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이방인의 변호권 : 이자스민의 추억

대한민국과 난민, 솔루션 저널리즘 ④편

이경원 기자 leekw@sbs.co.kr

작성 2019.02.10 10:02 수정 2019.02.11 09:0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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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본령은 감시와 비판에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친다면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무관심과 냉소를 불러 민주주의를 되레 침식시킬 수 있습니다. 비판을 넘어 대안을 찾는 '솔루션 저널리즘'은 이 지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언론이 흔히 즐겨 쓰는 '법 개정', '처벌 강화', '지원 확대' 같은 표제어가 꼭 솔루션일 필요는 없습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의 핵심은 정확한 현실 인식과 변화를 위한 상상력입니다. 데이터를 통해 상상력을 동원하고 여기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 그리고 그 가능성을 기록하는 일련의 작업이 그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면에서 솔루션 저널리즘과 데이터 저널리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데이터 없이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고 적확한 솔루션도 어렵습니다. 솔루션에는 데이터의 조력이 필요합니다.

언제부턴가 솔루션 저널리즘에 기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솔루션이 어려운 주제로 모험을 해보려고 합니다. 예멘 난민 논란으로 촉발된 이방인에 대한 혐오 문제입니다. 워낙 반감이 거세 기자로서 꽤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난민 문제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 해법이 무엇인지 곱씹어보려 합니다. 솔루션의 밑천은 데이터에 있는 만큼, 데이터 분석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습니다.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① 난민의 사회학 : 낯선 자에 대한 공포
② 98년생 김철수 : 블루칼라의 반란
③ 게이와 이방인 : 관용의 경제학
④ 이방인의 변호권 : 이자스민의 추억
⑤ 순수(純粹)로부터의 해방

● 친일파가 된 이자스민

지금까지 세 차례의 글에서는 2016년 미국 대선의 데이터를 빗대 우리 사회 이방인 공포의 본질을 탐구했습니다. 우리가 이방인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며, 이를 유심히 살펴야 대안이 나온다는 취지였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방인을 향한 거친 말과 행동, 나아가 그들을 향한 폭력에 대해 면죄부를 줄 수 없을 겁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담아보려 합니다. 19대 국회에 출입했을 때 당시 새누리당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된 이주민 출신 국회의원 이자스민 의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뒤늦게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우리 사회가 이방인에 대한 공포를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는지 그 전형을 알기 위함입니다.

2013년 말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설치 촉구 결의안'을 놓고 토론이 있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 및 법적 배상, 역사 왜곡 중단 촉구, 국회 기림비 설치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당시 논란이 됐던 건 국회에 기림비를 설치할 것인지 여부였습니다.

당시 여성가족부 차관 이복실 : 기림비를 건립하자는 취지에는 공감을 합니다마는 지금 현재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 제고 차원에서 기림비는 시민단체와 민간 주도로 설치되고 있기 때문에 민간운동으로 확산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2013년 12월 16일 국회 여가위 법안심사소위 국회 속기록

정부는 국회에 기림비를 설치하는 것에 부담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회의에 불참했던 당시 새누리당 길정우 의원 역시 수석전문위원의 입을 빌려 비슷한 발언을 했습니다.

당시 수석전문위원 ○○○ : 위안부 문제 대책 소위원장이신 길정우 위원님께서 의견을 또 하나 주셨습니다. 네 번째 패러그래프(Paragraph)를 보면 '지난 10일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 소장 조선대원수 투구·갑옷 반환 촉구 결의안이 통과되었는데 실천 가능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정치적인 메시지만 담긴 결의안이 본회의에 올라오면 의원님들에게 부담을 줄 우려도 있다' 이런 말씀을 주셨네요.
-같은 속기록
이자스민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사진=연합뉴스)같은 당 이자스민 의원이 거들고 나섰습니다. 국회 위안부 기림비 설치는 다른 상임위원회인 외교통일위와 입장이 갈릴 수 있다며 다시 검토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자스민 의원 : 어디 다른 나라에 있는 것도 민간 차원으로 기림비를 세우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거기는 모양이 훨씬 더 보기 좋다는 그런 얘기가 많이 있습니다. …… 괜히 건드려서 외교 차원으로는 더 좋지는 않지 않을까라는 얘기가 너무 많아서 제가 이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찬반이, 사실 저도 여가위 위원으로서, 외통위 위원으로서는 굉장히 애매한……
-같은 속기록

