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와 통신위 그리고 경찰


21세기를 사는 한국인을 특징짓는 요소는 어떤 게 있을까요? 다양한 대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저는 스팸전화나 문자메시지, 메일을 받아봤느냐를 그 중 한가지로 꼽고 싶습니다.

예전엔 시작하는 번호를 보면 대략 구분이 갔는데 이젠 진화해서 평범한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죠. 스팸전화와는 약간 개념이 다르지만, 텔레마케팅 업체로부터 걸려와 뭔가의 구입을 권유하는 전화 역시 현대 한국인을 괴롭히는 공해 중 하납니다.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대체 이 놈들이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을까?'란 생각들 해보셨을 겁니다. 그래서 텔레마케팅 회사에서 적은 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예쁜 목소리의 여성과 실랑이를 벌인 경험들도 다 있으실 거고요. (참 신기한게...군 생활할 때 군 사무실로도 이런 전화가 걸려오더란 겁니다. 제 후임병 중 한 친구는 이렇게 전화를 건 텔레마케터와 1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다 휴가 나가서 만나기도 했지요. --;;)

옥션 해킹 사건으로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관심이 커진 지난주, 경찰이 야심차게 두 건의 수사 발표를 했습니다. 한 건은 지난 포스트에서 소개한 LGT 사건이고요. 또 한 건이 요즘 집단 소송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하나로텔레콤 사건입니다.

하나로텔레콤이 600만명에 달하는 가입자 정보를 고객들의 동의 없이 전국의 텔레마케팅 업체에 넘겨 '하나TV'나 '전화' 마케팅에 사용했다는 거죠. 또 시중은행과 협약을 맺고, 카드 마케팅에 사용하도록 자사 고객정보를 넘겨줬다는 겁니다. 이 카드로 하나로텔레콤 사용료를 내면 할인해준다는 혜택을 제시해 고객을 모은건데, 이럴 경우 사용료 연체가 사라지고, 만일 연체가 되더라도 하나로텔레콤에겐 돈이 들어오고 카드사가 추심을 하게 되니 고객 관리도 훨씬 편하게 할 수 있단거죠. 덕분에 우린 처음에 언급한대로 각종 전화에 시달리게 된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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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초고속인터넷통신 사업자들이 고객 정보를 고객 동의 없이 다른 곳에 제공한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만, 이번에 경찰은 이번 사건이 예전 건들과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며 떠들썩하게 발표를 했습니다. 초고속통신사들은 지금까지 이런 일이 일어나면 본사는 모르는 일이라며 일선 대리점의 과잉 충성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해왔는데요. 이번에 본사 차원에서 이런 일들을 조직한 문서를 찾았다는 겁니다.

하나로텔레콤이 자사의 인터넷 서비스를 해지한 고객들에게 다시 전화를 해 다른 서비스를 가입하라고 권유하도록 만든 텔레마케터용 교육 문서를 예로 들었습니다. IPTV 사업에 진출할 때 인터넷 가입자들을 상대로 마케팅을 펼치겠다고 공시한 것도 본사 차원에서 조직한 근거로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로텔레콤의 전 대표이사 등 경영진을 형사 입건했죠. 하나로텔레콤은 공식적으론 혐의를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기소된 게 아니니까 아직 입장을 표명하긴 이르단거죠. 또, 경찰이 적용한 혐의에 대해 법적으론 충분히 다퉈볼 소지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실제로 일부분은 법적으로 다퉈볼 소지가 있습니다. 왜 일까요?

