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년 기자 생활이 힘들면서도 재미있는건 매일 펼쳐지는 새로운 상황 한가운데로 뛰어들어야 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중국 쓰촨성 지진 당시, 진원지 주변을 여행하고 있던 한국인 관광객들이 무사한지, 앞으로 어떻게 우리나라로 돌아올 것인지 등을 취재해서 기사를 쓰라는 지시를 받았는데요. 방송시각 다섯 시간 전에 받은 지시라 어찌나 눈앞이 아뜩하던지... 물론 훌륭하신 선배들 도움을 받아 무사히 기사가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날은 그렇게 한 숨 돌리고 다음날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려던 차에 아직 현지에 남아있는 우리 관광객들이 있으니 확인해보라는 지시를 새롭게 받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큰/일/났/다 싶었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다고 해서 직접 현지에 가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침에 지시받은 일이라 시간도 충분하니 다른 선배들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민은 잠시, 혼란한 마음 가라앉히고 취재해야 할 곳을 생각해봤습니다. 아무래도 단체 관광객이다보니 여행사를 통해 여행했을 것이고 그 상황을 알 수 있는 곳은 외교통상부가 아닐까. 당장 외교통상부의 재외국민보호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은 외교부 출입기자들에게 하는 공식브리핑을 참고하라는 말만 할 뿐,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저는 당일 오전에는 지진 관련한 브리핑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문의하는 것이니 재차 대답을 부탁했지만, 담당 공무원은 민간 업체의 일까지 어떻게 정부가 일일이 다 알겠느냐는 퉁명스러운 대답을 하고는 바쁘다며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기자라고 제 신분을 밝혀도 이 정도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대답을 할까.. 그래도 기사는 나가야합니다. 일반여행업협회라는, 여행사들의 연합회로 문의를 해봤더니 문화관광부에서 전날 저녁에 요청이 와서 산하 150여 개 회원사로 연락을 돌리라는 공문을 발송했다고 합니다. 언제쯤 집계가 될지 물어봤더니 회원사가 많아서 오늘은 어렵겠다고 하네요.
별 수 없습니다. 직접 팔 걷어부치고 나서는 수 밖에 있나요. 그렇게 반나절 지나고 나니 쓰촨성 관광코스의 핵심 지역인 주자이거우(九寨溝) 공원 입구와 인근 지우황(九黃)공항 주변에 우리 단체여행객 49명이 청두(成都)로 이동하지 못하고 발이 묶여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현지 가이드와 어렵게 통화연결을 해보니 다행히 관광하시던 분들은 큰 부상없이 숙소에서 묶고 있었지만, 지진이 일어난지 하루정도 지나서야 객실에 투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취재하던 날은 공항이 막 복구되기 시작하던 때라 항공편 운항이 정상화되지 않았었고요, (원래 고지대라 지연과 결항이 잦은 곳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각국의 관광객들이 비행기표를 구하려고 몰려들어 혼잡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급기야 공항 측에서는 공항 현지에서 발권을 하지 않아서 본국의 여행사를 통해 표를 구하려고 현지 가이드 분들이 이리뛰고 저리뛰면서 고생이었다지요. 특히나 원래 비행기편으로 주자이거우에서 청두로 이동하려던 분들은 결항된 비행기표라도 있었지만, 버스로 이동하려던 분들은 표를 구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였다고 합니다. 한 여행사 관계자의 말을 빌면, '전쟁'이었다고요.
하지만 한국 외교부 측에서는 청두에 파견되어 있는 총영사관 측과 통신사정이 원활하지 못하다며 잘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똑같이 서울에 있는 어떤 기자는 반나절 전화해서 어느 여행사 상품으로 여행간 몇 분이 어느 호텔에서 청두행 비행기편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리고는 그날 오후 청두 영사관을 통해 확인한 28명이라는 수치를 발표했지만, 누락된 여행사도 있었을뿐더러, 해당 여행사별 관광객 숫자도 정확하지 못했습니다. 해당 여행사측에서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며 당황해하더군요.
문화관광부는 그나마 어림잡아 규모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만 관광객을 담당하는 부서이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며, 현지에 머물러있는 우리 관광객들을 안전하게 우리나라로 데려올 대책은 세우지조차 못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주무부처가 모른다고 손놓고 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인천-청두간 직항노선을 운항하고 있는 항공사에서는 지진 사태가 알려지자마자 여행사 관계자들과 대책회의를 열어 관광객 규모가 어떻게 되며 현재 상황은 어떤지를 나름대로 집계하고 있었지만 각자 자기 회사 현지 가이드와만 연락이 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저야 하루지나 시작해 다 파악하는데 반나절이나 걸렸다지만 외교부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었다면 이미 전날 집계가 끝나 있지 않았을까요. 만약 제가 외교부에 전화를 걸었던 아침에 담당 공무원이 대책회의를 하고 있으니 바빠서 전화를 못받겠다고 끊었다면 이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을겁니다. '캡'께서(이제는 많은 분들이 이 말을 알고 계시겠죠?) '네 가족이 현지에 있다는 마음으로 취재하라'고 하셨는데, 정말 가족분이 이 전화를 받았다면 얼마나 화가 났을까요.
해외에 있는 '국민'들을 보호해야하는 '재외국민보호과'는 모르고, '관광'을 담당하는 문화관광부에서 알고 있다면, 그렇다면 해외 유학생들은 공부하러 갔으니 교육기술과학부에서 파악하고 있어야 했던 걸까요.
그날 리포트가 나가고 난뒤, 여행사를 통해 여행한 단체 관광객들이야 현지 가이드가 있으니 파악이 됐다지만, 여행사를 거치지 않는 배낭여행객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는데, 역시 다음날 현지 유학생들이 쓰촨성을 여행하다 조난당했더군요. 그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이어서 하겠습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제가 그 리포트도 담당했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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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승환 기자는 2007년 SBS에 입사해 이제 막 취재를 시작한 새내기 기자입니다. 호리호리 마른 인상이지만 누구보다 뜨겁게 취재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슴에 품고 오늘도 각종 사건사고 현장에서 발로 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