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 드러나는 이천 화재참사 안전불감 실태

구멍 뚫린 관련 법규가 불씨 키워…보완 시급


이천 냉동창고 화재참사가 9일로 사흘째를 맞으며 총체적인 인재임을 입증하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 우리사회에 만연해있는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소방법과 건축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법규는 미비하기 그지 없어 참극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과 함께 법규 보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고현장은 안전불감증 '백화점'

가로 180m, 세로 127m에 면적 2만3천338㎡의 초대형 지하 냉동창고가 동시다발적으로 삽시간에 화염에 휩싸인 것은 밀폐공간에 가득 찬 유증기 때문이라는 것이 소방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유증기는 우레탄폼 발포작업 이후 체류한 것으로 분석됐다.

우레탄폼 업체 관계자는 "우레탄폼 작업을 2개월에 걸쳐서 했고 지난해 12월 29일 마쳤다"며 "작업중에도 환풍기 20~30대를 설치해 충분히 환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환풍기로는 축구장 면적 2배에 가까운 지하공간의 환기작업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경인지방노동청 성남지청 관계자는 "사고현장의 경우 거대한 원통형선풍기와 유동성 호스를 이용해 공기를 불어 넣으면서 환기해야 한다"며 "미로식으로 25개 냉동실이 설치됐고 반지하 구조라 환기작업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는 200ℓ짜리 우레탄폼 연료 15통이 남아 있었고, LP가스통도 2개가 발견되는 등 폭발성 물질이 산재해 있었지만 업체측은 개의치 않고 점화원(불티)을 생성할 수 있는 배관 보온공사와 전기공사를 벌였다.

마감공사후 나머지 보강작업을 위해 우레탄폼 연료를 현장에 방치했고 다른 현장도 마찬가지라는 업체측의 해명은 '안전불감증'을 극명히 드러냈다.

업체측은 안전보건책임자를 지방노동청에 신고하고 공사를 해야 하는 기본적인 안전수칙도 어겼다.

경인지방노동청 성남지청에 따르면 20억 원 이상 공사의 경우 현장소장을 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 보고해야 하나 냉동설비공사(공사비 24억2천만 원)를 담당한 유성ENG측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이에 따라 중국동포 등 인력시장에서 급조한 일용직들에 대한 안전교육과 유증기 농도 측정 등 세심한 현장관리도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안전의식이 결여된데다 이 조항을 지키지 않을 경우 과태료가 300만 원에 불과해 유성ENG측이 무시한 것으로 성남지청측은 설명했다.

화약고와 같은 현장에서 용접작업까지 벌였다는 사실이 경찰조사에서 확인될 경우 업체측은 엄청난 비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경인지방노동청 성남지청은 경찰수사와 병행해 업체측의 환기와 유증기 농도측정 소홀 등 안전규정 위반 혐의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편법 부추겨 불씨 제공한 관련법

시공사 '㈜코리아2000'은 지난해 11월 5일 건축물 사용승인을 받았는데 지하 냉동창고의 우레탄폼 발포작업은 사용승인 이후에 이뤄졌다.

1~2층 임대와 공기단축 등의 이유로 사용승인을 미리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창고건물인 관계로 건축법상 별다른 저촉을 받지 않았다.

우레탄폼 공사는 냉동창고 영업개시(오는 12일)를 불과 14일 앞두고 끝났고, 이 후 냉매주입과 전기시설작업 등 마무리공사가 한창 진행됐다.

앞서 코리아2000 건축주 공모(47.여)씨는 불법으로 기초공사를 벌이다 적발돼 6월 14일 고발조치됐지만 보름뒤 건축허가가 났다.

이천시 건축과 관계자는 "건축주측이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허가 전 착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통상적으로 (불법 건축행위에 대한) 고발과 함께 건축허가를 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코리아2000 건물의 시공사와 감리회사가 사실상 같은 회사라 관리·감독이 소홀할 수 밖에 없었지만 건축법은 시공과 감리를 같은 계열사가 맡는 것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코리아2000 건물의 감리회사는 코리아2000 건축사사무소로 경찰조사에서 건축주 공씨가 거느린 시공사 ㈜코리아2000과 사실상 '한 회사'로 파악됐다.

코리아2000 건물에서는 지난해 10월 16일 용접작업중에 화재가 발생해 소방장비 9대가 출동하는 소동을 빚었으나 사흘뒤인 10월 19일 소방시설완공 검사를 받았다.

이천소방서 관계자는 "화재가 자체진화된데다 별다른 피해가 없어 소방시설완공 검사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관련법에 따라 감리업체의 보고서를 제출받아 소방시설완공 검사필증을 내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방비리 근절차원에서 1993년 개정된 새 소방법은 코리아2000과 같은 창고건물의 경우 소방전문가인 '감리사'가 현장 점검을 거쳐 필증 교부를 요구하면 소방서에서는 서류검토만으로 필증을 내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화재시 유독가스를 발생시키는 우레탄폼과 샌드위치패널이 창고건물 시공에 주로 쓰이지만 건축법과 소방법상 화재예방과 관련해 두 건축재료 사용에 관한 특별한 규정이 마련되지는 않은 상태라고 소방관계자는 전했다.

(이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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