법 조항을 적용할 때 항상 쟁점이 되는 건 '문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란 문제입니다.이번에 문제가 된 건 결국 고객의 동의를 받지 않고 정보를 넘겼다란 점입니다. 제3자에게 고객 정보를 넘기려면 고객에게 그 목적과 넘기는 대상을 미리 알려주고, 동의를 얻어야한다는 규정을 어겼다는 거죠. 하나로텔레콤은 이에 대해 '개인정보 활용 동의서'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업체에 업무를 위탁하는 내용에 대해 '상품 소개'라고 썼다며 '하나TV'나 전화 등도 이 상품에 포함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상품'이란 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가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경찰은 여기서 '상품'이라는 건 인터넷에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요. 하나로텔레콤은 보다 포괄적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법적으로 다툴 소지가 있다고 보는 거죠. 하지만, 하나로텔레콤은 '하나TV' 고객을 모집하는 자회사에 고객정보를 제공할 땐 '하나TV 상품 소개'라고 명시를 했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상품'을 과연 포괄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진 의문입니다.

법원이 이 부분을 합법적인 행위로 판단하더라도 은행에 카드 고객 유치 목적으로 고객 정보를 제공한 것과 해지 고객의 정보를 파기하지 않고 있다가 다시 마케팅에 활용한 것은 명백한 불법입니다. 해지 고객 정보는 즉시 파기해야 하는 것이고요. 금융기관에 고객 정보를 제공하는 건 요금 수납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지 양 사에게 이익이 되도록 고객을 모으는데 쓰라고 하는 건 아니니까요.

경찰이 야심차게 이야기한 또 한 건은 방송통신위원회와 옛 정보통신부 공무원들이 초고속통신사들을 의도적으로 봐줬다는 겁니다. 단속은 '짜고치는 고스톱'이었고, 적발된 사실에 대해서도 축소-은폐했다는 겁니다. 지금은 정보통신부가 방송통신위원회로 합쳐졌으니 창구는 방통위 하나인데요. 방통위는 펄쩍 뛰었습니다. 경찰이 제대로 수사도 하지 않고 언론 플레이로 먼저 치고 들어온다는 거죠. 경찰은 정통부와 통신위가 단속을 나가기 전 미리 통신사에 알려줘 사실상 단속이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요.법률에 보면 이런 단속을 나가기 1주일 전 당사자에게 고지할 의무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 법률의 시행이 작년부터였단 점인데요. 경찰은 이를 토대로 통신위의 해명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통신위는 2004년 제정된 통신위 운영규칙에도 이 내용이 있기 때문에 경찰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다시 법률에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 때'는 단속 현장에서 알려도 된다며, 실효성 없는 단속에 대해 핑계만 댄다고 주장하고 있죠. 이런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뭘까요?

한국의 유선통신 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깔려있습니다. 유선통신망 분야는 시장이 완전 포화 상태입니다. 유선 전화는 사실상 사양산업이라고 봐도 될 것이고요. 초고속인터넷 한 가정에 한 개 이상 신청 안 하지 않습니까? 따라서 커질 수 없는 파이를 서로 뺏고 뺏는 경쟁을 하다보니 이 망을 이용해 할 수 있는 다른 서비스(IPTV 같은 것)에 목을 맬 수 밖에 없고, 충성도 높은 고객 확보를 위해 카드사와의 수상한 제휴나 해지한 고객의 정보까지 이용한 마케팅에 나서게 된 겁니다.

그런데, 변화무쌍한 IT 세계에서 법과 제도가 기술을 따라가는 건 사실 불가능하죠. 그렇다고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건 법의 취지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안되고. 그렇다면 중요한 건 결국 '정책 의지'가 되겠죠. 사실 지금까지 정책 방향은 IT 강국을 만들겠다는 일념 아래 업계의 편의를 높여주는 쪽에 맞춰져있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는 상대적으로 아래쪽에 있었죠. 뒤늦은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방통위가 이런 문제에 대해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더라면...'이란 하나로텔레콤 관계자의 말에서 작금의 사태에서 책임의 한 축이 어디에 있는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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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유재규 기자는 2005년 SBS 기자로 입사해 국제부를 거쳐 사회2부 사건팀 기자로 취재 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취재로 우리 일상의 사건.사고와 숨은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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