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가 열린 청계광장에서 한 할머니가 젊은이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제보를 받은 것은 일요일 오후. 인터넷 제보란에 첨부된 동영상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많아야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할머니와 말다툼을 하다가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할머니를 '덮치는' 동영상은 사건의 '진실'과는 관계없이 보는 사람의 공분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보도 여부를 검토하면서 일단 동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을 추려봤습니다. 남자는 20대 초반, 혹은 그 이하의 젊은 청년. 검은색 조끼를 입고, 안에는 붉은 색 셔츠. 깡마른 체구. 조끼의 등판에는 '가로 정비'. 노인은 약 6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 잠깐 카메라가 바닥을 비출 때 포장된 김밥 몇 줄이 담긴 스테인리스 용기가 보이는 것으로 김밥을 파는 행상으로 추정. 약 1분간 실랑이를 벌이다가 남자가 할머니를 폭행.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황급히 만류해 노인과 청년을 떼어 놓음. 조금 뒤에 두 사람이 다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노인은 폭행으로 인해 심하지는 않지만 상처를 입은 것으로 추정. 남자는 그 사이 조끼를 벗어 손에 들고 있다가 화면 밖으로 사라짐. 노인이 청년에게 도망가지 말라고 소리를 침.
지하철에서, 혹은 평상시의 거리에서 찍은 동영상이라면 이정도 선에서 기사 여부를 판단해야 할 사안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보의 내용에도, 동영상에서 확인한 현장 모습에도 어김없이 담겨 있던 것은, 당시 주변에서는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문화제'가 열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역시, 검토가 필요했습니다. 촛불집회가 이제는 한 순간의 분노가 아니라 시민불복종 운동의 한 형태로 자리잡은 지금도, 한 쪽에서는 집회 참석자들의 조합에 의문을 제기하며 '배후세력설'까지 제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동영상에 등장해 활극을 전개하는 20대 남자가 누구인지,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어떤 상황인지를 파악해서 보도 여부를 판단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벌써부터 온갖 추측과 다양한 비난이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촛불집회에 참가한 젊은이가 집회 참석을 말리는 노인을 폭행했다.' '청년은 폭력좌파다.' '무슨 소리냐. 노인이 무개념이다.' '이 모든 것이 보수층을 자극하려는 자작극이다.'....
혼란스러운 글의 홍수 속에서 많은 참고가 됐던 것은 남의 말을 무작정 퍼나르고, 퍼나른 말을 퍼나르며 비난을 입히고, 그렇게 비난까지 입혀진 퍼나른 말을 다시 퍼나르며 동조하는 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취재, 아니 수사를 해도 충분하다고 느낄 정도로 치밀하고 집요하게 '팩트'에 매달린 누리꾼들의 지적이었습니다.
누리꾼들은 동영상에 나온 청년이 입고 있는 검은 색 조끼에 주목했습니다. 한창 패션에 관심이 많을 젊은이라면 그다지 입고 싶어하지 않을 디자인이라는 정황적인 증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는 조끼의 등에 씌여진 '가로정비'라는 굵은 고딕체 글씨였습니다. 수사관 뺨치는 누리꾼들은 이어 서울시에서 용역업체를 고용해 가로 정비 사업의 일부를 아웃소싱하며, 그 업체에서 올렸다는 구인사이트의 광고까지 탐색해 내기에 이릅니다. 구체적인 증거는 여론의 향방을 구체적으로 설정합니다. 서울시 홈페이지에 항의글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동영상의 비디오 뿐만 아니라 오디오도 누리꾼들 사이에 논란이 됐습니다. 제보로 들어온 동영상에 청년이 노인을 가격하고 넘어뜨리자 마자 '와, 멋있다~'라는 소리가 들렸던 것입니다. 경험상 그 '멋있다'는 소리는 청년을 향한 것이 아닌, 당시 단상에서 자유발언을 하던 사람에게 보내는 격려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사람에 따라 소리 때문에 전체 내용을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문제가 다시 온라인 게시판을 달굴 무렵, 아니나다를까, 오디오가 차후에 다시 덧씌워진 것이라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더군요. 또 나중에는 동영상 원본의 소리가 그대로 살아 있는, 즉 오디오+비디오가 모두 원본인 동영상이 다시 공개됐습니다. 다만 촬영자는 자기와 일행의 이름이 나오는 '프라이버시' 부분을 무음(mute)처리하는 기지를 발휘하셨더군요.
사실 아침뉴스의 보도는, 네티즌들의 수사(?) 내용을 충실히 담지 못하고, 다만 일부를 전달하는데 그쳤습니다. 경찰이나 시청, 어느 곳에서도 사실확인을 할 수 없는 새벽시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정보의 옥석을 골라 가며 나름의 판단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까지도 확실한 내용을 전하기에는 무리였지만, 무리임을 알면서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물론 그 자체로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만) 한 사건을 둘러싼 '의혹'을 까면, 그 안에 '사실'이 있고, 그 뒤에 다시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를 시작으로 문제의 동영상에 담긴 내용이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2분도 채 안되는 동영상을 둘러싸고 엉뚱한 추측이 난무하는 결과까지는 치닫지 않겠죠. 그건, 바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상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편집자주] IT분야에 전문성이 느껴지는 유성재 기자는 2001년 SBS에 입사해 정보통신부 출입기자와 인터넷뉴스팀 기자로 다년간 활동했습니다. 지금은 사회2부 경찰기자팀의 부팀장격인 '바이스캡'으로 활약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