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급 60만 3천원입니다
방송국에는 하루에도 몇 백통의 제보전화와 사연이 쏟아집니다. 쉴 틈 없이 바삐 돌아가는 보도국이지만, 시민들의 제보만큼 살아있는 뉴스는 없기에, 정말로 단 하나도 빠짐없이 확인하는 작업을 거칩니다. 이번 사건 제보를 처음 접했던 건, 노동절을 닷새 앞둔 날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농협에서 계약직으로 3년째 근무하는 분이었습니다. 몇 마디 나누지 못했지만, 정말로 긍정적이고 밝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일을 정말로 좋아하는 분이었지요. 아침 8시 출근, 저녁 7~8시 퇴근, 정규직과 똑같은 시간을 일하고, 그분이 손에 쥐는 돈은 70만원 정도. 사실 놀랐습니다. 은행이라고 하면, 흔히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고 월급도 많이 주는 직장’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3년 동안 단 한 번의 임금인상도 없이, 똑같이 일하고 남보다 적은 돈을 받아왔던 아주머니의 말에 저는 드릴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 돈이면 아이들 학원비는 벌수 있어서 다녀요."라며 빙긋이 웃는 모습에 마음이 짠했습니다.
아주머니가 제게 제보해주신 내용은 이런 적은 월급에서 그나마도 10만 원을 농산물 상품권으로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황당했습니다. 상여금도 아니고, 원래 받아야 할 월급 일부를 농산물 상품권으로 준다는 건, 회사의 횡포였습니다. 우선 노동부에 자문을 구했습니다. 노동부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월급은 반드시 통화로, 본인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 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다고 합니다. 해당 농협이 잘못 된 것이죠.
- 기다림과 배려
기사를 쓸 때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과연 이 기사 때문에, 혹시 이 분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는 않을까. 물론 아주머니는 노동부에 신고까지 마쳤고, 불이익을 감수하고 저를 만났다고 했지만,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제보자를 노출시키면 사실적인 기사가 되겠지요. 그런 유혹은 기자라면 누구나 접하는 유혹일 겁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이와 성은 바꿨습니다. 음성변조는 물론이고, 행여 모자이크도 불안해서 영상기자 선배는 세심한 앵글로 나무 뒤편에 제보자를 가려 촬영했습니다. 사실 욕심 같아서 당장 농협 담당자를 만나고 싶었지만, 우선 아주머니의 신변보호를 위해 외경만 촬영하고 돌아갔습니다.
- 살살해 주세요
대신 서울의 농협 본사를 찾아갔습니다. 이런 경우가 있는지, 왜 그렇게 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농협 본사에서는 옳지 못한 일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 아주머니가 극성이라면서, "아니 한 달에 농산물 10만 원 안 먹냐"고 말하더군요. 황당했습니다. 한 달에 500만 원 받는 사람에게 10만 원과 한 70만 원 받는 사람의 10만 원은 다릅니다. 또한 잘못된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시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안일한 태도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잘 좀 보도해 달라. 살살 좀 해 달라"가 제게 한 말이었습니다. 반드시 시정하겠다,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말이지요. 결국 살살 보도하지는 못했습니다.
제보자 분만을 위한 기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비정규직에 관심을 갖고 기사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아주머니의 말에, 저는 진심으로 뿌듯하고, 스스로가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이 기사로 잘못된 부분이 하루빨리 시정됐으면 합니다.
[편집자주] 장선이 기자는 2007년 SBS에 입사한 새내기 기자입니다. 지난해 수습 기자로서 이천 냉동창고 화재, 숭례문 방화 사건 등 굵직한 경험을 쌓기도 했습니다. 사회2부 사건팀의 '신형엔진'으로 불리며 기대주로 활약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