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해가 바뀌고 2008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생일이니 기념일이니 하는 날이나 해가 바뀔 때 그냥 똑같은 하루하루라 생각해 무덤덤한 편입니다. 여기 저기서 새해인사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을 보면 좀 호들갑스럽다는 느낌도 갖습니다. 특히 올해는 소위 ‘엄지 연하장’이라는 문자로 보내오는 새해 인사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잊지 않고 챙겨 문자라도 보내주신 성의에 감사하기도 하면서, 똑같은 문구로 수십 수백명에게 일시에 뿌리는게 뻔한 문자연하장이 곤혹스럽기도 하더군요. 문자 앞머리에 제 호칭이라도 붙여 보내온 분들에게는 일부 답장을 보내기도 했습니다만 저도 그냥 휴대폰에 저장된 모든 분들에게 같은 문구로 확 보내버릴까하는 유혹에 시달렸습니다. 아무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 첫 개봉영화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기다리다 미쳐(15세 관람가)
극소수 ‘신의 아들’들을 제외하고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 한번씩(참! 가수 싸이는 다시 끌려갔더구만요.) 다녀오는 군대, 이곳을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 피끓는 나이에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청춘남녀 사이에 여러가지 희비극이 싹트게 됩니다. 군대를 보내고 가는 각기 다른 네 커플들의 모습을 옴니버스 식으로 균등하게 비춰주며 20대라는 긴 터널을 통과하는 청춘남녀의 모습을 솔직담백하게 그렸습니다. 꼼꼼한 사전 취재를 바탕으로 군대 내부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잘 묘사했고, 헤어지고, 헤어졌다 다시 만나고, 새 사랑을 만나는 청춘남녀들의 모습을 잘 그렸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미덕은 이들의 사랑을 미화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관조하려는 태도와 억지로 웃기거나 울리려는 오버나 트릭같은 달콤한 유혹을 잘 뿌리쳤다는 점 같습니다.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그때 추억을 떠올리고 애인이 친구가 군대에 있는 분들은 실감나게, 앞으로 갈 사람이나 그 관계자들은 예습차원에서 보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연상연하 커플인 손태영, 장근석의 통장정리 에피소드도 멋있지만 저는 짝사랑에 가슴앓이 하는 장희진-데니안 커플 이야기가 제일 좋았습니다. ‘똥국’에 저주를 퍼붓는 말년병장 우승민도 감초 이상의 비중을 갖고 있습니다.)
미스터 후아유(15세 관람가)
아버지의 장례식 하루 동안 벌어지는 여러 인물들의 못말리는 소동을 그린 코믹드라마입니다. 장의사가 엄숙하게 가져온 관뚜껑을 여니 관이 뒤바뀌어 엉뚱한 시신으로 판명나는 첫 장면부터 영화가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뉴욕에서 성공한 작가로 활동하는 형은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영국으로 날아왔으면서 장례식 비용은 부담할 능력이 없다고 나자빠지고 엄한 아버지로부터 소심하지만 능력있는 변호사 애인과의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동행한 사촌은 남자친구 진정시키려고 먹인 신경안정제가 사실은 말썽꾸러기 약대생 동생이 만든 초강력 환각제라는 사실을 알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여기에 이상한 남자가 찾아와 아버지의 유산을 좀 나눠달라며 협박을 하는데 아버지의 비밀스런 사생활에 경악할 수밖에 없구요. 정교하게 잘 짜여진 코믹 연극을 보는 것처럼 90분의 시간이 언제 지나갔나 싶게 독특하게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입니다. 각각의 배우들은 영국에서 내로라하는 명배우들을 캐스팅해 연기도 깔금합니다. 장애인이나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 다소 보수적이긴 하지만 깔끔하게 웃고 즐길 수 있습니다. (환각제에 취해 모든 사물을 아름답게 보는 소심남의 연기가 압권이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편안하게 잠을 청하는 순간 뒷통수를 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유발되는 웃음도 참기 힘듭니다. 프랭크 오즈 감독은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요다 목소리로 출연한 경력이 있는 다재다능한 인물입니다.)
이밖에 보스니아 내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여성을 그린 [그르바비차]와 좀처럼 접하기 힘든 루마니아 영화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히로스에 료코 주연의 [환생]을 리메이크한 프랑스 영화 [더 시크릿], 죽은 남자친구가 살아있는 여자친구 생일에 맞춰 편지와 각종 선물, 이벤트를 보내준다는 [P.S 아이 러브 유]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꿀벌 대소동]이 개봉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에 개봉한 임필성 감독의 [헨젤과 그레텔]을 뒤늦게 챙겨봤습니다. 볼만한 것은 박희순, 장영남의 카리스마 넘치는 멋진 연기와 소품과 세트 등 화면의 때깔 뿐, 천정명의 연기는 아역 배우들의 연기력보다 뒤처지고 질주할 듯 하다가 멈칫하는 어정쩡한 이야기 전개, 신파에 기대는 안이한 결말 등, 단편에선 많은 성과를 보여줬지만 [남극일기]에 이어 두 번째 장편 상업영화를 선보인 임필성 감독은 영화계에서 과대평가된 감독 가운데 한 명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울 정도로 실망스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