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한통의 제보전화가 왔습니다.
"불법 오락실이 아직도 영업 중인데요, 와서 취재 좀…."
2006년 바다이야기 사건 이후로 당시 문화관광부는 성인오락실을 모조리 없애겠다며 아주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아예 바다이야기 같은 '사행성 게임'은 게임으로 등록 자체를 못하게 하면서 사행성 게임 씨를 말리려 했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성인 오락실이 '음지'에서 독버섯 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종로 3가 골목을 걷다보면 무섭게 생긴 철문이 보입니다. 사람들도 몇몇 지키고 있고, 이게 다 간판도 내걸지 않고 영업하는 불법 성인 오락실이라고 보면 됩니다.
각설하고, 일반적으로 이런 취재의 경우
① 기자가 직접 들어가서 몰래카메라를 돌리거나,
② 경찰을 동행해서 현장을 덮치는 경우가 있겠습니다.
이번에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이런 불법 성인 오락실의 경우, 문 앞에 CCTV도 설치돼 있고, 망을 보는 사람까지 있어 덮치기 위해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조금만 방심해서도 '삑사리'가 나기 때문이죠. 저는 카메라 기자인 설민환 기자와 함께 청량리, 그 문제의 성인 오락실로 향했습니다.
제보자는 이미 그 주변 지구대원들과 함께 덮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그들이 먼저 가버려서 덮치는 장면을 못 잡을까봐 현장으로 가는 도중에 지구대원들과 통화를 하며 기다려 달라 또, 사복을 입어 달라 부탁을 했습니다.
약속장소는 옛 미도파 백화점 앞. 마음 같아서는 지구대 안에서 작전을 먼저 짜고 싶었지만 굳이 미도파 백화점 앞에서 기다린다는 것을 막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했을 때,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습니다. 오락실 '알바생'으로 보이는 작자가 길거리에 나와 눈치를 보면서 쉴 새 없이 전화를 해대고 제보자와 사복을 입은 그 지구대원들이 가게 바로 근처에서 서성대고 있었습니다.
'꽝이 났나?'
답답한 마음이 있었지만 진정을 하고 그들에게 오락실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지구대원들,
"와 보니 우리 관내가 아니잖아, 그럼 마음대로 행동 못하지. 여기 관할 지구대원들 올 때까지 기다리죠."라고 말합니다.
정말 이해가 안 됐고, 지금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자기들 사정이 있다며 자리에서 발을 떼지 않았습니다. 정말 백번 양보해서 '그래 그러자, 참자' 라고 숨죽이길 15분, 20분정도 됐을까?
그 관할 지구대원이라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정복을 입고 아주 제대로 무전기도 갖춰 주시고, 모자까지 정갈하게 써주시고 무려 10여 명이 되는 지구대원들이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오락실과 200미터도 안 되는 지점에 말이죠.
아예 싸이렌 켜고 순찰차까지 끌고 오시지, 쥔장 ㅡㅡ+++
당시 카메라 기자 왈
"선배가 정말 당황하시던데요, 쓰러지시는 줄 알았습니다."
네, 맞습니다. 전 정말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줄 알았습니다.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얼굴에 붉은기가 가시는데 시간이 좀 걸리더군요.
기자는 현장을 잡기 위해서는 취재차량도 SBS 로고가 없는 차를 택하고 심지어는 옷까지 그 분위기에 맞춰서 입습니다.
하물며, 현장을 몰래 덮치겠다는 경찰이 수사 ABC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업주들에게 일부러 티를 내서 도망가게 해주려는 건지, 끌끌끌..
Dumb & Dumber, 어느 바보도 이런 경찰의 움직임은 다 파악할 거 같았습니다. 오락실 문은 굳게 잠겨 있고 지구대원들이 119를 불러 문을 땄을 땐, 역시나 내부에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일단 들어갔습니다. 한 네 번은 꺾어 줘야하는 미로 같은 복도를 지나자 '슬롯 머신' 70대 정도를 갖춘 큰 방이 나왔습니다. 자리에는 뽀송뽀송한 떡과 커피, 담배…결정적으로! 이제 막 찐 듯한 따끈따끈한 계란이 있었습니다. 정말 계란은 속을 갈라보니 김까지 모락모락 피어올랐습니다.
경찰들이 악덕 업주들을 잡아야겠다는 의지가 실종된 가운데, 업주와 손님들은 눈앞에서 유유히 사라진겁니다.
때때로 '일부' 영화에서 나오는 '일부' 경찰들의 모습, 어느 정도 희화화한줄 알았습니다. 게으르고 무능력하고….그러나 그날 현장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았습니다. 물론, 코미디 영화겠죠.
불법 성인 오락실이 음성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물론, 경찰의 인력난이라든지 시스템적으로 많은 어려움 때문에 단속이 어려워서 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미온적인 태도로는 전혀 바꿀 수 없다는 거~
[편집자주] 발랄함과 밝은 표정이 돋보이는 한지연 기자는 2004년 SBS에 공채로 입사해 문화부와 경제부를 거쳐 지금은 사회부 사건팀 경찰 출입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