필리핀 출신 이주민으로 옛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던 이자스민 전 의원을 향한 우리 사회의 거부감은 꽤 강했습니다. 극우 네티즌이 중심이 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진영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진보 성향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이 전 의원에 대한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이런 배경 속 기림비 논란은 기름을 부었습니다.

관련 기사의 제목은 "이주민 출신 이자스민, 위안부 기림비 설치 반대"로 뽑혔습니다. 이 전 의원이 이주민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반일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충분히 친일 성향을 가질 수 있다는 논리가 동원됐습니다. 반발은 거세졌고, "친일파 이자스민은 필리핀으로 돌아가라"는 댓글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사실 이 전 의원은 위안부 문제에 꽤 적극적인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2012년 8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송을 국가가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대표 발의하고, 위안부 관련 행사에 자주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적은 소용이 없었습니다. "기림비 건립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광화문 광장처럼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곳에 세우자는 취지"라는 이 전 의원의 해명 역시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이 전 의원은 친일파가 됐습니다. 이를 합리화시킬 근거도 나왔습니다. 이 전 의원의 모국인 필리핀이 일본의 원조를 받았기 때문에 친일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당시 정부 여당은 대일 관계를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였고, 따라서 일본을 자극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정부와 당시 여당 의원들은 국회의 위안부 기림비 문제에 소극적으로 나온 게 사실이었습니다. 이 전 의원도 여기에 동조한 걸로 읽혔습니다. 국민 정서상 충분히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비슷하게 말했던 정부 관료나 다른 의원들은 논란이 이 전 의원에게 쏠리면서 별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가 이 논란을 소비했던 방식은 첨예했던 위안부 문제와는 별 관련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3년 뒤 기림비 관련 예산이 대거 깎여 설치가 수포로 돌아갔지만 이 사실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위안부 기림비 설치에 대한 절실함보다는, 이주민 출신 국회의원에 대한 반감이 더 크게 작용한 듯 보였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이자스민 의원을 친일파라고 믿었다기보다, '믿고 싶어 했던 것' 같았습니다.
이자스민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사진=연합뉴스)● 매국노가 된 이자스민

비슷한 사례는 또 있었습니다. 2014년 11월 아동복지법 일부 개정 법률안, 이른바 이주아동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된 적이 있습니다. 부모가 미등록 외국인이라도 그 자녀에게는 교육, 의료와 같은 기본권을 보장해주자는 취지의 법안이었습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교육과 의료급여, 최저생계비 유지, 보육 등을 지원하자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당시 민주통합당 정청래 의원이 대표 발의했습니다.

하지만, 불똥은 엉뚱한 곳에 튀었습니다. 이자스민 전 의원이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입방아에 올랐습니다. 이 전 의원이 그해 4월 법안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한 적이 있은 있지만 발의에 참여하지는 않았습니다. 법안은 당시 정청래 의원을 비롯해 김광진, 민홍철, 박민수, 배재정, 부좌현, 우윤근, 이춘석, 진선미, 진성준 의원, 이렇게 10명이 공동 발의했습니다.

공격이 빗발쳤습니다. 위안부 기림비 사례와 마찬가지로 "필리핀 사람이 어떻게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되느냐?", "당신 나라로 돌아가라."는 식의 댓글로 넘쳐났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우리 세금을 빼내 무임승차하고 있는 외국인에게 몰래 퍼주고 있다는 '매국' 혹은 '도덕적 해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졌습니다. 그렇게 이 전 의원은 '매국노'가 됐습니다.

