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제까지 얘기를 대강 정리해보면,
(1) 생명보험사에서 실손형 보험상품을 처음 출시했다,
(2) 이는 곧 민영의료보험시대의 개막이다,
(3) 그동안에도 손해보험사의 실손형 보험은 있었다,
(4) 그러나 손보사와 생보사는 쨉이 안된다,(생보사 시장이 훨 크고 생보사 파워가 훨 쎄다)
(5) 실손형 보험은 건강보험에서 커버안하는 부분(비급여와 본인부담)까지 해준단다,
(6) 그런데 본인부담금은 건강보험에서 불필요한 의료이용 줄이려고 만든 거다,
(7) 따라서 본인부담까지 보장해주면 건강보험 빵꾸 커진다,
(8) 건강보험 빵꾸 줄이려면 수입을 늘리거나 지출을 줄여야하는데 수입은 크게 늘리기 쉽지 않아서 지출을 줄이게 된다,
(9) 지출 감축은 곧 보장성 약화로 이어진다,
(10)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당연히 진료하라는 거다,
(11) 이명박 정부는 완화한다고 했었는데, 다시 복지부는 유지한단다,
(12) 그러나 당연지정제 유지돼도 건강보험이 커버못하는 영역은 점점 커져간다,
(13) 민영의료보험이 활성화하면서 이 부분을 잠식한다,
(14) 그러다보면 민영의보가 건강보험을 대체할 가능성도 있다,
11.
앞의 글에서 민영의보 활성화가 불러올 디스토피아를 상상해본다고 해놓고 슬쩍 넘어왔는데요, 것부터 적어보겠습니다.
먼저, 실손형 보험부터 다시 짚어보죠.
실손형 보험상품에 대해 보험사들은 대부분 이렇게 광고하고 있습니다.
"질병으로 병의원에 입원하거나 통원하여 치료를 받은 경우, 실제로 본인이 지출한 의료비(급여본인부담금+비급여)를 보험가입금액 한도 내에서 보장하는 보험입니다."
<아무개 생명 안내책자에서>
'보험가입금액 한도'라는 말이 걸리지만, 그래도 "실제로 본인이 지출한 의료비를... 보장"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얼마나 보장해줄까요?
아무개 생명보험사의 <배당없는 의료비 보장특약> 상품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이 보험에 가입한 45살 성춘향 씨는 늘 더부룩하고 헛구역질도 나고 해서 동네 의원의 내과에서 내시경 검사를 받아보니까 위암일지도 모른다고 해, 다시 대학병원 내과를 찾아가 진료받고 MRI 촬영도 했습니다.
이때 성씨의 진료비는 이렇습니다.
여기 표에는 건강보험에서 지급된 급여 부분은 빠져 있습니다만, 성춘향 씨가 부담한 금액은 본인부담금과 비급여를 합쳐 83만 원입니다.
성 씨가 위의 실손형 보험 상품에 가입했다면, 얼마나 보장받을까요? 83만 원 전부? 아니면 83만 원의 80%인 66만 원?... 놀랍게도, 혹은 놀랍지는 않게도 26만 원에 불과합니다. 자기부담의 30%정도죠.
왜 이런 계산이 나오냐면, 이 상품의 보장내역마다 달려있는 단서 때문에 그렇습니다.
먼저 통원치료비 보상책임액은 통원 1회당 5천 원을 공제한 금액의 80%이고요, 통원 치료 1회당 10만 원 지급이 한도입니다. 연간으로는 180회가 한도고요.
이렇기 때문에,
매일 병원에 가 통원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180일을 제외한 나머지 185일 치료비는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고요, 성춘향 씨처럼 하루에 여러 번 병원에 갔다면 그 기간은 더 짧아지겠죠. 그리고 1회 10만 원 한도이기 때문에 180만 원이 최고액이군요.
다시 이번엔 이몽룡 씨가 병원에 열흘 입원했는데, 병실이 없어 상급병실에 닷새(20만 원), 일반 병실(2만 원)에 닷새 입원했다고 합시다.
생보사의 실손형 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에 이 씨는 자신이 낸 의료비 104만 원 중에서 급여 본인부담 4만 원*80%=3.2만 원, 비급여 100만원 중에서는 상급병실차액의 50%를 보상해주기 때문에 100*50%=50만 원, 104만 원 중에서 절반 정도인 53.2만 원을 보장받게 됩니다.
연간 3천만 원 한도라는 조건이 역시 붙어있습니다.
12.
이런 보장상품 보험료가 얼마냐 하면, 삼성생명 실손형 보험상품의 경우, 35살 남성이 가입했을 때 월 만 3천 원 정도라고 합니다.
와, 싸다 싶지만, 특약 형태기 때문에 삼성생명의 종신보험 같은 상품에 이미 가입해있어야합니다.
여기에 3년마다 보험료 갱신을 하게 돼 있어 자동차 보험처럼 그동안 보험금을 한 번도 안 받았다면 10%씩 할인해준다고 하는데, 반대로 보험금을 받아갔다면 보험료는 자연히 상승하겠지요.
보험금을 덜 지출할수록 이익이 나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건강하고 젊은 사람을 선호할 겁니다. 정작 보험 혜택이 더 많이 필요한 아프고 나이많은 사람은 이 상품이 활성화될수록 배제되거나 더 높은 보험료를 내야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은 결국 민영의료보험엔 가입하지 못하게 되고 건강보험에만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고요.
13.
글을 써나가면서도 제 자신의 논리가 아무래도 설익었다 싶은 부분이 많이 있는데요,
그럼에도 무모하게 장장 4번에 걸쳐 이러쿵저러쿵 적어봤습니다.
블로그관리팀에서 '의료보험 민영화?'라고 제목을 자꾸 붙여주시는데, 복지부는 건강보험 민영화는 안한다고 했고, 그렇게 갈 가능성이 낮다고 봅니다.
하지만 민영화는 안해도 민영화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은 나타날 수 있지요.
정부나 보험사 설명처럼 민영의료보험이 건강보험을 적정하게 보완하게 된다면 윈-윈 게임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데요,
그런 장밋빛 미래 말고 잿빛 미래의 가능성도 있는 만큼, 그런 쪽에 더 관심갖는 게 기자의 몫이 아닌가 합니다.
부족한 부분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집자주] 2003년에 SBS에 입사한 심영구 기자는 사회1부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참 넓고 깊고 복잡하고 중요한 분야'라면서 건강하게 오래사는데 도움이 되는 기사를 써보겠다고 합니다. 사내커플로 결혼한 심 기자는 부부가 방송 기자로 활약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