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복무만 안할 수 있다면 신체 훼손쯤이야"

'전과자 되거나 현역 재복무'에 심각한 후유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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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신체를 훼손시킨뒤 현역복무를 피하려한 축구선수 등이 무려 90여 명이나 무더기로 적발된 것은 체육계 등에 만연된 현역복무 회피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른 종목과 달리 축구는 상무팀 등에 선발되지 못하고 2년간 운동을 중단하면 단련됐던 근육이 풀려 선수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도 어린 시절부터 축구만 한 뒤 K-2(실업리그)나 K-3(아마추어 리그)에 몸 담으며 나중에 지도자 생활이라도 하려는 이들 '무명 선수'의 조급증을 키워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금은 개선됐다고 하지만 '꾸준한 연습'을 통해 특정 부위에 힘을 줘 혈압을 높이거나 브로커 조직이 대신 혈압을 재주고 병역 급수를 낮추는 등 병역 판정과정의 제도적 허점도 드러났다.

◇ "축구에 별 지장없는 왼쪽 어깨를 훼손하라" = 병무청이 지난해 9월 정형외과의 윤 모 씨가 2006년 7월부터 다음해 9월까지 병역 의무 대상자에 대한 병사용 진단서를 과다 발급해 수술 경위나 진단서 발급 과정에 의문이 있다며 수사를 의뢰해 검찰이 나섰다.

검찰은 윤 씨가 어깨가 조금만 탈구돼도 쉽게 수술해주고 진단서를 내준다는 사실이 축구선수 사이에 '알음알음' 알려져 일부는 축구를 하는데 큰 지장이 없는 왼쪽 어깨를 일부러 탈구시킨 뒤 이곳을 찾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견갑관절(어깨) 불안정성으로 4~5급 판정을 받으려면 어깨 탈구만으로 안되고 관절경 수술을 한 뒤 병사용 진단서를 받아야 하는데 다른 대부분의 정형외과에서는 이 정도로는 증상이 심하지 않아 보존적 재활치료를 권유하고 수술도 해주지 않는다.

어깨뼈를 어긋나게 하려고 대부분 선수들은 2~3개월간 약 10㎏의 아령을 들고 통증을 느낄 때까지 아래로 계속 세게 내려치거나 손으로 의자를 잡고 앉아 뒤로 젖히는 등의 방법을 썼는데, '급한' 경우 다른 사람에게 어깨를 뒤에서 발로 밟게 해 어깨 관절순을 찢음으로써 부위 근육이 함께 파열되기도 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심지어 이 중 11명은 이렇게 4급 판정을 받고 완전 면제 판정을 받으려 다시 어깨를 탈구시키고 재수술을 받았으며 3명은 '성공'했으나 나머지 8명은 첫번째와 다른 부위가 손상돼 '실패'하고 그대로 4급 판정을 받았다.

검찰은 특히 의사 윤 씨가 다른 병원이 '단순 어깨 염좌 및 긴장'이라는 진단을 내린 S전자 이모 선수 등 6명에게 곧바로 수술을 실시했고 X레이 검사에서 탈구 정도가 경미해 처음 수술을 거절한 S클럽 김 모 선수가 어깨를 조금 더 탈구시킨 뒤 자꾸 수술을 요청하자 4번째 진료를 하면서 경위를 묻지도 않은 채 수술을 해줬다고 공소 사실에서 밝혔다.

윤 씨는 한 시청 소속 선수들의 탈구 정도가 약하자 직접 팔을 잡아당긴 상태에서 X레이 촬영을 하기도 하는 등 이들 92명으로부터 수술비와 입원비 명목으로 1명당 200만~300만 원씩 2억4천100만 원을 벌어들였다고 검찰은 덧붙였다.

◇ "지속적인 연습으로 혈압을 높여라" = 대학생 김 모 씨는 우연히 혈압을 의도적으로 높이는 방법을 터득해 자신의 병역 급수를 낮춘 뒤 친구 등 3명과 함께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병역 상담 카페를 만들어 현역 입영 대상자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이들은 2006년 7월부터 1년간 350만~400만 원씩 모두 5천여만 원을 받고 16명에게 4급 보충역 판정을 받거나 5급 병역면제 판정을 받을 수 있도록 고혈압 환자로 위장하는 방법을 전수했다.

잠을 자지 않고 커피를 마신 뒤 이두박근과 아랫배 등 특정 신체부위에 힘을 주도록 하거나 혈압이 높은 발목에 혈압계를 차도록 하는 방법 등을 가르치다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혈압 올리기'에 능수능란한 이들 중 1명이 대신 혈압계를 차기도 했다.

김 씨 등은 혈압을 대신 재주는 외에도 상담 역할, 병원에 동행해 지시를 하는 역할, 재검 대상자가 24시간 혈압 검사를 하는 동안 함께 여관 등에 투숙해 돕는 역할, '지방고객'을 위해 출장가는 역할 등을 나눠 맡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런 탈법이 가능했던 것은 상당기간 연습을 한 뒤 병무청에서 일단 고혈압 의심 판정만 받으면 병무청 지정 병원에서 24시간 혈압검사를 통해 병사용 진단서를 받도록 하고 있는데, 대부분 병원이 입원 검사 대신 본인이 원하는 장소에서 자유롭게 혈압을 재도록 하고 있어 브로커가 함께 여관 등에서 혈압계를 발목에 차게 하거나 자신이 대신 해주는 등의 방법을 쓸 수 있었기 때문.

병무청 관계자는 "지금은 혈압을 수십번 체크하는데다 근전도 검사를 병행해 특정 부위에 힘을 주는 게 그대로 나타나 이런 불법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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