2부 사건팀 기자로 취재 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취재로 우리 일상의 사건.사고와 숨은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