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아닌 '통역'으로 나선 임오경 감독


"당장이라도 코트에 달려나가고 싶지만 이제는 후배들에게 양보해야죠. 저는 통역이라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27일 저녁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예선 재경기를 이틀 앞두고 실전이 열리는 일본 도쿄 요요기 국립실내체육관에서 적응 훈련을 시작한 여자핸드볼대표팀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투혼의 은메달을 따낸 대표팀 주장이었던 임오경(37) 일본 실업리그 히로시마 메이플레즈 감독.

임 감독은 다음달 2일 팀의 리그 마지막 경기가 예정돼 있지만 대표팀이 일본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도쿄로 달려왔다.

임오경 감독이 이번 대표팀에서 맡은 역할은 바로 통역.

1994년 한국체대 졸업과 동시에 히로시마로 이적한 임 감독은 1996년부터 플레잉 감독으로 10년 넘게 팀을 이끄는 등 14년 동안 일본에서 생활해 현지인만큼 일본어를 구사한다.

임 감독은 체육관에 도착하자마자 1년 후배인 오성옥(36.오스트리아 히포)부터 찾았다.

오성옥과는 히로시마에서 함께 뛰기도 했고, 대표팀에서도 오래 생활해 친동생보다 더 애틋한 관계.

이 둘은 최근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핸드볼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주연인 김정은과 문소리의 실제 모델로 알려지면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체육관에 도착하자마자 코트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오성옥에게 "야, 아줌마! 아는 척 좀 해라"라며 인사를 건넨 임 감독은 이내 일본핸드볼협회 관계자에게 '물을 가져다 달라', '체육관 난방이 안돼 있다'는 등 통역 역할에 전념했다.

임무를 모두 마친 뒤 대표팀 훈련을 지켜보던 임 감독은 몸을 풀던 선수들이 실전을 방불케하는 강도높은 훈련에 들어가자 "나도 갑자기 기운이 난다. 달려들어가 같이 뛰고 싶다"고 하면서도 "이제는 후배들에게 양보할 때도 됐다. 나는 욕심을 버리고 통역이나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감독은 같은 숙소에서 묵으면서 대표팀의 짧은 일본원정에 도움을 줄 계획. 또 29일 열리는 여자 예선 때는 방송 해설가로 데뷔한다.

한참 훈련을 지켜보며 감회에 젖은 임 감독에게 해설 데뷔를 앞두고 준비는 잘 되느냐고 물었더니 일본 대표팀에 대한 전력분석이 술술 나왔다.

임 감독은 "일본 선수들은 수비가 약하기 때문에 공격에서 유럽 선수들을 상대하는 식으로 하면 안되고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수비에서도 유럽은 신장과 힘이 좋아 전진수비를 하곤 하는데 일본을 상대할 때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뒤로 처진 수비를 하더라도 체력 소모를 줄이면서 상대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6월 창단 예정인 서울시청 감독으로 내정된 임오경 감독은 선수 수급이 급선무.

오성옥 등 유럽에서 뛰고 있는 대표 선수들을 데려다 쓸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임 감독은 "그렇게 되면 좋지만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어 선수들에게 그런 얘기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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