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문화제에 다녀온 뒤..


지난 6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예전 효순, 미선양 사건 때 광화문에 나갔을 때에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입장이었지만 이번 촛불문화제 현장에서는 참가자가 아닌 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했기에 그 느낌이 사못 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광우병 위험은 그간 꾸준히 언론을 통해서 제기되어 왔고 저 또한 몇 년 전에 걷지 못하고 힘없이 쓰러지는 소를 촬영한 영상을 봤었기에 광우병 공포가 어떤 것인지 나름대로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시민들의 반응은 제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습니다.

쇠고기 수입 조치가 당장 다음주부터 시작되면 바로 우리 식탁에 미국산 쇠고기가 올라올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는지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의 눈에서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광우병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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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이른바 '괴담'에 대해 시민들의 반응을 들어봤었는데요.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조리한 칼과 도마를 물에 씻을 때 광우병 위험물질이 물을 타고 퍼질 수 있다는 소문에서부터 시작해서, 키스만 해도 광우병이 전염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시민들이 느끼고 있는 광우병에 대한 공포감의 원인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인터뷰했던 한 참가자는 "그러한 괴담들이 말 그대로 기괴한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라 하더라도 광우병에 대한 충분한 연구성과가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면적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조치를 취한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원인이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최대의 업적으로 손꼽았던 청계광장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심지어는 취임한 지 석달 밖에 되지 않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것도 정부의 어찌보면 무책임하다고까지 볼 수 있는 태도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보입니다.

제가 나갔던 청계광장에서는 경찰이 추산하기로 8백여명에 가까운 중고등학생들이 모여 있었는데요 비슷한 시각에 여의도에서 열렸던 촛불문화제에는 5천여명의 학생들이 모였고, 지난 2일과 3일에 열린 집회에서는 훨씬 더 많은 수의 학생들이 참여했었다는 점을 보면 학생들 또한 광우병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짧게나마 학생들 이야기도 들어봤었는데요.

당장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전면 개방되면 원산지 표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싼 값에 음식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학교와 군대 같은 단체 급식소에서 가장 먼저 미국산 쇠고기가 공급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제가 얘기를 나눈 학생들에게는 절박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광우병의 잠복기가 짧게는 5년 길게는 2-30년까지라는 이야기 때문인지 학생들은 미래에 자신들이 사회에서 활동할 때 광우병 때문에 꿈을 펼치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촛불문화제에서 자유발언을 했던 한 중학생은 자신도 좋은 남편 만나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며 이런 소박한 꿈마저 지키기 힘든 현실을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연예인들이 과격한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시사 문제에 관심이 있는 연예인들이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에서 한마디 거들었던 것도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요.

인기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의 팬이라는 한 중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그룹의 멤버가 생방송에서 공개적으로 했던 이야기가 촛불문화제에 참여하는 용기를 내는데 중요한 부분이었다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분별한 팬심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라고, 학생들도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던 배우 정찬 씨는 마이클 무어의 영화 '식코'를 보고 그래도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 쇠고기 사태가 일어났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문화제보다 앞서 열렸던 촛불집회 영상을 보면서 제게 인상깊었던 장면은 참가자들이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이었는데요.

이번 촛불문화제에서도 어김없이 한 대학생이 애국가를 부르자고 유도했지만 제가 봤던 영상에서만큼 시민들의 반응이 높지는 않았었고요, 오히려 문화제를 끝내면서 불렀던 아리랑이나 진달래꽃과 같은 노래들이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을 보면 시민들은 자신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것에 정치적 의미가 부여되는 것보다는 사회문제에 대해 모였다하더라도 이를 흥겨운 축제마당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그와 같은 방식으로 드러내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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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대응도 조금 달랐었는데요.

애초에 현장에 나가기 전 불법집회로 간주하고 일부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형사처벌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혹여라도 경찰과 시민들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염려했습니다만 경찰도 기본적으로 이 촛불문화제를 정치적 집회라기보다는 문화제로 간주하고 질서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경찰력만 배치하고 방패와 보호장비를 갖추지 않는 등 이번 촛불문화제를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뜻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여의도의 침묵 문화제와는 달리 청계광장에서는 일부 참가자들이 대통령 탄핵 구호를 외치는 등 집회와 문화제의 경계를 넘나드는 장면이 연출됐었는데요.

경찰도 그 점에 대해서는 현장 자료를 분석해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단체 관계자와 강기갑 의원의 말도 들어봤습니다.

박원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시민단체가 앞장서 광우병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냈어야하는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이처럼 큰 움직임을 만들어냈다"면서 "시민단체 관계자로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관한 범국민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킨만큼
앞으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담아내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른바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를 알리는데 적극적으로 노력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다음날 열리는 청문회에서 미국산 쇠고기 개방 협상을 전면적으로 다시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얘기했는데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강 의원은 청문회에서 당장 어떠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사실 행정부와 국회, 지방의회까지 과반을 넘는 국민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정치인들이 한 일에 대해 이처럼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게 되었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를 취재하면서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촛불문화제가 가진 의의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만 이렇게 거리로 나서기에 앞서 시민들의 의견을 충실히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을 정책결정자로 선출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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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한승환 기자는 2007년 SBS에 입사해 이제 막 취재를 시작한 새내기 기자입니다. 호리호리 마른 인상이지만 누구보다 뜨겁게 취재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슴에 품고 오늘도 각종 사건사고 현장에서 발로 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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