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다동 '먹자 골목' 입구.
세월에 밀려서 사라져 가는 칼장수처럼 몇 개 안 남은 서울식 추탕의 명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 가게안에서는 주인 오경식씨가 전북 부안에서 공수해온 미꾸라지를 손질하느라 분주합니다.
8년전, 시동생과 함께 3대째 가업을 대물림한 오씨 곁에는 50여년째 주방을 지키고 있는 윤재순 할머니가 있습니다.
이 가게는, 양과 곱창을 고은 육수에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고춧가루를 풀어 얼큰하게 끓여낸 서울식 추탕의 전통을 70여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점심시간, 가게에는 추탕맛을 찾아온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잇습니다.
손님들 대부분 오랜 단골들입니다.
[신진휴/고객, 재미교포 : 제가 미국에서도 추어탕에 소주 한잔이 생각나서 ( 한국에 )올때마다 이 집을 찾는다.]
[전종승/고객 : 술 많이 마신 다음날 속풀이로 최고다.]
서울식 추탕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 가게 창업주는 신석숭 옹!
지난 1932년 무교동 코오롱 빌딩자리를 빌려서 주점겸 추탕집을 차렸습니다.
[오경식/손주 며느리, 3대째 대물림 : 자손들 먹여 살리려고 차리셨고 할아버지는 돈 버는 것과는 거리가 먼 한량이셨기때문에 할머니가 나섰던 것 같다.]
안주인 홍기녀 할머니의 손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제법 돈이 모이자 지난 1960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을 했습니다.
이 가게가 오랜 명성을 이어온 비결은 23년전, 작고한 안주인의 후덕한 인심도 한몫을 했습니다.
[윤재순/주방장 : 인심이 좋아서 돈없는 사람들은 그냥 줬고 국물도 부족하면 더 주라고 그러고..]
7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용금옥은 당대 명사들의 사랑방으로도 명성을 날렸습니다.
해방직후부터 1960년대까지 이곳은 시 '논개'로 유명한 시인 변영로 선생을 비롯한 당대의 논객들이 인생을 논하고 시대의 울분을 토로하던 장이었습니다.
논객들중에는 암울했던 자유당 말기에, 이 가게와 인연을 맺은 이만섭 전 국회의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만섭/전 국회의장, 48년 단골 : 언론인 생활할 때 그 당시 야당 정치인들과 막걸리 마시고 때로는 울분을 토로하면서 소리도 지르고 울밑에 봉선화도 부르던 기억이 난다.]
격동의 세월을 함께 울고 웃던 사랑방, 용금옥은 40여년 전 작은 한옥 그대로입니다.
그동안 가게 평수를 늘리라는 유혹도 숱하게 받았지만 옛 모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오경식/손주 며느리, 3대째 대물림 : 가게가 워낙 좁아서 손님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서 죄송하지만 향수와 멋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냥 이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최근 청계천 물길이 열리면서 옛 추억을 찾아온 손님들로 매출이 20% 가량 늘었습니다.
[오경식/손주 며느리, 3대째 대물림 : 청계천 구경왔다가 옛날에 용금옥에서 먹던 추어탕 생각이 나서 온다.]
서울식 추탕 맛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마음의 고향같은 용금옥!
장사가 되면 규모부터 늘리는 요즘세태에서 옛모습 그대로 분수를 지키는 경영철학이 오랜 세월의 풍상을 이겨낸 비결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