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막함과 갑갑함
6월 말. 일주일 동안 충남 태안 구석구석을 훑었습니다. 느낌을 한 마디로 얘기한다면 뭐랄까요. 막막함. 갑갑함.
주민들의 처지는 실업자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다를 잃은 것은 직장을 잃은 것입니다. 난데없이 정리해고를 통보하는 문자메시지를 받은 격입니다.굴 따고, 바지락 캐고, 멍게 해삼 잡으면서 50년을 넘게 산 사람들. 삶의 터전이며 생계의 원천인 바다를 잃었지만 실업급여 따위는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기름유출사고가 난 뒤, 주민들이 지금껏 손에 쥔 돈은 정부에서 나온 '긴급생계비' 두 번인데 약값으로, 병원비로, 교육비로 모두 써버린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들딸 대학 보내려고 금융권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핵심은 돈입니다. 받을 수 있는 돈은 크게 두 가지. 첫째가 방제 인건비고. 둘째가 수산물 등 피해보상비입니다.
# 방제 인건비
주민들은 6개월 넘게 방제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자원봉사를 한 게 아닙니다. 방제회사에 일용직 노동자로 고용돼 기름을 닦은 것입니다. 일당을 받아야겠죠. 남자 7만 원, 여자 6만 원입니다. 한 가구에서 많게는 4명, 그러니까 젊은 부부와 이들의 부모가 기름을 닦았습니다. 1, 2월 주민들이 방제작업에 참여한 날은 많게는 20일에 달했습니다.
지금껏 방제 인건비는 한 푼도 안 나왔는데, 그럼 못 받은 돈이 얼마나 되나요. 가구당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이고, 태안 전체에서는 수백억 원에 달할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이 돈이 가장 빨리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돈을 못 받은 이유를 설명하자면 좀 복잡합니다.
방제 인건비를 받으려면 우선 방제업체가 방제비(방제에 쓴 자재비 + 인건비)를 받아야 합니다. 방제업체는 사고 초기부터 모든 역량을 동원해 방제에 나섰고 비용은 사후정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정산이 끝나야 주민들에게 돈을 나눠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 돈을 주는 곳은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입니다. 즉, 방제업체 측에서 돈을 얼마나 썼는지 내역서를 작성해 IOPC 측에 보내면 방제비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럼 방제비가 아직도 안 나온 이유는 뭘까요.
이번 기름유출사고의 규모가 워낙 컸고, 방제 작업이 지금까지 진행되는 곳이 많기 때문에, 방제업체 측에서 IOPC에 방제비 청구를 빨리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고 현장에서 일한 방제업체는 모두 22곳. 이 가운데 11개 업체가 IOPC에 방제비를 청구했습니다. 방제비를 청구하는 업무는 방제업체가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해사감정'(KOMOS)이라는 감정회사에 맡기게 됩니다.
이 과정은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방제업체)가 보험회사(감정회사)를 통해 가해자(IOPC) 측에 치료비를 청구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11개 업체가 방제비를 이미 청구했다고 말씀드렸죠.
그럼 돈(자재비 등 + 인건비)은 언제 나올까요.
주는 입장인 IOPC 측이 청구한 돈을 곧이 곧대로 다 줄리가 없죠. IOPC 쪽도 나름의 사정기관을 선정합니다. 이 과정은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가해자 측의 업무도 보험회사 직원이 처리해주는 것으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IOPC 측의 사정기관은 '국제유조선선주오염협회(ITOPF)'입니다. 그렇다면 ITOPF의 역할은 간단합니다. ITOPF는 KOMOS에서 올린 방제비 사용 보고서를 일일이 확인하고 "방제비를 얼마나 줄 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결정이 지난달에 나왔고 6월 19일 방제업체 11곳에 통보됐습니다.
취재 당시, 이 11개 업체가 어디인지, 청구한 방제비를 ITOPF로부터 얼마나 인정받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태안군청도 모르고, 국토해양부도 모릅니다. 11개 업체가 어디인지는 방제비를 직접 청구한 KOMOS만이 알고 있고, 얼마나 인정받았는지는 해당 업체만 알고 있습니다. 별 수 있나요. 22개 업체 모두 확인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방제비 평가가 끝난 11개 업체 가운데 7개 업체가 확인해줬습니다.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90%를 인정받았더군요.