이자스민 의원이 발의자가 아니라는 반박이 나왔지만, 별로 설득력은 없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었던 댓글은 "그래서 어쩌라고?"였습니다. 잘못해도 미안할 필요가 없는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친일파'가 됐던 이 전 의원은 불과 1년 사이, 혈세를 불법 체류자에게 퍼주자는 '매국노'로 변주됐습니다.

친일파, 매국노라는 수식어는 이 전 의원이 국회의원을 끝마칠 때까지 발목을 잡았습니다. 이 전 의원 소식이 나올 때마다 언론은 '관련 뉴스'란 이름으로 이때의 일을 끊임없이 소환했습니다. 2015년 3월 이 의원의 아들이 담배 절도 의혹으로 수사를 받았을 때, "이자스민 아들 논란… 과거 이자스민 위안부 발언도 새삼 관심", "이자스민 아들 담배 절도 의혹… 위안부 기림비 반대 발언 논란"이란 제목이 뽑혔습니다. 이 의원의 아들은 이후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12월, 이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초코렛을 먹은 사실이 알려졌을 때에도 같았습니다. '과거 행적도 논란', '논란 총집합', '위안부 기림비 반대했던 이자스민'이란 용어가 동원됐고, 수많은 비난 댓글이 달렸습니다.

19대 국회가 끝날 즈음, 이 전 의원 측에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의원직을 마무리하면서 그 소회를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회사 차원에서도 19대 국회를 마무리하는 기획을 준비하던 차였습니다. 의원 재임 내내 공격도 많이 받은 터라 해명의 기회를 원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 의사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의원실 : 죄송합니다. 의원님이 조용히 의원직을 끝내고 싶어 하세요.
기자 : 그래도 잘 말씀해 주세요. 그간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생각을 충분히 담아내려고 해요.
의원실 : 죄송합니다. 논란이 될 때마다 여러 차례 해명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거든요. 사실 말만 해도 공격이 너무 들어오는 처지입니다. 얼마 전 아들 때문에 상처도 받으셨고. 여러모로 두려워하시는 것 같아요. 말이 말을 낳으니까요. 사실 지금 기사 내용과 상관없이 '이자스민'이란 이름만 나가도 공격을 받는 상황 아닙니까.

이자스민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사진=연합뉴스)● 이방인의 변호권, 그리고 소통

반감이 큰 대상을 향해 거친 표현을 하는 건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유독 가슴에 박힌 말이 하나 있습니다. "말만 해도 공격이 들어오는 처지"라는 의원실 측의 답변이었습니다.

반감의 표적들은 자신을 향한 거친 표현과 혹시 모를 폭력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자신감을 박탈당하고 무방비상태가 되곤 합니다. 공포의 힘은 강력합니다. 자신을 변호할 권리마저 연상하지 못합니다. "말만 해도 공격이 들어온다"는 답은, 그녀 스스로의 변호권을 상상할 수 없게 됐다는 자포자기가 아니었을까요.

정확히는 사람들이 그녀의 변호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게 맞는 말일 겁니다. 우리의 공포가 그들의 공포로 전화되는, 공포의 악순환이었습니다. 설령, 그녀의 정당한 해명에도 "그래서 어쩌라고?", "무슨 상관인데?"라며 맞대응하고 논의를 애써 끝내곤 했습니다. 그녀의 말이 맞느냐, 틀리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전 의원 역시 이런 공포의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괜히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가 말이 말을 낳고, 이게 다시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던 기억이 컸던 것 같습니다. 이 전 의원의 인터뷰 기사는 임기 후반이 될수록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사람들도, 그녀도, 그렇게 소통을 줄여나갔습니다.

19대 국회가 끝나갈 즈음, 이자스민 전 의원에게 식사라도 함께 하자고 의원실에 몇 차례 요청을 했지만 약속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기자들을 만나면 혹시라도 자신의 말 한마디가 기사화될 수 있다는 걸 두려워했습니다. 이 전 의원은 당시 여당을 출입했던 3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한 유일한 의원이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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