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문서' 협상에서 공개까지

징용피해자 소송으로 정보공개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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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뉴스>

<앵커>

이 문제 투성이 협정이 그나마 이제라도 공개될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일제 피해자들의 오랜 법정 투쟁 덕분이었습니다.

굴욕적인 체결부터 공개까지의 과정을 김우식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5.16 쿠데타 직후인 지난 62년 10월 당시 김종필 중앙정부장은 일본에서 오히라 일본 외상을 만나 이른바 '김-오히라' 메모로 정치적 타결의 기반을 마련합니다.

공식 사과도 못받고 민족 자존심을 헐값에 팔았다는 점에서 6.3사태를 비롯해 격렬한 반대시위가 이어집니다.

[서진영 고려대 교수/한-일 굴욕외교 반대시위 참가 : 피해보상액수도 터무니없이 낮았고 경제발전과 함께 정치자금으로도 쓴 게 아니냐. 그런 부분에서 오해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의미에서 격렬하게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계엄령까지 선포하면서까지 65년 한일협정에 서명해 14년 가까이 끌어온 협상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불행했던 과거의 한일관계 청산하고 영광스러운 새역사 창조하기 위해 한일협정이 6월 22일 오후 5시 일본수상관저에서 정식 조인됐습니다.]

당시 군사정권이 정치적 이유로 협상을 서둘렀던 것이 오늘(17일) 공개된 문서에도 잘 나타나있습니다.

문서공개의 결정적 계기는 징용피해자들이 정보공개를 요청하는 소송을 냈고 우리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기때문입니다.

[신금수(82)/징용피해 소송당사자 : 일본정부는 책임이 없다고 하고 우리정부는 배상을 안 해주니 정부에 대해 신의를 못했다.]

외교부는 관련부처와 대책을 협의했고 일본정부와도 협의를 마치고 오늘 재판관련 문서를 공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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