기름 닦는 데 1백만 원 썼다고 IOPC에 청구했는데, 50만 원 준다고 하는 데도 있고, 90만 원 준다고 하는 데도 있다는 겁니다. 평균 인정 비율은 69%. 청구한 방제 인건비의 31%를 깎겠다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애초 약속한 일당 남자 7만 원, 여자 6만 원을 못 주게 됩니다.
돈을 전부 못 주는 이유요?
ITOPF는 "답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업체를 통해 전해들은 바로는, ITOPF 측에서 '방제작업의 비효율성'을 문제 삼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신두리 앞바다에는 주민 70명만 일했어도 충분할 텐데, 왜 100명을 투입했느냐, 그러니 우리는 인건비를 70밖에 못 주겠다는 것입니다. 방제업체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고, "주민들한테 맞아죽을 일"입니다.
날벼락 떨어진 11개 업체가 7월 1일 태안에서 토론을 벌였습니다. 지역마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투표한 뒤 수용 여부를 결정할 모양입니다. 만일 방제업체가 받아들인다면, 국토부는 수협을 통해 주민들에게 방제비 일당을 '대지급'하게 됩니다.
방송 당일 국토부에 확인해봤더니, 방제비가 대지급된 곳은 있는데, 주민들한테 나간 돈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아마도 주민 모두 ITOPF 측의 평가를 못 받아들이겠다, 이렇게 결정한 것 같습니다. 이러면 소송해야 됩니다. 돈을 언제 받을지 깜깜하다는 뜻입니다.
# 수산물 등 피해 보상비
IOPC로부터 피해 보상비를 받는 구조는 방제 인건비와 동일합니다. 역시 교통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으로 생각하면 쉬울 것 같습니다. 가해자는 IOPC 와 P&I 클럽(선주책임상호보험조합).
이들이 내세운 보험사는 - 물론 보험사는 아닙니다만 - ITOPF.
또 ITOPF가 현장 업무를 위임한 기관이 한국해사감정(KOMOS).
결국 KOMOS는 IOPC 입장에서 피해 실태를 조사한 뒤 보고서를 작성하고, ITOPF는 이 보고서를 사정한 뒤, IOPC 측에 넘기는 구조입니다. 얼마를 줘도 되겠다, 이런 의견을 달겠죠.
피해자는 태안 주민들. 주민들이 내세운 보험사는 - 역시 보험사는 아니죠 - 대화감정평가법인. KOMOS와 마찬가지로 피해 실태를 조사한 뒤 보고서를 만듭니다. 배를 가진 어민들, 맨손어업 종사자들의 피해를 종합해서, 얼마를 달라는 것이겠죠.
교통사고시 보험사 직원끼리 협상하듯, 이번 기름유출사고에서도 가해자 측인 KOMOS와 피해자 측인 대화감정평가법인이 겨루게 됩니다. 겨루는 장소는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이고, 이 재판을 '사정재판'이라고 합니다. 물론 사정재판은 양측의 피해 실태 보고서가 모두 마무리된 뒤여야 하겠죠. 양측은 이 시점을 2009년 3월 이후로 잡고 있습니다.
피해가 워낙 방대하다보니,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만 1년 4개월 이상 걸린다는 것입니다. 양측의 보고서를 받은 법원은 웬만하면, 합의를 권고할 것입니다. 양측에 중간 금액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겠죠. 이렇게 사고의 피해를 보상 받는 과정은 지겹도록 길고 지치기만 합니다.
비록 사고는 순식간이었지만, 역시 돈을 언제 받을지 까마득합니다. 처음에 적었듯, 태안의 느낌이 희망이기보단, 막막함과 갑갑함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돈 받으려면 보통 복잡한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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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세상 구석구석을 훑어보는 짜디 짠 소금같은 프로그램을 만들겠다 !" 핸섬한 외모의 박세용 기자는 2005년 SBS 보도국에 입사해 사회부 사건팀을 거쳐 기자들이 만드는 시사고발 프로그램 '뉴스추적'에서 활약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