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직 혼자 나와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부동산 문제의 주체가 되어본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최근에야 전세집을 마련하겠다고 이리저리 알아보면서 조금 맛배기를 했다고 할까요? 그래서 부동산 문제는 여전히 생소한 분야입니다.
책이나 기사로만 많이 봐왔던 '지분 쪼개기'란 것에 대해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알게 됐고직접 눈으로 보고 왔습니다. 한 마디로...허탈하더군요.
재개발 가능성이 높다고 소문난 서울 청파동 주민센터의 문 앞엔 이런 공고문이 붙어 있습니다.
제가 동사무소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4시 10분쯤... 이미 번호표는 540번을 넘어섰고 동사무소 안엔 50여 명이 번호표를 쥐고 기다리며 전입신고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어떻게 된 일일까??
서울시가 '도시 및 주거환경 일부개정 조례안'을 개정해 30일 공포와 함께 시행한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이 조례는 이른바 '지분 쪼개기'를 막기 위해 도입한 건데요.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주거용 근린생활시설입니다.
지금까진 오피스텔 같은 근린생활시설에도 한 가구당 아파트 분양권을 하나씩 줘왔습니다. 그래서 멀쩡한 단독주택을 헐어서 오피스텔이나 공동주택으로 잘게 나누고 그 가구 사람들은 아파트 분양권을 얻어온 거죠. 그런데, 갑자기 조례를 바꿔 29일까지 사실상 주거용으로 쓰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기 때문에 동사무소로 몰려든겁니다.
몰려온 사람들 보면 참 다양합니다.
전입신고서에 쓰는 항목들이 낯설기만 한 대학생들은 연신 휴대전화로 부모님에게 물어보며 신고서를 작성하고, 심한 경우는 부동산 업자가 오늘 하루 돈을 주고 산 듯한 사람들이 서너명씩 와서 전입신고서를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자기 집이라고 주장하면서 계속 주소가 틀려 여러차례 전화를 하고 난 뒤에야 제대로 전입신고를 마치는 분들도 보였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신고한 주소를 찾아가봤더니 이제 막 지은 오피스텔 건물이더군요. 옆 집에 남은 세입자 분 말이 자기네 집 주인도 하고 싶어했는데 세입자가 못 나가겠다고 하면서 못했다며 두 달전 멀쩡했던 단독 주택을 때려부수고 두 달 만에 새로운 오피스텔로 지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청파동 일대엔 비슷한 식의 건물들이 여럿 들어서 있었고, 공사도 한창이었습니다.
저녁 8시쯤 현장에서 만났던 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이 분의 주장은 그렇습니다.
'자기들을 투기꾼이라고 매도해도 좋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돈을 불려나갈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놨던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다 때려잡겠다 식으로 나오는 건 행정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란 거죠.
일정 부분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이런 사태의 피해가 결국 누구에게 가느냐 하는 점입니다. 자금이 투자처를 찾아 나서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재개발의 기본 취지는 주거 환경 정비를 통해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지 돈 있는 사람들의 돈 놀이터 제공에 있는 건 아니겠죠.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아...이런 식으로들 돈을 버는구나...거 참 돈 벌기 쉽네...'란 마음에 씁쓸한 생각이 들면서 이렇게 이미 관행이 돼버린 부동산 시장의 정상화 방안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정녕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은 불패인가...란 생각을 곱씹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