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고문, 독자행보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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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뉴스>

<앵커>

이인제 고문은 지난 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 이어 두번째로 경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러나 이 고문이 대권을 향한 정치적 야심을 완전히 버렸다고 보는 사람은 적은 듯 합니다.

정준형 기자입니다.

<기자>

이인제 고문이 정치 지도자로서 본격 부각된 것은 지난 96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깜짝 놀랄만한 젊은 후보'로 거론한 뒤, 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해 이회창 후보와 맞붙게 됐습니다.

{이인제 의원/97년 경선당시}

"제 15대 대통령 선거 신한국당 후보 경선에 참여하겠다는 결심을 밝힙니다."

여론지지도에서 앞서고도 패한 이 고문은 이회창 후보 아들들의 병역문제가 불거지자, 경선불복이란 비난을 무릅쓰고 신한국당을 탈당해 독자 출마했습니다.

당시 얻은 표가 5백만표, 차세대 대표주자로서 이미지를 다진 이 고문은 지난 98년 여당인 국민회의에 합류했습니다.

이어 2천년 총선때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여당의 전국 정당화에 공헌했고, 이후 '이인제 대세론'을 확산시키며 민주당의 유력한 차기주자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지난달 16일 치러진 광주지역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 밀리면서 대세론은 급속히 수그러들었고, 결국 대선후보 경선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오는 6월 지방선거 이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정계개편 과정에서 이 고문이 독자적인 행보를 걸을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히 우세해 그의 거취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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