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말좀 들어봐요


◎앵커: 북에 두고 온 늙은 아내가 그만 귀마저 들리지 않아 남편이 말 한마디 못한 애절한 사연도 있습니 다. 주영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올해 81살의 이환일 할아버지. 그 긴 세월에도 기억에 선명하기만 한 평안남도 강동 고향땅. 그곳에 죽은줄만 알았던 아내와 아들, 딸이 살아 있다 는 꿈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환일(81, 평남 강동): 다 있지는 않아도 살 아있다는 것만 해도 반갑지요.> 사랑하던 사람이 정말 살아있었습니다. 곱던 얼 굴에 주름이 덮이고 비단결 같은 머리에도 서 리가 내렸지만 50년 만에 만난 아내는 마냥 수 줍은 새색시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50년 세월 수절하며 살아온 아내에게 미안하오, 고맙소, 날 용서해 주구려, 할말은 많은데 북녘의 아내 는 이제 귀가 먹어 듣지조차 못합니다.

<이환일(81, 평남 강동): 살아있다고 생각은 안 했는데 살아 있어서 만나서 반갑긴 반가운데 말을 해야지요, 서로. 말을 못하니까 그게 안타 까워요.> 미안함이 가득 담긴 금가락지를 조심스레 끼워 주는 그토록 보고 싶던 남편이 바로 옆에 있지 만 아내는 50년 전 그때처럼 남편이 어렵기만 합니다. 보다 못한 아들이 어머니의 손을 아버 지의 무릎으로 이끕니다.

<이응섭(북녘 아들): 아버지나 어머니나 다 늙 어서 고령이 돼서 만나서 의사소통도 안되고 하는데 이게 누구 때문인가.> 기약없는 이별을 앞두고 찍은 가족사진 한 장. 남녘의 아내는 이 사진을 보고 뭐라고 말할지 남녘의 아내에게도 50년 만에 만난 북녘의 아 내에게도 그저 서러운 세월 때문이라고 그러니 이해해 달라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SBS 주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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